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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의 정원
다치바나 다카시.사토 마사루 지음, 박연정 옮김 / 예문 / 2010년 8월
평점 :
품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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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수업 후 잠시 보여주는 보충자료처럼 퉁명스럽게 <지의 정원>을 보았다. 고양이 빌딩에 쌓인 책만큼 머릿속에도 방대한 지식을 늘 생각하며 지니고 있는 두 지식의 거장 다치바나 다카시와 사토 마사루의 대담이 오가고 있었다. 나는 사실 이러한 방대한 지식이 낯설었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조용히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었다. 난이도는 최상이었고, 이렇다 할 이해를 하기도 전에 그들은 400여권의 책을 논하고 있었다. 익숙하다고 생각했던 '문학'조차 낯설게 다가오자 사실 얼마쯤 게임오버,를 심각하게 외친 것도 사실이다. 조금 더 읽다보니 그런 생각이 싹 사그라 들었다. 책의 수준은 높았지만, 정말 책을 그렇게 많이 읽어보지 못한 나로서는 한 발자국 조차 못 디딜 것 같은 곳이었지만, 참을성을 가지고 읽는 순간 순식간에 그들의 대담이 지나갔다. 순식간에 소개된 몇 백 여권의 책이 무색할 정도로 책은 빨리 읽혔다. 이게 무슨 조화일까 :)
그들은 책을 차근 차근 소개하면서 일본의 현실에 대해서도 논하고, 정치적인 문제라든가 사념의 경계에 대한 의견도 이 책 저 책을 통해 마구잡이로 내놓았다. 두분의 지식은 너무 방대해보였는데, 그 이유는 정말 나는 이 부분에 한해서는 이 책 저 책 모두를 소개하고 싶을만큼 할 말이 많다는 게 여실히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들이 선정한 책 400여권의 이야기를 하기에는 지면 300여쪽이 턱없이 모자란 것처럼 느껴졌다. 만약에 그들만의 지의 정원이 있다면 이제 겨우 입구에 간신히 들어선 것 같았다. 그들은 독서의 중요성을 매우 높이 사고 있었는데, 독서를 하면서도 '생각하는 독서'를 매우 중요하게 여겼다.
사토 : (...) 독서의 위험성을 논한 쇼펜하우어의 <독서에 대하여>를 읽어두면 좋습니다. 쇼펜하우어 자신은 대단한 독서가였지만, 독서가 지나치면 좋지 않다고 이 책에서 거듭 경고합니다. 독서한 다음에는 생각하는 행위가 필요한데, 책을 너무 많이 읽다 보면 생각할 시간이 줄어들어 오히려 머리가 나빠진다는 것이죠.(웃음)(123쪽)
그런 면에서 이렇게 독서를 하고 서평을 쓸 수 있다는 데 조금 감사했다. 재미있는 책을 쫓아 책을 읽기만 했던 중고등학생 때와 달리, 하나의 소설에 대해서 토의를 해볼 기회가 생긴 대학교에 와서는 좀 더 책을 깊이 읽어낼 줄 알았고, 책도 좀 더 크고 다양하게 볼 수 있었다. 그제서야 책을 읽을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 같았다. 그리고 올해 들어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 서평을 쓰고 있다는 걸 알았는데, 서평 따라 나도 나만의 서평을 쓸 수 있게 되었다. 이제 내가 읽은 많은 책들은 어렴풋이 기억을 두드려야 겨우 떠오르는 책이 아닌, 그 책에 대해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 다시 생각해볼 수 있는 책으로 차곡차곡 쌓였다. '서평쓰기'는 독서에 한해선 매우 고마운 습관이었다. 서평을 쓰는 것은 지식을 받아들이고, 다시 생각해볼 기회를 주는 바로 '생각이 쉬어가는 곳'이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저자인 다치바나 다카시와 사토 마사루가 우리나라 사람이었으면 이 책을 좀 더 깊게 이해했을 거라는 아쉬움이 들기도 했다. 그들은 주로 일본을 중심으로 책과 관련지어 논했고, 틈틈히 소개된 책은 모두 일본 내에서 판매되는 책이 중심이 되었기 때문에 고심하여 내놓은 몇 백권의 책들은 그저 하나의 '책이름'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또한 그들의 논의가 일본의 사정을 거의 모르는 내게도 날카롭게 다가왔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사정을 논해줄 이와 같은 책이 있었으면 싶었다. 만약 우리나라의 인물이 이처럼 논한 책이 있었다면 나는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이 책을 더 소중히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부록에 소개해 놓은 독서 기술 14개조는 유용했고, 책을 많이 읽는 사람들이 내는 포스는 어떤지 알고 싶다면 끝까지 읽을 것이라는 조건하에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