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테미스
앤디 위어 지음, 남명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7년 11월
평점 :
품절


 

작가란, 하나의 거대한 세계를 마음대로 세울 수 있는 존재다. 하나의 세계를 세우기 위해선 그 세계를 뒷받침할 수 있는 거대한 세계관이 있어야 하며, 그 세계관을 엮는 매우 촘촘한 근거들과 모순 하나 없어야 할 논리관계가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작가는 모순적인 존재가 아닌가, 뛰어난 상상력은 물론이거니와, 그것을 지탱할 수 있는 논리적 사고 역시 갖춘 사람들이니, 모순적이라 할 만하지 않나.  흡사 국어를 잘하는 이과생이라거나, 수학을 좋아하는 영문학도와 같이 말이다. 그런 면에서 아르테미스의 작가 '앤디 위어'는 내게 모순덩어리 그 자체였다.

 

앤디 뒤어는 이미 '마션'을 통해 다가올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펼쳐낸 바 있다. 이미 영화화 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익숙한 이 '마션'이야말로 그의 존재를 세상에 알린 작품이며, 또한 평범한(?) 프로그래머였던 그가 처음 이 '마션'을 블로그에 연재하기 시작하며 독자들에 의해 결국 출간에까지 이를 수 있었던 일화는 이미 너무나도 유명한 이야기가 되었다. 한국어로 번역된 프로필에는 '평범한 프로그래머'라고 했지만, 평범한 프로그래머가 과연 이런 거대한 작품을 써낼 수가 있었을지. 결국 '낭중지추'라, 재능을 가진 사람은 어느 분야에서 일을 하건간에 그 재능이 본인의 분야를 뚫고 나오게 되는 게 아닐런지.  평범한 프로그래머의 예기치 않은 성공으로 앤디 위어를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이 '아르테미스'마저 권하며 묻고 싶다. 정말 '평범한' 프로그래머, 맞습니까.

 

앤디 뒤어의 두 번째 작품인 아르테미스는 지금으로부터 70년 후, 달나라(?)에서 펼쳐지는 사건에 대한 기록이다. 전작인 '마션'에서 그러했듯, 수많은 수학적 조사와 자료들을 근거로 달나라를 둘러싼 세계관을 완성하는 한편, 보다 다양하고 심층적인 캐릭터들을 등장시키며 전작에서 크게 도드라지지 않았던 본인의 문과적인 역량에 힘을 더 쓴 듯 보인다. 게다가 초반부터 등장인물들의 캐릭터들의 설명을 위해 곳곳에 적지 않은 공을 들인 덕에, (결코 작지 않은 분량의) 책을 읽는 내내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보듯 순간적으로 몰입할 수 있었다. 주인공 재즈를 비롯해서 얼간이 스보보다, 그리고 이메일 상으로만 등장하는 캘빈까지, 각 캐릭터 별로 그 특성을 집약적으로 묘사함으로써, 읽는 재미를 더하고 있다. 특히 이메일의 형식으로 책 중간중간 등장시키는 캘빈의 존재야말로, 앤디 뒤어의 본격적인 작가적인 재능을 드러내는 셈이 아닌가 하니, 이쯤 되면 너무 찬사와 경탄에 치중한 글쓰기 아니냐고, 누군가 면박을 줄 수 있겠다 싶다.

 

흡사 영화의 인트로와 같이 각 인물들에 대한 설명과 세계관이 개략적으로 설명되는 책의 초반부를 지나면서부터, 이야기는 점차 빠르게 전개된다. 마치 이제 곧 빠르게 낙하하며 하강할 예정인 롤러코스터가, 천천히 위를 향해 전진하다가 일순간 속도를 내기 시작한다. 평화로웠던 달나라 아르테미스에 살인사건이 발생하게 되는 그 순간부터 말이다.

 

주인공 재즈는 의도치 않게 살인사건에 휘말리게 되며 이후 '아르테미스'에서의 선과 악 사이에서 좌충우돌한다. 각 등장인물들은 사건이 진행되는 동안 조력자로, 혹은 방해자로 각자의 길목에서 기능하고 있다. 조력자처럼 보였던 누군가가 사실은 방해자, 또는 배신자가 되기도 하고, 방해자처럼 보였던 다른 누군가가 실제로 조력자가 되기도 하며 극을 이끌고 있다. 또한 가장 기본적인 가족애부터, 이기주의를 비롯한 동료애, 그리고 자기희생에 이르기까지, 헐리웃에서 선호하는 입체적인 감정선들을 마치 종합선물세트마냥 모두 다 담아내고 있다. 아버지 아마르가 나오는 장면에선 흡사 아마겟돈의 브루스 윌리스가 연상되는가 하면, 나 혼자 살겠다고 주인공을 곤경에 빠뜨리는 어느 누군가에게선 인터스텔라의 만박사를 떠올릴 수 있었다. 

 

아르테미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올림포스 12신 중 한 명으로 달, 숲과 사냥과 관련된 여신이다. 작가는 달에 건설된 도시 이름을 아르테미스로 설정했지만, 글을 완독하며 아르테미스와 어울리는 건 되려 주인공 재즈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비상한 두뇌와 함께 관능적이면서도 활달한 캐릭터의 여주인공 재즈를 통해, (글의 서두부터 시종일관 지긋지긋하게 찬사를 보냈던) 앤디 위어의 모습이 겹쳐보인다. 작가는 주인공 재즈를 통해서, 그 스스로가 만들어 낸 아르테미스 라는 세계를 만끽하는 듯 하다. 그런 연유로 이 책은, 그 안에 듬뿍 담긴 작가의 애정이 진하게 느껴진다. 작가로서 상상력의 나래를 맘껏 펼친 뒤, 그 아래에 과학적 고증을 하나하나 잘 만들어 붙여왔을 작가의 재미 또한 느껴진다. 마션이 그러하였듯, 이 책 역시 영화화가 된다면 어떤 느낌일까. 캐스팅에까지 관여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건, 비단 나만은 아닐거라 생각한다. 책을 읽은 어느 누구라도 다 그러한 마음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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