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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당신이 맞다 - 두 번째 스무 살, 삶의 고비에 맞서는 인생 고수들의 이야기
이주형 지음, 김주원 사진 / 해냄 / 2010년 7월
평점 :
품절
토닥토닥 마음을 두드리는 손길이 느껴졌다. 처음 이 책을 보았을 때 전해오는 편안한 느낌이 심장을 좀 더 깊게 파고들었을 때, ’그래도 당신이 맞다’ 고 위로를 건네는 것 같았다. 이 책은 모두 혹은 누구나에게 ’맞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책에서 소개하는 사람 모두(심지어 저자까지도) 허투루 자신의 삶을 산 사람은 없었고, 모두 자신이 살아온 동안 느낀 교훈을 아낌없이 독자에게 건네주고 있었다. 나는 사실 자기계발서나 누군가의 인생을 담아놓은 그런 류의 책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고, 또 못했지만, 이번 책은 달랐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를 전해주는 데도 별 거부감 없이 순식간에 읽어내렸다. 그리고, 이 책을 내가 좋아하는 다른 소설류를 제치고 별 백만개짜리 도서로 고이 간직하고 싶었다. 배울 점이 많은 책이었다.
처음에는 박완서 선생님이나 조정래 선생님과 같은 작가분들에 대한 人터뷰로 이 책에 눈이 갔다. 올해 팔순을 맞았다는 박완서 선생님은 아직도 자신만의 젊은 감각으로 멋진 글을 세상에 남기고 있었고, 근 20년동안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과 같은 명작인 장편소설을 남긴 조정래 선생님은 어느덧 태백산맥 200쇄 기념을 열고 있었다. 자신만의 길을 오롯히 걸어가시는 분들이었고, 가던 길마다 대중과 눈이 맞닿아 존경을 받고 있는 분들이었다. 박완서 선생님은 ’무엇을 하기에 늦은 나이란 없다’고 말했고, 조정래 선생님은 ’그냥 썼다, 계속 썼다, 잘 쓸 때까지’라고 말했는데, 그저 허투루 들릴 수 있는 말들이 스스로의 노력에 의해 주옥같이 빛나는 가르침이 되어 있었다. 무릇 누군가를 가르치는 사람이 되려면, 자신이 실행해온 인생모토를 겨우내 꺼낼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할 것 같았다. 이 책에서는 그런 말들을 존경받는 분들이 모두 하나씩 내어놓은 그런 책이다.
곳곳에 별 따주듯 ’열정’을 나누어주는 구절이 눈에 띄었다. 내가 이 책에 큰 점수를 주는 이유도 무기력해 있던 ’열정’을 살그머니 끌어내주기 때문이었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박웅현씨를 소개하는 글에서 창의성으로 대표되는 그에게 창의성이란 어떤 것이었는지 소개하는 구절이 나온다.
창의성이란 무엇인가를 진심으로 좋아해 거기에 열정적으로 빠지고, 그 재미와 가치를 온몸으로 느끼고, 감동학 그래서 더 잘하기 위해 노력하고 , 그러면서 조금씩 성취를 이뤄가는 과정에서 자연히 나타나는 것이다. (30쪽)
박웅현씨가 지닌 창의력의 비결은 바로 모든 것에 경탄할 줄 아는 감동의 결과였다. 그는 ’그녀의 자전거가 내 가슴속으로 들어왔다(빈폴)’, ’잘자! 내 꿈 꿔~(KTF)’, 2등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삼성)’, ’생각이 에너지다(SK에너지)’ 등의 광고를 만들었는데, 이러한 광고에서 발휘할 수 있던 창의력은 자신의 명함 뒷면에 쓰인 ’surprise me!’로 부터 발하고 있다고 한다. 나는 내게 필요한 창의력을 찾기 위해 내 눈 앞에 놓인 무언가를 향해 생각부터 해야한다는 걸, 깊게 깨달았다. 무기력해 있던 ’열정’이 처음으로 깨어나는 순간이었다.
또한, 현실적인 그들의 깨달음에도 배운 바가 있다. 줄리어드 음대 강효 교수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가르침’에 대한 이야기가 잠시 나왔는데, 선생님과 학생에 입장에 관한 에피소드를 전했다. 그 때 저자인 이주형 기자가 내놓은 후회는 나의 마음까지 잠시 쿡쿡찔러대더라.
강 교수의 얘기를 듣고 돌아보니 나도 후배들에게 조언한답시고 결국에는 내 입장에서 내 자랑만 늘어놓았던 건 아닌지 부끄러웠다.
후배들이 기사를 쓴 뒤 봐달라고 할 때, 이건 이렇고 저거 저렇고 한두 마디 늘어놓다 보면 어느새인가 나도 모르게 "내가 예전에 기사 쓸 때는 이랬는데……" 하면서 결국 자기 자랑으로 빠지기 십상이었던 것이다.
과연 그때 후배들은 내 얘기를 듣고 무슨 느낌을 받았을까 생각하면 얼굴이 달아오른다. (..) 후배는 현재에 살지 선배의 과거에 살지 않는다.(53쪽)
역시 그의 이야기를 보면서, 나는 부끄러운 얼굴로 나의 과거를 돌아보게 되었다.
이 책의 강점은 자신이 관심없던 직업의 최고자도 서슴없이 만날 수 있다는 것인데, 작가가 직접 인터뷰를 하였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옮겨놓았기 때문에 무엇보다 전하고자 하는 내용을 생생하게 담고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뮤지컬 음악 감독 박칼린의 이야기에서 전하는 마지막 메세지도 인상깊다. 거기서 스티븐 건 교수의 졸업 축사가 소개된다.
"여러분의 직업은 결코 여러분이 누구인지 정의하지 못합니다. 열심히 일하세요. 하지만 일에 휘둘리지 마세요. 여러분은 직업이 아닙니다.(Don’t give your work too much power over ou. It’s not who you are.) 여러분은 모두 너무나 다양한 재능과 관심, 개성을 지닌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여러분이 성취한 것 때문이 아니라 여러분이 바로 여러분 자신이기에 사랑합니다. (후략)"(197쪽)
아마 자신의 일에 지쳐있는 사람이라면 위의 말이 뜻깊게 다가올 것이다. 혹은 지금의 나처럼 내가 나아가야할 방향에 확신을 하지 못하는 이에게도 색다르게 다가올 듯 하다.
사실 이 책은, 별 백만개짜리의 삶을 산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 좋은 책이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저자가 직접 발로 뛰어 취재한 생생한 이야기와 저자의 기자다운 깔끔한 필력이 없다면 이 책은 그저 진부한 사람들의 교훈서로 그쳤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저자의 이 책에 별 백만개를 주고 싶다. 인터뷰 사이사이 감성을 자극하는 멋진 사진들도 책이 주는 아늑한 분위기처럼 소중하게 다가온다. <그래도 당신이 맞다>는 나의 이야기까지 소중하게 인정해줄 좋은 책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