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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이 있었다
이재무 지음 / 열림원 / 2022년 11월
평점 :

책 소개
사십여 년 동안 꾸준한 작품 활동을 이어온 이재무 시인이 그간 발표했던 연시를 엮어서 시집 "한 사람이 있었다"를 출간했다. '사랑'에 집요한 집착을 보이며 사계절 동안 변하는 세상 만물에 자신의 마음을 표현한 시집이다. 시집은 기존 발표한 시와 신작을 포함한 82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다.
"한 사람이 있었다"라는 4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고통으로 완성되는 사랑, 2부는 사랑의 슬픔과 고통, 3부는 아련한 첫사랑에 대한 추억과 가슴 두근거리던 시절에 대한 그리움, 마지막 4부에서는 본인의 사랑을 자연물에 빗대어 사랑을 말하고 있다.

바다는 바다다. 바다는 벼랑에 부딪혀 부서지는 파도에 달라지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바다가 아니다. 누군가 장난스럽게 쏘고 간 화살에 사랑에 감염됐다. 한때 풋내기 사랑놀음으로 끝내야 할 것을, 평생을 가슴앓이 하며 살고 있다. 사랑은 달콤한 속삭임으로 얼마나 많은 달큼한 시름을 주었던가. 하지만 얼치기 가슴에 낸 생채기 따위 잔망스러운 신이 신경이나 쓸까?
육십이 넘는 세월을 살아왔는데 아직도 수저질이 서툰 모양이다. 삐끗한 수저질에 빠알간 김칫국이 엎질러졌다. 에그머니나. 화들짝 놀라 피했지만 해사한 남방에 추레한 국물 자국. 혀를 차며 얼룩을 지워내다가 서투른 감정을 엎질렀던 그날이 떠올랐다. 해사한 너를 닮은 살구 꽃잎이 봄바람에 살랑거리던 그날 네게 마음을 전했었지.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어물거렸지. 하지만 지금 나는 옷에 번진 희미한 얼룩에 짜증을 내고 있다.

고질병이 도져 풍경을 쫓아 길을 나섰다. 가슴에 아물지 않는 상처에서 흘러내리는 진물에 꽃향기와 초록을 발랐다. 풍경에 기대어 햇볕도 쐬고 비도 맞고, 싱그럽게 지저귀는 새소리도 들었다. 마음이 부어 아파서 풍경을 감았다. 구름에 숨은 바람도 감고 강에 붙은 계곡도 감았다. 그리고 드넓고 든든한 바다도 감았다. 뒤만 쫓다가 넘어져 마음이 아플 때 너와 함께 했던 풍경으로 들어가 풍경이 된다.
비뚜름한 마음에 산책을 하다가 공원의 나무들을 보니 하는 꼴이 가관이다. 따스한 햇살에 반짝이는 탐스러운 두툼한 초록 잎이 제 눈에도 예뻐 보였는지 연신 참새를 재촉한다. 수다스러운 매파는 이리저리 왔다 갔다 짧은 날개를 바삐 놀렸다. 하지만 그렇게 곰살맞게 굴던 녀석이 먹구름이 몰고 온 세찬 소나기와 거센 바람에 표정이며 몸짓이 사나워졌다. 쯧쯧 하는 짓이 인간을 빼닮았구나.
저자 소개
이재무. 1958년 충남 부여에서 태어나 한남대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동국대 국문학과 석사과정을 수료했다. 1983년 『삶의 문학』 및 『실천문학』과 『문학과 사회』 등을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 한신대 외 여러 대학에서 시 창작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 시집 『섣달그믐』, 『온다던 사람 오지 않고』, 『슬픔에게 무릎을 꿇다』, 『벌초』, 『몸에 피는 꽃』, 『시간의 그물』, 『위대한 식사』, 『푸른 고집』, 『저녁 6시』, 『경쾌한 유랑』, 『슬픔은 어깨로 운다』, 시선집 『오래된 농담』, 『길 위의 식사』, 『얼굴』, 시평 집 『사람들 사이에 꽃이 핀다면』 『긍정적인 밥』, 산문집 『쉼표처럼 살고 싶다』, 『생의 변방에서』,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밥』, 『집착으로부터의 도피』, 공저 『민족 시인 신경림 시인을 찾아서』, 편저 『대표시, 대표 평론 Ⅰ·Ⅱ』 등을 발표했다.
감상평
시에 대해 문외한인 내가 보기에도 사랑이 흔적이 보인다. 어릴 적 시인의 이웃 마을에 살았다던 숙이는 어떠했길래 어렸던 소년이 육십 중반을 바라보고 있는데 이리도 절절할까. 오롯이 숙이가 전부였던 소년은 세상을 담담히 바라볼 수 있는 나이가 되어서도 첫사랑에 대한 감정을 이렇게 엎지를 수 있을까?
첫사랑과 유년에 대한 추억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감히 흉내도 내기 어려운 감성으로 잔잔히, 때론 격렬하게 표현하고 있다. 처음 읽을 때는 그저 사랑과 그리움, 추억에 대해 쓴 흔한 시라고 심드렁히 읽었다. 하지만 두 번 읽고 세 번을 곱씹어 보니 나마저도 숙이가 그리워진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제 주관대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