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우리 흩어진 날들
강한나 지음 / 큰나무 / 2010년 5월
평점 :
강한나의 다이어리를 훔쳐 보는 것 같았다. 그것도 참 오랜기간의 일기다. 이 책은 무려 4년동안 강한나의 발걸음이 닿았던 낡은 것들의 흔적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낡은 것의 미학을 이야기하는 어조는 참으로 담담하다. 그래서 조용히, 조근조근하게 사물을 보게 된다. 그저 지나칠 수도 있었던 사물들이 풍경들이, 그녀에게 의미있게 다가왔던 이유는 그녀의 감성과 더불어 담담한 발걸음이 일조하였을 것이다.
나는 그녀의 담담한 글솜씨가 부러웠다. 사물을 보는 시각이 그녀와 비슷했는데도, 나는 그녀처럼 생동감있게 표현할 줄을 몰랐다. 그녀의 표현은 수많은 발걸음과 함께 또렷하게 뜬 눈에 함박 담은 그녀만의 시선으로 다시 살아나고 있었다. 경험이 추억으로 거듭나는 순간이었다. 책 오른쪽에 있는 'play, ff, stop, rew' 등의 기호를 보면서, 그녀는 이번 여행을 통해 자신의 이제까지의 경험 또한 헤집어 다시 재구성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이 단지 4년간의 기록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의 경험 중간에 이별이 있었다. 그래서 이 글들이 이다지도 감성적이어도 그리 신경쓰이지 않았다.
'젠젠 다이조부; 정말 괜찮아. 남들 뻔히 아는 명소만 찾는다고 뭔가 부족한 거 같아? 하지만 젠젠 다이조부. 어설픈 건 네 마음일 뿐, 네 여행은 절대 어설프지 않을 꺼야.(193쪽)' 그녀의 마음을 울리는 문장은 나 뿐만 아니라 이 책을 읽는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 또한 함께 건드렸을 것이다. 갖은 세상을 살고 있는 모든 사람에게 그녀는 말한다.
'울음 참지 말고 소리 내어 꺽꺽 울어도 상관없고,
못난 치아 다 드러내놓고 큰 소리로 웃어도 돼요.
키가 커 보일 필요도, 삐져나온 살을 감출 필요도 없어요.
오장육부 긴장일랑 말고 흐트러진 당신 모습 보여 봐요.
뭐 어때요.
우리도 먼지 쌓인 얼굴로 당신 보고 있는걸요.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한참을 여기 있었는 걸요.(298쪽)' 낡은 나가사키에서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내게 말을 거는 강한나씨의 모습도 보였지만, 스스로의 마음을 도닥이고 있는 그녀의 모습도 함께 보였다.
그녀는 낡은 이야기를 게속 하면서, 말한다. 당신, 혹시 오래된 낡은 것 하나쯤 가지고 사나요, 라고.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언제 작가가 이런 질문을 던질까 싶어 내내 조마조마 했다. 꼭 한번쯤 내게 그녀가 다른 이의 낡은 것 또한 궁금해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다른 사람들 또한 자신만의 '낡음'을 소중히 지켰으면 하는 바람도 느껴졌다. 그래서 조심스레 생각해보았다. 내게 가장 낡고도 소중한 것은, 추억이었다. 영원히 낡아가지만, 더 영원하게 소중하게 간직해야할 내 보물들이었다. 추억을 하나씩 떠올릴 때 그녀의 감성이 내게도 전해져 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