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는 오리의 부리 하나를 벌리더니 칼끝을 입 안에 있는 얇은 입천장에 재빨리 박아 넣고 그대로 뇌까지 찔렀다. 그다음 칼을 빼낸 뒤 목에 박아 넣어 바로 경동맥을 끊어 피를 뺐다. 두 주 전에 도축장에서 목격한 것과 거의 동일한 절차였다. 고통을 느끼지 못하도록 뇌와 몸의 연결부위를 재빨리 끊어낸다. 그다음 피를 빼낸다. 빨리 해치운다. 깔끔하게 처리한다.

새로운 기술을, 그것도 어른이 되어서 배우려면 일상적으로 알고있는 것을, 혹은 안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잊어버려야 한다.

도축 행위는 최소한 당신이 당신 자신의 몸뿐만 아니라 돼지의 몸의 위치를 현재시제에서 찾아내기를 요구하는, 바로 지금, 이순간의 행위다.

모두가 우리가 먹는 동물과 이 정도로 가깝게 살아간다면 어떨까? 만일 밥상에 고기를 올리기 위해 이런 톱과 칼과 고기용 식칼을 쓰는 일을 직접 하거나 아니면 최소한 눈으로 봐야 한다면? 그렇다면 우리는 고기를 얼마나 많이 먹을 수 있을까? 우리가 그 일이 요구하는 힘겨운 역설을 이해한다면 그 친밀한 독해를 해내는 다른 사람들에게 얼마나 많은 비용을 기꺼이 지불하려 할까?

미국인들은 한 해에 일인당 무려 120킬로그램에 달하는 고기를 먹는데, 이는 오스트레일리아 다음으로 가장 많은 양이다. 어쩌면 미국인의 식탁에서 16온스짜리 꽃등심이 자부심의 상징이 된 이유는 미국 고기가 (값이 싼 건 말할것도 없고) 풍미와 질감이 없기 때문인지 모른다. 우린 16온스짜리 꽃등심을 통째로 먹고 질려버리는 걸로 만족해야 하는 걸까?
좀 더 나이 든 동물을, 운동이 허락되고 다양한 사료를 먹는 동물을 (복잡한 풍미와 질감을 가지고 있고, 더 오랜 시간 사육해야 한다는 점에서 어쩔 수 없이 더 비싼 동물을) 먹는다면 우리의 육식 생활은 어떻게 달라질까? 아마 가스코뉴의 내 친구들처럼 고기를 훨씬 적게 먹게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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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크리스티앙이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고 했던 말이, 그리고 도미니크가 혼자서 일하면 죽는다고 했던 말이 바로 이 뜻이라고 생각한다. 샤폴라르가족은 항상 변하는, 때로 적대적인 경제, 문화, 환경을 가로지르는 위태로운 통로에서 공동 네트워크라는 나름의 게릴라 전법을 구사해왔다. 어떤 사람들이 보기에 이것은 부담스러운 노동량일 수 있다. 더 빠른 기계톱이 있는데 어째서 발골 칼을 사용하는 걸까? 시간도 훨씬 더 많이 들고 누구도 차이를 알아차리지 못할 텐데 어째서 동물을 인도적으로, 천천히 사육하는 걸까? 내게 샤폴라르 집안의 게릴라 전법과 그것이 요구하는 모든 노동이 저항처럼 보였다.
그리고 어쩌면 내 삶에서 사라져버린 것은 이런 종류의 저항인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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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이 풍미를 찾지는 않는다고? 어째서 우리는 풍미가 아주 강하지 않은 고기 부위에 더 많은 돈을 지불하는 걸까? 어째서 안심은 치아가 약하고 미뢰가 예민한 프랑스 할머니들이 제일 좋아하는 부위이자 동시에 파워 슈트를 입은 부유한 미국 비즈니스맨의 상징이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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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살아 있는 동물이었다. 이제는 죽었다. 이것이 그 피다. 그 피가 믹서에 들어간 고기와 지방 속으로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았고 이제는 그것을 창자에 담았다. 이제 이것은 소시지다. 이제 우린 이것을 삶을 것이다. 그다음에는 먹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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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는 모든 것이 혼돈이고 새로움이었지만 그 혼돈 아래에서 세심하게 계획된 질서를, 오직 샤폴라르 사람들만이 알고 있는 리듬과 철학을 감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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