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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 [초특가판]
영상프라자 / 2006년 3월
평점 :
품절
어릴 때 보았던 책을 다시금 들췄을때, 내 행동은 두 가지로 나뉜다. 책을 덮거나, 분명 아는 이야긴데도 느끼는 바가 달라서 한참 동안 그 책에 집중하거나. 후자의 경우 책장을 덮었을 때 얼굴은 마음에서 우러나는 미소로 가득차 있다. 분명히 읽었던 책인데, 전혀 다르게 읽혔던 것이다. 어린왕자 이후로 <바람과 함게 사라지다>가 꼭 그랬다. 열 네다섯 살때 귀에 익은 제목만 보고 구매했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내게 조금 어려운 책이었다. 재미있었고 잘 읽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마음 한 켠으론 왜 제목이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내게 사라진 것은 스칼렛의 고백을 메몰차게 거절한 레드 버틀러의 발걸음뿐이었다.
오늘 영화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다시 보았다. 예전에 읽었던 책의 내용이 낡은 종이조각으로 다시 떠올랐다. 그 낡은 부분을 눈앞의 영상이 채워주고 있었다. 표독스럽게도, 강인한 여성의 모습으로도 스칼렛 오하라의 모습을 연기해준 비비안 리의 모습이 인상깊었다. 나는 책과 똑같이 그려낸 영화에 솔직히 놀라고 말았다. 3시간 40분에 달하는 상영시간 내내 나는 지루하다기 보단, 좀 더 천천히 영화를 감상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배우들이 원작을 어떻게 그려내고 있는지 궁금했다. 나는 다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로 감동 받고 싶었다.
처음 책을 읽었을 땐 배경이 미국의 남부인줄 몰랐다. 어린 독자로써 눈에 들어오는 것은 오직 스칼렛의 행적뿐이었고, 배경은 단지 ’서양’에 불과했다. 그 땐 미국의 남부가 당시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지도, 전쟁을 왜 했는지도 몰랐다. 왜 하인들은 모두 얼굴이 까무잡잡하며 여성들이 인형옷과 같은 특이한 드레스를 입는지 몰랐다. 그래서 바람과 함께 사라지는 주체가 주인공들이 살고 있는 ’남부’인 줄도 몰랐다.
영화에서는 그 모습을 장대한 배경과 함께 너무나 잘 그려내고 있었다. 이렇게 큼지막하고도 중요한 배경을 왜 알지 못했는지. 그래서 사라진 것은 레드 버틀러뿐만이 아니었다. 책을 통해 내가 그려내지 못한 처참한 남부의 현실을 영화로 볼 수 있었다. 영화는 상상력을 가미해주었다. 그러다가 레드를 향해 눈물짓는 스칼렛의 연기를 보았다. 어쩌면 내가 그 큰 무대를 잊었던 것도, 그런 스칼렛의 눈물이 인상깊었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남부의 청년들도 바람과 함께 사라졌지만, 스칼렛의 사랑도 더불어 사라졌다. 미국의 역사적 배경을 어렴풋이 알고 보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엄청난 대작으로 볼 수 있었다. 긴 시간이 아깝지 않았고, 이제서야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제대로 알게 되었다는 것에 마음이 반가웠다.
"내일은 또 내일의 태양이 떠오른다!" (Tomorrow is another 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