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머리 속의 지우개 - A Moment to Remember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손예진을 보았다. 정우성을 보았다. 시간에 쫓겨 영화 중간부터 보게 되었고, 마침 그 장면은 손예진과 정우성이 편의점에서 마주칠 때 였다. 영문도 모른채 나는 콜라를 벌컥벌컥 들이키는 손예진을 보았다. 체념한 듯한 무표정으로 상대를 차갑게 지켜보는 그들의 매서운 만남이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시작이라는 걸 몰랐다. 


내 머리속의 지우개는 알츠하이머 병에 걸린 젊은 여성이 어떻게 변해가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영화였다. 알츠하이머에 걸리면 수학능력이 떨어지고 기억력이 감퇴하며 가장 최근의 기억부터 하나씩 조심스레 잃어간다고 했다. 그런 모습이 그대로, 손예진에게 일어났다. 사랑하는 남편 철수를 가끔 알아보지 못하고 그를 보면서 옛 남자의 이름을 건넨채 사랑한다고 말했을 때, 나뿐만 아니라 이 영화를 보았던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울음이 찼을 것이다. 소리내어 우는 울음이 아니라 마음을 콕콕 찌르는 울음이었다. 


작은 동아리에서 하는 자작 소설쓰기에서 누군가 알츠하이머 병을 소재로 글을 쓴적이 있다. 나는 그 글을 통해 내 머리속의 지우개를 먼저 알게되었다. 자신이 자주쓰는 물건을 잃어버린 줄 알고 계속해서 모우고(수진에게선 ’펜’이 그 소재로 사용된 듯하다) 문득 정신이 들었을 때 자신을 자책하게 되는 무서운 모습이 애잔하게 다가왔다. 기억을 억지로 쫓아내야만 하는 그 병은 너무 가혹한 병이었다. 나는 누구고, 내가 왜 여기 있으며, 방금 직전까지 무슨일을 하고 있었는지 그리고 내가 지금 뭘 해야되는지. 물음표는 안그래도 아픈 머리 속을 꽉 채우는 데 누구하나 내가 알고 있는 답변을 해주지 않는 상황에 닿는다면. 


정말 답.답.한 것이다, 하고 토를 달 수 없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슬픔과 회한이 그네의 마음을 넘나들 것이기에, 그건 답답함을 넘어선 것일테니깐. 손예진과 정우성의 사랑하는 모습이 너무나 예뻤다. 둘은 함께 있을 때 누구보다 아름다운 미소를 자아냈고, 서로만이 떠올릴 수 있는 추억도 듬뿍 간직하고 있었다. 서로를 독려해주고, 서로의 마음을 치유해줄 수 있는 사람으로서 모운 기억들을 흩어내야 했기에 둘의 눈에는 함박눈물이 가득찼다. 하얘진 도화지에 다시 행복한 기억으로 가득 채웠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우성이 처음 들려주는 사랑한다는 한마디가 그래서 더욱 값지게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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