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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 연대기 ㅣ 샘터 외국소설선 5
레이 브래드버리 지음, 김영선 옮김 / 샘터사 / 2010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래이 브래드버리가 화성을 다녀온 사이 지구는 멸망해 있었다. 몇몇 ’지구인’들은 화성에서 지구를 바라보아야 했고, 몇몇은 불타오르는 지구를 보며 제 친지들이 무사할까 마지막 로켓을 타고 떠났다. 1999년에서 2026년에 걸친 화성연대기는 소수의 사람들의 이야기를 미루어 인간 전체의 무서움과 고독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작가가 쏟아부은 상상력에 한 사람의 인간이 홀로 읊조리는 듯한 화성의 이야기는 전혀 지루하지 않았고 오히려 무섭게 다가왔다. 풍성한 상상력 속에 현실감이 무던히 묻혀 있었다. 지구의 최후가 꼭 그러할까 겁이 난 것도 사실이다.
사실 처음 이 책을 볼때는 이상한 기분이 먼저 들었었다. 지금은 벌써 2010년이고, 작가는 1999년부터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기 때문인데, 더구나 소설의 중심이 되는 시간은 1999-2005년의 어느날이었기 때문이다. 이미 지난 시간이었다. 하지만 소설에서는 이미 지구를 떠난 몇몇의 사람들이 달도 아닌 화성에 착륙했고, 화성인들과 소통을 원하고 있었다. 그러나 화성인에게 지구인은 낯선 이방인에 불과했고, 제 1호, 2호 등지의 사명을 띠고 떠난 지구인은 처참하게 죽음을 맞이한다. 있을법한 일이지만, 일어나지 않은 일이었다. 나는 그러한 아이러니에서 약간의 혼란을 겪었다. 마치 초등학생 때 10년 후의 모습이라고 휘황찬란하게 날아다니는 도시를 그려놓았지만 정작 10년 후인 지금의 세상은 생각보다 평범하다는 걸 깨달은 충격과 비슷했다. 레이 브래드버리의 <화성연대기>는 1950년에 간행된 당시 최고의 SF문학이자 걸작이었다.
지금 읽어도 그 상상력에 손색이 없는 도서가 이제서야 우리나라에 번역되어 들어왔다는게 아쉬웠다. 하지만 출간된지 얼마 안 되어 이렇게 이 책을 읽게 되어 너무 고마웠다. 읽는 순간이 아깝지 않은 책이었다. 베르베르의 상상력에 뭇 시인들의 감성이 더해진 듯한 <화성연대기>는 총 26가지의 에피소드 중 하나하나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색다른 매력을 느끼게 하는 팔색의 매력을 아낌없이 지니고 있었다. 하나의 이야기를 읽을 때마다 떠오르는 생각이 달랐다. 그렇게 나는 26가지 곱하기 몇 배의 생각을 하며 이 책을 읽을 수 있었다. 미래를 예측했던 저자의 시선에 놀라면서도 더불어 세심하게 인간의 본성을 잘 그려낸 데 다시 한 번 감탄했다. 지구와 거진 동일한 화성이라는 하나의 행성에 사는(혹은 찾아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연이어 놓았지만, 그 거대한 상황에서 사람으로써 할 수 있는 고뇌를 놓치지 않았고 무(無)와 다름없던 화성에 지구의 방식으로 자꾸 틀을 만들어 나가는 인간의 이기적이면서도 고지식한 면모를 아낌없이 드러내고 있었다. 화성의 고요함이 그만의 매력으로 독자인 나를 휘어잡은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