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루마 - From The Yellow Room
이루마 (Yiruma) 연주 / 스톰프뮤직 / 2003년 10월
평점 :
품절
슬픈 영화를 보고 침울해진 기분을 달래긴 위한 극처방으로 이루마의 감성을 택했다. 사실 난 피아노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지금 피아노로 칠 수 있는 곡은 어릴 때 발표회에 나간다고 연습했던 '엘리자를 위하여'와 좋아하던 몇몇 동요뿐이었다. 어릴 때 너무 좋아서 신나게 두드리던 피아노조차 체르니 40번을 뒤로 그만 두었다. 그 뒤로 줄곧 뛰어난 피아노 소리조차 듣지 않았다. 핑계일지 모르지만, 나는 학업에 지쳐 있었다. 관심없던 피아노보다는 내겐 눈 앞에 놓인 대학 입시가 먼저였다. 이따끔 쳐오던 집 안의 피아노도 나이를 먹을 수록 점차 치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점점 내가 칠 수 있는 곡도 없어졌다.
그러다가 오랜만에 이렇게 피아노 소리를 듣게 되었다. 길거리를 나서면 피아노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곳이 별로 없었다. 가끔 피아노 소리가 섞인 가요를 듣기도 했지만 그건 피아노 소리가 아니었다. 피아노 소리를 꼭꼭 밟아버린 '가요'에 불과했다. 그런 가요에선 피아노 소리보다 다른 악기 소리가 더 크게 들렸고, 사람의 목소리가 피아노 소리를 압도했다. 오롯하게 피아노만 내는 소리는 드물었다. 그래서 이번 앨범이 더 편안하게 다가오는 것 같았다. 피아노만이 조심스럽게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고 있었다.
이루마의 피아노 소리를 들으면, 음악 치료라는 것이 왜 가능한지 이해가 되었다. 마냥 슬프고 그 때문에 찡그러있던 내 표정도 어느새 온화해졌다. 슬픈 기분이 싹 가셨다. 피아노 소리가 나를 자동으로 명상의 세계로 내몰았다. 이렇게 잔잔한 음색을 집중력있게 들은 것도 오랜만이었다. 집중력이 부족했던 내게 '여유'를 선물한 것 같았다. 여름의 여유는 조금 고마울 지경이었으니 얼마나 좋아. 내가 주인공이 된 드라마의 ost마냥 소리가 흘러갔다. 온갖 감정이 그에 담겨 있었다.
<From The Yellow Room>에는 익숙한 멜로디가 종종 담겨 있다. 예전에 흥행했던 KBS 여름향기의 주제곡이었던 'Kiss the Rain'이 그런 경우다. 다른 곡으로도 종종 들어봤을 법한 사랑스러운 멜로디가 함께 담겨있다. 런던에서 활동중인 기타리스트 'Rob Albery'가 피쳐링한 음악도 함께 들을 수 있다. 자연스레 섞이는 두 소리가 아름답다. 이루마의 곡들은 앨범으로 들으면서 직접 들어보고 싶도록 사람을 이끄는 매력이 있다. 이루마의 피아노 소리가 풍기는 음악적 감성을 직접 한 번 느껴보고 싶은 바람을 담아. 언젠가 이루마 콘서트장에 앉아 있는 나를 기대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