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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과 그림자 - 1596년 이순신 암살사건 ㅣ 꿈꾸는 역사 팩션클럽 2
박은우 지음 / 우원북스 / 2010년 6월
평점 :
절판
<달과 그림자>와 같은 스릴러 소설은 단숨에 읽어야 그 묘미를 백배로 느낄 수 있을 것인데 다른 많은 일들 사이에 끼여 할 수 없이 틈틈히 소설을 읽어야 했다. 이순신을 암살하려고 했던 닌자를 쫓으러간 장호준은 열심히 추리를 하다가도 멈춰 있었고, 예전에 닌자였던 한 노인과 함께 닌자가 어떤 존재인지 열심히 익히가다도 호준의 시선은 멈추었다. 이를 테면 나는 참 센스없는 소설 연출자였다. 그러다보니 처음엔 누가누구인지 무던히도 헷갈렸다. 그래서 내겐 '닌자'가 더욱 알 수 없는 존재로 다가왔다.
소설 속 닌자는 '닌자' 그 자체이기도 했고, 어린시절 일명 닌자의 마을에서 어떤 상황이나 존재에 괴물처럼 동화가 잘되는(은신술의 일종이라고 볼 수도 있는) 어린 시게루이기도 하였으며, 독에 정신을 잃어가던 호준을 구한 다케바야시 신조이기도 했고, 기막히게 변장을 잘한다는 바께모노, 즉 도깨비이기도 했으며, 서로에게 칼을 겨눈 채 닌자에게서 호준이 직접 들었던 이름을 가진 결국 그는 '요미'였다. 숨이 찰 정도로 많은 이름을 가진 그는 종일 다른 사람의 모습으로 있었기 때문에 내가 헷갈렸던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였다. 결국 그 시절 사람들 모두, 심지어 독자까지 알아채지 못하도록 행동하는 것이 그의 기본적인 임무였으니깐.
소설은 그런 그를 쫓는 호준의 시선으로 이어진다. 사실 호준 또한 그의 본명은 아닌데 이름까지 바꾸어 행동해야했던 그 이유는 그가 바로 '비밀 낭청'이기 때문이다. 치밀한 첩보전을 다룬 소설인만큼 비밀이 이곳저곳에 가득했다. 소설 속에서 단 한 번 나오는 이름, 김준경은 자신조차 낯설어질만큼 멀어진 이름이었다. 그만큼 그는 자신의 임무에 충실했다. 그는 온전한 장호준이 되어 누군가를 암살하려고 하는 일본의 닌자를 쫓았다. 그 길은 지나치게 막연했다. 나는 쫓고 쫓기는 둘의 모습을 보면서 돌연 닌자어쎄씬에서 숨막히는 액션 연기를 했던 '비'의 모습이 떠오르기도 했다. 닌자인 요미의 모습과 치밀하고 숨막히게 쫓고 쫓는 호준의 모습은 '라이조'의 모습 하나로 겹쳐졌다.
라이조는 닌자 조직에서 나와 배신자가 되어 이곳저곳을 떠돈다. 닌자의 면모를 보이면서도 닌자가 아니기도 한 그의 삶은 홀로 떠도는 요미의 모습과 닮았다. 또, 닌자가 아니지만 닌자의 모습을 비슷하게 닮아가야지 요미를 쫓아갈 수 있었던 호준의 모습과도 흡사했다. 또 쉴틈없는 거친 숨소리 또한 요미와 호준 사이에 떠도는 묘한 긴장감과 흡사했다. 내게 '달과 그림자'는 그래서 더욱 생생하게 흘러갔다.
1596년, 알게 모르게 끝나버린 이순신 암살사건은 둘이 서로에게 칼을 겨눈채 조용히 끝나버린다. 이야기의 구성은 전형적인 스릴러물과 다름없다. 작가도 이러한 스릴러의 구도가 익숙함에 기대고 있다고 말한다. 물론, 전형적인 첩보전의 이야기를 역사의 일면으로 다루어 누구보다 잘 재현해 내었다고는 생각하지만, 나도 이러한 전형적인 이야기 구성에 많이 아쉬웠다. 숨막히는 묘사와 전개가 '상투성'에 묻혀 끝나버린 것 같았다. 자라리 이 책의 제목처럼 둘의 칼이 향하는 방향이 달빛 아래 비치는 그림자로 향했다면 어떠했을까 생각해본다. 하지만 역사의 구석진 한 켠을 캐내는 작가들의 노력은 역시 인상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