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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들 플라워
김선우 지음 / 예담 / 2010년 1월
평점 :
품절
형형색색의 꽃이 핀 <캔들플라워>를 처음 보았을 때, 정이 오가는 따뜻한 이야기를 생각했다. 표지에는 보이지 않는 네 사람의 손에 캔들, 그러니깐 초가 하나씩 들려 있으리라곤 생각도 못했다. 캔들, 은 초로 보이지 않고 그저 억양이 부드러운 플라워 앞에 놓인 이름이라고 생각되었지. 그때는 캔들이 어떻게 꽃이 되어 피어날지 보다 여기 이 책에 얼마나 아름다운 이야기가 담겨 있을지 그런 기대로 책을 집어들기엔 충분했다. 책의 첫머리부터 알파벳 G와 O를 집어서 지오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는 아이의 설렌 마음이 나왔다. 아름다운 노래를 흥얼거리듯이 음표를 밟듯 걸어가는 아이는 환상적인 분위기를 한껏 풍기며 등장했다.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의 작은 나무를 다시 만날 것 같았고,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의 제제가 이 아이를 찾아 올 것 같았다. 그렇게 동심을 좇듯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껌벅 속았다는 걸 깨달았다. 지오의 동심에 홀린 듯이 읽어내린 글은 2008년 촛불 시위에 멈춰 있었다. 실망했다기 보다 마음이 무거워졌다. 여러 생각이 오갔다. 그동안도 책 속에선 점점 많은 사람들이 초를 들고 앞을 보며 시위를 하고 있었다. 2008년, 그 때 나는 고3이었고 학생의 일원으로서 작가가 대변하고자 했던 학생들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너무 잘 읽히고 그들의 이야기가 궁금해서 손을 뗄 수 없었지만, 알게 모르게 드는 반감에 나는 얼굴을 자꾸 구길 수 밖에 없었다. 작가는 자꾸 학생의 입장을 옹호하는 문장을 내세웠지만, 나는 그에 동의할 수 없었다. 촛불시위도 당시 이슈된 사건을 중심으로 너무 서울의 시위대의 입장에서만 서술한 것 같아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지금 2008년 촛불 시위 사건을 대변하여 쓰여있고, 50년이 지나고 100년이 지나 아이들이 한국의 근현대사를 배우면서 이 책을 들췄을 때 내가 지금 5.18운동을 알지도 못한채 그저 심각하게 생각하는 것처럼 2008년의 촛불시위를 생각할까 무서웠다. 이 책에는 촛불시위를 지켜만 보던 사람들의 마음은 전혀 쓰여있지 않았다. 나는 그래서 자꾸 지오의 이야기에서 멀어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우리나라의 교육과 대변되는 지오의 하루하루가 얄밉게 미웠다. 나는 그렇게 지독한 교육을 받지 않았다. 지오가 눈을 더 동그랗게 뜨고, 기겁을 하며 놀랄 때마다 작가가 정말 학생들의 마음을 알고 이 책을 썼는지 궁금했다.
나는 닭장에 키워지는 무기려간 닭처럼 등하교버스를 타지 않았다. 오전 6시부터 오후 10시까지 학교에서 내내 공부만 하지도 않았다. 친구와 수다도 떨고 서로의 고민도 나누고, 문이과로 나눠질 때는 배우고 싶은 것을 더 깊게 배울 수 있어 좋았고, 그렇게 많은 과목을 배우면서 내가 하고 싶은 것이 뭔지, 또 잘하는 것이 뭔지 찾아갈 수도 있었다. 선생님과 상담을 하면서 이런저런 경험담도 전해듣고, 학교 축제에선 신나게 웃고 즐기기도 했다. 하루는 도전 골든벨을 촬영하고 우승을 한 우리학교 아이를 진심으로 축하해주기도 했다. 친구들과 많은 시간을 함께하면서 알게모르게 많은 추억도 쌓을 수 있었고 마음처럼 공부가 잘 되지 않을때는 진심으로 서로의 마음을 다독여주기도 했다. 맛있는 먹을거리 하나에도 그저 즐거울 때였다. 그래서 오전 6부터 오후 10시까지 ’어떻게 공부만’ 할 수 있었다. 학교는 공부뿐만 아니라 꿈을 키우는 공간이기도 했다. 많은 사람들이 학창시절을 웃으며 추억할 수 있는 이유도 그랬던 학교가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캔들 플라워>에서 학생은 불쌍한 존재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2008년 그때에도 학교에 갇혀 아쉬움만 토로하지 않았다.
외국인인 지오의 시선으로 얼마 되지도 않은 2008년의 그일을 다루는 것은 분명 쉽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시인인 그녀가 아름다운 단어를 수를 놓듯이 사용할 때마다 때로 감탄했던 것도 사실이다. 책 속에는 재미난 인물들이 얽혀 있었고, 진실을 은폐하기 위해 얼마나 눈을 지푸릴 만한 일이 자행되고 있는지도 여실히 드러났다. 하지만 나는 작가가 2008년 촛불 시위를 다루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선을 이해했는지에 대해 아쉬운 점이 많았다. 촛불 시위를 다루기 위해선, 당시 국가의 입장도 시위를 하던 사람들의 입장도 그 시위를 지켜보던 사람의 입장도 모두 고려해야했다. 이 세 입장이 이러했지만 나는 시위를 하는 사람들의 입장으로 글을 쓸 것이다가 명쾌하지 못했다. 그래서 시위를 하는 사람들이 마냥 떼를 쓰고 있는 것만 같았다. 지오에게 우리나라를 너무 불쌍하게만 소개해준 것 같아 지오를 다시 초대하고 싶었다. 여럿 이야기는 많이 펼쳐져 있는데 그 이야기들의 상처가 모두 돌보아 지지 않은 듯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