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황홀한 글감옥 - 조정래 작가생활 40년 자전에세이
조정래 지음 / 시사IN북 / 2009년 10월
평점 :
품절
태백산맥을 읽지 않았다. 아리랑도 읽지 못했다. 한강도 읽지 않았다. 그보다 먼저 조정래 작가님의 <황홀한 글감옥>을 먼저 읽게 되었다. 이 책을 읽고자 마음을 먹었을 때 나는 꽤 많은 고민을 했다. 조정래 작가님의 대하소설 3부작을 읽지도 않고 이 책들에 대한 많은 질문을 쏟았고, 그 질문을 고심하여 답했을 에세이를 읽는 것은 주객전도가 된 것과 같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나는 얼른 조정래 작가님의 솔직하고도 지난 40년간의 세월이 오롯히 담긴 이야기를 읽고 싶었다. 태백산맥과 아리랑 그리고 한강을 다 읽고 이 책을 읽으려면 또 언제가 될지 모르기에 살짝 겁이 난 것도 사실이다.
앞으로 장편소설 한 다섯 편정도, 단편소설 한 스무 편 정도, 동화 한 다섯 편 정도를 더 구상중이라고 말을 전한 구절을 보자마자 오늘 조정래 작가님의 장편소설 <허수아비 춤> 연재 소식을 듣게 되었다. 느낌이 새로웠다. 마치 조정래 작가님과 잠시 긴 대화를 나눈 것처럼 에세이를 보았는데, 그를 보면서 작가님의 한마디 한마디에 이런저런 생각하기도 바빴는데, 벌써 새로운 장편 소설을 만날 수 있다니 너무 반가웠다. 다시 보니 이 책의 출간년도가 작년이다. 이 책을 왜 지금 읽었는지 후회스러운 면이 그대로 신간인 허수아비춤에, 태백산맥에 아리랑에 한강에 녹아들 것 같았다. 다양한 대학생들이 내놓은 질문을 보면서 나는 왜 조정래 작가님께 질문할 기회를 갖지 못했을까 하며 아쉬워 했던 기회도 허수아비춤으로 다시 얻을 수 있었다. 허수아비춤은 조정래 작가님이 처음으로 인터넷으로 연재하는 장편 소설인데, 그에 대한 질문 코너도 활짝 열려 있었다. 이번 기회를 계기로 세 편의 대하소설도 꼭 읽어봐야겠다는 마음도 먹었다. 황홀한 글감옥 덕에 집필의도 등을 조금이나마 알고 읽게 되니 더욱 뜻깊은 시간이 될 것 같다.
책 곳곳에 눈을 옮기기 바쁘게 마음에 닿는 구절이 흘러 넘치게 있었다. 작가의 사명을 ’모국어로 은혜를 갚’는다고 설명하신 부분이나, 졸업을 앞두고 써놓았던 아래의 구절이나,
’내가 지난 4년 동안 변화해온 것처럼 앞으로도 4년 단위로 그렇게 변해간다면 아마 40년쯤 후에는 나는 성인으로 변해 있을지도 모른다.’(102쪽)
(막 대학생활을 1년 반째 접어든 나로써도 지난 1년간에 느낀 변화만으로도 엄청난 공감이 되었고, 지금 당장 뭔가 이뤄낸 것이 눈에 보이지 않아서 불안했던 것도 다음 문구로 마음이 편해질 수 있었다.)
작가가 되기 위한 마음가짐을 분명하게 소개해주신 부분이나,
좋은 작품을 좋다고 인정하면서도 한 가닥 곤두서는 자신감. 그것이 당신의 영토이며, 당신이 차지할 수 있는 빈자리입니다. 수백, 수천 편의 좋은 작품을 읽었더라도 그 ’빈자리’는 당신의 의식 속에 꼭 확보되어 있어야 합니다. (105쪽)
’태백산맥’에 280여 명, ’아리랑’에 6백여 명, ’한강’에 4백여 명, 그래서 세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만 1천 2백여 명이 넘는 많은 인물들을 어떻게 그려낸 지 자신만의 비법이자 작가로서의 시선을 소개한 부분이나,
서울 시민은 1천 2백만 명을 헤아립니다. 그들은 모두 당신 소설의 주인공입니다. 건성으로, 무신경하게 지나치지 말고 짧은 시간이라도 집중해서 꿰뚫어지게 살피십시오. 그리고 그들을 당신의 필요에 따라 분해하고, 나누고, 덜어내고, 결합하고, 덧붙이고, 수정해서 재구성해내십시오. 개성적인 인물은 그렇게 해서 탄생하게 됩니다. (129쪽)
지난 20년동안 한 편도 쓰기 힘들다는 대하소설을 세 편이나 써내신 비결이라든가, 하는.
첫째, 집필 기간을 최대한 단축하는 것이었습니다.
- 술 마시지 않기, 하루 집필량을 평균 30장으로 꾸준히(원고지 한달 집필량 합산표), 소설이 잘 안풀릴 때도 다른 행동을 하지 않고 더욱 책상에 다가앉아 끝끝내 마음먹은 대로 써내고 책상에서 물러나기.
둘째, 리모컨과 싸워 이겨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리모컨 누르듯 책을 펴고 덮는 독자를 만족시켜라) - 빠른 전개, 개성있는 인물.
셋째, 한 문장, 한 문장을 쓸 때마다 세 번씩 생각하고 쓰는 것입니다.(248~257쪽 요약)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태백산맥 등의 조정래 작가님의 소설을 얼마나 알뜰하게 읽어내느냐 하는 것이다. 훌륭한 독서가인 다른 분들의 새발의 피만큼이라도 이해력이 따라 주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