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바우 나무에 새기는 사각의 시간 - 조각가 정상기의 글 이야기
정상기 지음 / 시디안 / 2010년 3월
평점 :
절판



얇은 '멀바우 나무' 한 권이 내게 말했다. 너는 내가 전하는 모든 것을 읽고, 책을 덮은거니. 책은 진득하게 이 놈, 하고 꾸중하듯이 말했다. 나는 예라고 하기에도, 아니오라고 하기에도 확실한 대답을 할 수 없었다. 멀바우 나무 이야기를 다 읽어 마지막 구절까지 조용히 읽어내긴 했지만, 금세라도 다시 책을 펴 깊숙히 빠져들 수 밖에 없는 나무, 나무 또 나무들을 보아야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멀바우 나무에 새기는 사각의 시간'은 틈틈히 다시 들리고 싶은 마음 속의 '맛집'같은 책이었다.

 

무심코 창 밖의 나무를 본다. 같은 나무인데, 다르다. 나무보다 그 모든 것을 지탱하고 있는 잎이니 꽃이 더 아름답고 이쁘게 보인다. 나무는 단지 든든하게 그것을 지탱하는 것이 기특할 뿐이다. 특히, 목련이니 벚꽃과 같은 아름답게 흩날리는 꽃이 만개했을 때는 더욱 그렇다. 그렇게 나무는 내게, 그저 조용한 '꽃의 그림자'였을 뿐이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그 나무가 돌연 주인공이 되어 책의 분위기를 주도하고 있었다.

 

나는 '나무의 이야기'를 처음 본다. 정확하게는 조각가 정상기가 만들어낸 나무의 이야기이다. 하지만 작가는 말한다. '나는 조각을 할 뿐, 어떤 모습으로 재탄생 될지는 그건 나무들의 마음이다. 나는 나무를 항상 지켜볼 뿐이다.' 그러니깐, 나무의 이야기이다. 이 책에서는 작가가 틈틈히 적어놓았던 많은 글귀가 있는데, 한 장 한 장마다의 나무를 보면서 글이 읽혀진다. 그렇게 읽다보니 나처럼 '나무'에 대한 식견이 적은 사람에게도 조각가 정상기의 이야기가 보였다. 마치 그의, 인생 일기를 읽고 있는 느낌이었다. 나무가 내게 이야기해 주고 있었다.

 

 책에는 작가가 조각을 하면서 했던 생각이나, 나무를 보면서 남긴 기억이나 기타 삶의 시간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글에서 작가의 삶의 흔적을 볼 수 있어서 좋다. 그게 모조리 느껴진다. 작가는 말한다. '이 글들을 쓰게 해 준 그 당시의 시간들에게 감사한다.'고. 다른 좋은 시들이, 글귀들이 많이 있었지만, 이를 가장 마음에 와닿은 구절로 뽑은 이유는 공감되었기 때문이다.

 

내게도 지난 날의 이야기가 담긴 일기가 있다. 지난 겨울에는 눈을 보면서, 거무튀튀한 계단을 눈 사이로 뛰엄뛰엄 찍힌 발자국에  의해 마치 12단 피아노 마냥 볼 수 있었던 것도, 고고하게 피어있는 눈꽃을 보고 아름답다고 느낀 것도 모두 눈이 펑펑 올 때, 그 때 그 시간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도 늘, 그 일기를 쓸 수 있게 해준 그 당시의 순간, 그 시간에 감사했는데, 작가가 그 이야기를 서두로, 뒤이어 자신의 시간을 깊고 자세하게, 나무와 글에 담아 이야기해주어 읽는 내내 무언가 배우는 느낌이 들었다.  

 

아직도, 책을 너무 빨리 읽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에 마음 한 켠이 불안하다. 분명, 아직 나무가 내게 해 줄 이야기는 더욱 많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작가가 새겨놓은 '사각의 시간'에 내 시간을 조심스레 담으려고 한다. 왠지, 멀바우 나무 이야기는 읽을 때마다 색다른 느낌이 드는 소중한 책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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