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는 다정한 미술관 - 일상에서 발견한 31가지 미술사의 풍경들
박상현 지음 / 세종(세종서적)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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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속에서 너무 익숙하기에 쉽게 지나치는 일 중에 미술과 관련된 것이 많이 있다. 미술의 영역이 캔버스에 붓으로 물감을 칠하는 일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므로 그러한 것들은 생각보다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다.

 

<도시는 다정한 미술관>은 이렇게 일상에서 발견할 수 있는 31가지 미술사의 풍경들을 독자가 미처 생각해 보지 못했을 주제로 쉽게 설명해 준다.

 


하지만 "다정한" 제목처럼 내용이 다정하기만 한 건 아니다.

저자는 미술을 소재로 하였지만 그의 설명은 인문, 사회, 역사, 인종 등 다양한 영역을 아우른다.


책에 나오는 내용의 대부분은 솔직히 그동안 내가 한 번도 고민하거나 의심을 가져보지 못했던 것들이다. 따라서 나는 이 책을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작가의 혜안에 감탄하고 나의 무지에 부끄러워했다.


책의 초반은 비교적 가벼운 주제로 시작한다.

공공장소에서 앉는다는 행위, 카메라 앞에서 웃는 사람들, 단체 사진 찍기 등 각각의 것들이 언제 처음 생겨났는지를 역사적 사실들과 함께 풀어본다.


모두 그냥 당연하게 생각해 왔지 이것들의 기원에 대해 단 한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것들이다.

  


 무엇보다 내가 작은 충격을 받은 것은 바로 고대 그리스와 로마 시대의 조각상들이 원래는 흰색이 아니었다는 내용이다.


조각상들에 색을 입히는 것이 어찌보면 너무도 당연한 것인데 나는 그동안 한 번도 이런 생각을 하지 못했었다는 것에 화가 나기도 하고, 사람들의 머리에 각인된 선입견이라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다시한번 느낄 수 있었다.

  


책은 뒤로 갈수록 점점 사회성 짙은 내용을 담고 있다.


여기에는 예수의 어머니인 성모 마리아가 그림에서 항상 젊은 여인으로 등장하는 것이나 우리가 알고 있는 전형적인 예수의 모습이, 기독교의 뿌리깊은 모순성에 기인하거나 문화의 토착화라는 설명으로 풀이될 수 있다는 것 등이 있다.


앞서 언급한 고대 조각상의 채색 건과 마찬가지로 또한번 나의 머리에 충격을 선물해 준 것은, 서양 미술에 등장하는 '야만인'의 모습이다.


그들이 표현한 야만인, 즉 하와이 원주민이나 인디언, 동양인 등은 그들의 표현대로 야만적이고, 지적으로 덜 성숙했으며, 잔인하기까지 하다. 이에 대해 인류 깊숙이 자리잡은 편향된 인종주의이며 모두 사실과 다르다고 항변할 수 있다.


그렇다면 서양인들이 반대로 그 야만인들을 '고결하게' 그려준다면 어떨까. 

 


실제로 서양 역사에는 야만인들을 숭고하고 진지하며 고결하게 표한한 작품들이 있다. 이것을 그들을 비하하는 인종주의라고 비판하기는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러한 '고결한 야만인' 역시 서구에 전통적으로 존재하던 뿌리깊은 하나의 편견이다. '문명이 발달한 서구는 타락하고 더러워졌지만, 그 반대의 사람들은 순수하고 착하며, 때묻지 않았다'는 생각은 타락한 서구의 삶을 비판하는 논리에 동원되어 왔다.


'난폭한 야만인' 뿐만 아니라 '고결한 야만인' 역시 극복해야 할 편견인 이유는, 묘사 대상이 주체성을 잃고 타자의 시각과 판단으로 규정되고 객관화되기 때문이다. 사진이 잘 나왔다고 친구들이 아무리 칭찬해도 내가 맘에 안 들면 그만이듯이 나의 모습을 정확하게 결정하는 것은 다름아닌 바로 나이기 때문이다.


남이 결정해 주는 나는 주체성이 없는 단편적인 나일 뿐이다. '난폭한 야만인'에 비해 '고결한 야만인'은 무해해 보이지만 우리 사회에 교묘하게 숨어있다.



여성 및 인종 차별에 대한 문제제기는 책에서 또 등장한다.


흑인 여성을 브랜드의 주인공으로 하지만 그녀의 모습은 전형적인 하녀의 그것일 뿐, 백인이 등장하는 브랜드의 모델이 기업의 창업자인 경우가 많은 것과 심하게 대비된다.

 

 

미술계에서 여성들이 소외되는 현실은 '게릴라걸스'라는 포스터를 통해 너무도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메트로폴리탄미술관에 소개된 아티스트들 중 여성은 5%인 데 반해 누드화에 등장한 인물의 85%가 여성이다...여성이 이 미술관에 들어가려면 옷을 벗어야 하는가?"



뉴욕 맨해튼의 9.11 기념관과 베트남 참전용사 기념관이 이전의 기념관들과 다른 모습을 하고 있는 이유를 읽으면서, 슬픔을 감추고 숨기는 것이 비극을 기념하는 진정한 방법이 아님을 깨달았던 미국민들처럼 나 역시 그들에게 공감할 수 있었다.

 

 


 

제목처럼 <도시는 다정한 미술관>은 도시에서 자주 볼 수 있지만 지나치기 쉬운 다양한 미술 작품들을 다정하고 상세하며 쉽게 설명해 주는 고마운 책이다.


물론 앞서 기술한대로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미술의 단편적인 지식 조각들 뿐만이 아닌, 역사와 사회 속에 숨겨진 모순과 편견들을 일깨워 주는 것이기에 이 책은 '다정함' 만으로 표현의 한정을 짓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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