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리
나카무라 후미노리 지음, 양윤옥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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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붉은 눈빛에 따라 내 감정이 휘어감겼다. 현혹되었다는 말이 조금이나마 가까울까. 남자는 제법 부유한 이들의 지갑뿐만 아니라, 감성만은 풍부했던 나의 우울함까지 알게모르게 함께 훔쳤다. 살짝 우울한 상태에서 읽었던 <쓰리>는, 나를 얼마나 진지하게 만들었는지 모른다. 고독한 그의 눈빛처럼, 나도 소설을 읽는 내내 깊숙히 온전한 이야기에 갇혀 잠시 고독한 존재가 되어야 했다. <쓰리>는 꽤나 조심스러운 이야기였다. 주인공 홀로 아둥바둥 살아가는 세상은, 또 그의 고민을 함께 곰씹어야 했던 동안은 소매치기를 하기위해 검지와 중지에 온전히 실었던  마지막 힘까지도 함께 할 것을 요구했다.

 

  나는 소설을 읽으면서 작가가 어떻게 소매치기의 감정이나 그를 둘러싼 상황을 잘 이해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마치 작가가 주인공인 '그 녀석'인 것만 같았다. 어쩌면 나카무라 후미노리란 사람이 작가가 되기전엔 전직 소매치기였다라는. 물론 아니겠지만, 그토록 작가의 현실감있는 상상력이 매혹적인 것만은 틀림 없었다. 어린 시절 흔하게 저지르는 실수처럼 백만번 두근거리는 마음을 안고 훔친 과자 하나를 매개로 이토록 생생한 글을 썼다면 정말 훌륭하다고 밖에 말할 수 없다. 거스름돈을 몇 백원만 더 받아도 콕콕 찔리는 양심을 부여잡고 가게를 나서는 걸음이 그토록 떨리던 기억 또한 그를 거들었을지도 모른다. 이 모든 기억이 있더라도, 없더라도 그는 자신이 표현하고자 했던 것을 90% 가까이 근접하게, 잠시 소매치기가 되어 있었다. 그러니깐 그가 과거에 소매치기이든 아니든, 소설을 쓸 때만큼은 현직  소매치기였던 것은 틀림없다.

 

  천재 소매치기인 주인공이 슥슥 다른이들의 물건을 앗아가는 동안 나는 물건이 알게 모르게 없어지던 과거의 순간들을 생각했다. 그런 상황을 계속 보면서 나는 내가 잃어버렸다고 생각했던 어떤 것들이 사실은, 훔침을 당했던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범행을 알아채거나 못 알아채거나 갑작스레 사라진 물건의 행방을 쫓는 것은 한없이 답답하고 한편으로는 오싹한 일이었다. 나는 그런 일들의 사건의 전면에서 소매치기의 행각을 볼 수 있었다. 훔치는 쪽에서도 훔침을 당하는 쪽에서도 모두 답답한 일이었다. 또 이 세상에 아주 나쁜 사람은 잔존하지 않는 다는 듯이, 착하디 착한 내면을 공개했던 그는 비참하게 최후를 맞이했다.

 

  이 책을 읽고, 작가의 다른 책들이 읽고 싶어졌다. 평범하다면 평범하고 그렇게 않다면 그렇지만은 않은 주인공 혼자 이만한 장편소설을 만들어 냈다는 것이 놀라웠다. 소재도 단촐했다. 마치 자그마한 달걀 하나의 이야기를 하면서, 그에 아주 작은 구멍을 내어 바라본 달걀 속에는 큼직한 하나의 세상이 있었어, 하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천재 소매치기의 이야기는 카타르시스를 남기듯이 내 우울함을 앗아가 버렸다. 나는 무관심하게 그의 죽음을 외면했다. 대신 더 큼지막한 소매치기의 세상이, 나아가 인간의 고독이 덜컹 소설의 여운인 양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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