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죄자 오리하라 이치의 ○○자 시리즈
오리하라 이치 지음, 김선영 옮김 / 폴라북스(현대문학) / 2010년 8월
평점 :
품절


 

 

처음으로, 일본 추리소설을 접했다. 사실 나는 '추리소설'의 매력조차 잘 몰랐는데, 이렇게 유명한 작가의 추리소설을 처음으로 읽게 되니 재빠른 속도로 넘어가던 책장을 닫을 땐 꽤 감격했다. 첫 단추가 제법 오싹하고 치밀했다. 추리소설의 매력을 전달하기엔 100점을 거뜬히 넘길만한 소설이었다. '도착의 론도'나 '행방불명자' 등으로 이미 내에서도 유명한 오리하라 이치는 '원죄자'로써 다시 매력적인 작가로 다가오는 듯 했다. 오늘처럼 비가 오는 여름도, 햇볕이 쨍쨍한 여름도 싹 날려버릴 듯한 오싹한 기운이 소설을 계속 쥐게 만들었다. 600쪽이 넘는 두꺼운 책을 반나절만에 다 읽어버렸다.

 

 

 쪽수가 많은만큼 '원죄자'는 방대하고, 또 그만큼 치밀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나는 보통 40화쯤 되는 드라마 한 편을 보는 듯 했다. 쉴 틈 없이 빠져든 드라마를 다 보고 쭉 빠지는 기운처럼, 원죄자를 다 읽었을 때 그런 기분이 들었다. 드디어 끝났다. 사건이 종결되었을 때도 나는 어안이 벙벙했다. 이 책을 읽는 중간에 잠깐 잠이 든 한 시간동안 꾸었던 꿈이, 아니라고 땀이 줄줄 흐르도록 자신의 죄를 부정하는 가와하라 데루오의 입장에 놓인 나였을 때, 나는 내가 방금전까지 눈을 감았던  단잠이 사실인지 아닌지 헷갈렸다. 그만큼 나는 몰입하여 원죄자인 가와하라 데루오를 둘러싼 숨막히는 사건들을 지켜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중에서 집중하여 몰입할 수 있는 '나'는 없었다. 이가라시라는 남성의 목소리로 사건이 흘러가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소설이 깊어갈수록 나는 '나'를 발견할 수 없었다. 소설 속 인물들은 거진 철저히 모두 그 자신이었다.

 

 

나는 그러한 차가운 분위기에 놓여 책을 읽어야 했다. 도무지 어느 한 명 불쌍한 인물도, 지독할만큼 나쁘다고 생각되는 인물도 보이지 않았다. 분명 그곳에서 일어나는 사건은 지독했다. 강간 후 방화, 살인, 도둑질, 강금. 죄없이 10년을 감옥에서 보내야했던 가와하라 데루오도 그리 불쌍하지 않았다. 오히려 눈살을 찌푸릴만한 '죄'를 여기저기서 저지르는 그는 원죄자인 동시에 범죄자나 다름없었다. 소설에서는 억울한 듯 하면서도 서슴없이 나쁜 짓을 일삼는 그의 심정이나 인격묘사를 실감나게 해놓았다. 그야말로 '억울할 것도 없는 억울함'으로 그는 독자에게 허탈한 웃음을 안겨주었다. 그러한 원죄자의 입장에서도 진범의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악독한 입장에서도, 원죄자였던 가와하라를 옹호하는 입장에서도 그를 증오하는 입장에서도 모두 결말에서 허탈하게 다가왔다. 흔하디 흔한 애증의 면모가 10년을 넘나드는 세월을 뒤틀림을 허무하게 풀고 말았다.

 

 

얽히고 설커 깊어 질 것만 같던 오리하라 이치의 소설은 갑자기 퉁 튀어오른 물고기처럼 가벼이 튀어올랐다. 결말에 등장하는 약방의 감초처럼 등장했던 자전거 타는 소년이나 남편에게 폭력에 시달리던 한 여성의 대화는 가히 심각하기만 했던 분위기에 가벼운 웃음을 선사한다. 이제 끝났으니깐 웃어도 되, 하고 친근하게 말을 걸어오는 것 같다. 그렇지만, 한편의 대서사시처럼 묵직하게 다가온 그의 소설은 결코 가볍지 않다. 결말은 그저 깊은 물속에서 간신히 만난 산소 한 입과 같다. 그래서 홀로 동동동 수면을 향하는 결말이 반가우면서도 지독하게 가벼운 느낌도 든다. 그러나 소설이 남긴 충격은 점점 깊어가 독자에게 추리소설로써의 만족감을 아낌없이 선사하는 것 같다. 별 꽉 찬 다섯개 짜리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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