안녕, 강박쟁이 데븐
조지 해러 지음, 김예리나 옮김 / 꿈의열쇠 / 2010년 10월
평점 :
절판


 

데븐의 오해가 풀렸다. 그리고 데븐의 상처도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마음에 저도 모르게 쌓여 있었던 불필요한 죄책감이 데븐에게 자꾸만 이것저것 약속을 지킬것을 강요했고 그 약속을 지키지 않았을 땐 금세 불행이 찾아올 것 같은 압박감을 느껴야 했던 데븐. 안타까운 마음이 눈 녹듯 사라진 순간 데븐의 성장기는 따스하게 막을 내렸다. 마치 뽀루투카 아저씨가 죽고 마음 속의 어린 새를 날려버린 작은 제제(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 바스콘셀로스)의 모습이 떠올랐다. 작은 아이들이 한움큼 마음의 성장을 내보이는 소설은 언제나 아름답게 다가왔다. 


데븐은 강박증을 가진 아이였다. 그렇지만 자신의 강박증세가 옳은 행동이라고 생각하며 주윗사람들이 자신의 그러한 증상에 관심을 가지고 꼭 나쁘다고만 생각하여 고치도록 요구하는 것을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매번 받는 정신과 상담도 진심을 전하지 못하고 베베꼬인 말투로 시작하곤 했다. 자신이 잘못되었다기보다는 자신의 증상을 무조건적으로 나쁘게만 바라보는 어른들의 시선을 더 나쁘게 생각했다. 사실 그 증상으로부터 마음의 상처를 끄집어내면 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데. 어른들이 데븐이 진정으로 하고 싶어하는 말을 끄집어내지 못하는 점이 무척 안타까웠다. 그런 데븐을 보면 영화 ’굿 윌 헌팅’의 주인공인 윌이 떠올랐다. 조금 다르지만 윌 역시 자신만의 작은 세계가 제일로 잘난줄 아는, 상처를 깊게 입은 아이였다. 


어느 학교 청소 용역에 불과했던 윌 헌팅은 수학에 엄청난 재능을 보이고 있었다. 게시판에 적힌 어려운 수학문제를 쉽게 풀어낸 윌을 발견한 한 교수는 그의 재능을 키우기 위해 수학을 좀 더 깊게 배울 기회를 주고 함께 정신과 상담도 받게 했다. 하지만 늘 비딱한 시선을 가진 윌은 정신과 의사를 쫓아내기 일쑤였다. 그러다가 만난 사람이 바로 숀 교수였다. 숀 교수는 자신의 아픔을 도려내는 듯한 말을 쉽게 내던지는 윌을 진지하게 대했고, 결국 그는 윌의 마음을 열 수 있었다. 윌의 마음이 열리는 것처럼 데븐의 강박증도 안녕, 하고 떠나보내어 질 때 무척 마음이 후련했다. 드디어 굿(good)한 윌과 데븐이 함께 웃고 있었다. 
안녕, 강박쟁이 데븐 ! 


데븐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 시대 어린아이의  진정어린 마음을 그대로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생각해보았다. 아이들의 마음을 이해한다는 것은, 비록 어린아이를 거친 어른이라 해도 다시 어린아이가 되어 시선을 맞추지 않으면 무척 어려운 일인데, 데븐의 이야기를 보면서 온전히 그의 마음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 수 있었다. 아이에게 굉장한 신뢰를 얻고 있었던 데븐의 어머니조차 그것은 힘든 일이었다. 세상의 많은 어른들이 아이에게 소리를 지르는 것도 아이의 마음을 좀 더 얻고 그를 위하고자 뱉는 실수이지만, 이제 그보단 아이의 마음에 닿는 소리를 더 많이 나눌 수 있는 대화가 많았으면 싶었다. 데븐의 마음이 열리는 시간이 길었던 것처럼, 비록 긴 시간이 걸리더라도 이 시대 어린 아이들의 마음을 그대로 읽을 수 있는 어른들이 많이 생겨났으면 좋겠다. 그래서 이런 소설이 있는게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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