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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
박태원 지음, 이상 그림 / 소전서가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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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뭔가 스트레스로 생각이 많은 하루를 보내고 나면 주말은 그냥 눈을 감고 오래오래 잠들어 있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잠은 죽어서는 평생 잘 수 있다지만 커피를 마셔도 쏟아지는 잠은 어쩌겠는가.. 불면으로 시달린다는 사람의 고통을 말로는 위로하며 이해한다고 하지만 피곤하게 머리를 계속 쓰다보면 어떻게 잠이 안 올 수 있는지 진심으로 이해하지는 못하는 심정이다. 나에게 3일 동안 잠을 잘 수 있다고 한다면 좋아하는 음악을 틀어 놓고 세상의 걱정거리를 모두 잊어 버리게 정말 3일 연속 잠을 잘 수도 있을 것 같다. 잠자는 숲속의 왕자나 공주를 찍으면 수당을 주겠다고 하면 좋아라 할지도 ㅎㅎㅎ 과거 대학교 교양 과정에서 이 책을 읽고 감상문을 쓰라고 시킨 교수님이 계셨는데 학점에 별 관심을 두지 않는 것을 쿨한?것처럼 여겼던 대학생 시절, 기한도 넘기고 별로 열심히 감상문을 쓰지 않았던 기억을 되돌아보니 그런 과거의 아쉬움 때문인지 새롭게 개정된 구보 씨의 일일이 나왔을 때 옛날의 기억도 겹쳐져 무척 반가웠다. 그렇지만 다른 한 편으론 구보 씨의 하루가 어땠는지 기억에 남는 장면이 거의 없는 걸 보면 그의 하루에 정말 특별한 무언가가 없었기 때문이었을까...? 다시 읽으며 이런 이야기였나 - 고개를 갸우뚱하고 읽었을 정도로 처음 접하는 새로운 이야기인 듯 읽어 내려갔다. 




       전에 읽었던 책이 있었음에도 이 책을 다시 구매한 이유는 작가 이상의 그림이 콜라보 된 책이라는 데 마다할 리가... 이상, 정지용, 이태준 등과 함께 1930년대 모더니즘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답게 그 시절 행동하지 못하는 청춘의 방황과 무력감이 작품 곳곳에 묻어 났고, 이상의 그림체는 그 당시의 모던 보이 그 자체를 보여주는 듯했다. 현대에도 작가들의 아지트나 청춘들 모임의 장소가 특정 바나 특별한 장소를 제외하고 카페인 경우가 많겠지만 구보 씨도 정말 다방을 뻔질나게 드나든다. 옛날 다방이라는 곳은 가본 적이 없지만, 뭔가 담배 연기와 옛 지글거리는 음반 소리, 두런두런 그 시대 사람들의 은밀한 대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 다소 촌스럽지만 화려한 소파와 장식으로 채워진 공간이 떠오른다. 요즘에도 과거 모던보이 시대를 떠올리게 하는, 혹은 달걀 노른자를 깨뜨려 넣어 먹었다는 쌍화차의 다방이 있어 가 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다방 애호 보이 아니랄까봐 작가의 출생지도 '대한제국 한성부 다방골'이다. 웃어야 할지 잠시 생각을 해 보다가 대한제국이라는 국호가 낯설면서도 애닯다. 대한제국-대한민국... 지금의 대한민국은 국방력 세계5위를 넘어서는 강한나라가 되었고 더 강한나라가 되어가고 있는데, 그때의 대한제국은 왜 슬픈역사가 되었을까.. 물론 그 시대의 실수와 자책거리도 많을지 모르지만 그렇다 해도 잦은 왜란을 거치며 이웃을 약탈하고 국권을 침탈한 악의세력에게 무작정 면죄부를 줄 수는 없다. 이미 김대중-오부치 국가간 선언을 통해 본인들 죄를 인정하고서 그 이후 돈이면 친일하는 잘못된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국제약속을 무시하고 다시 역사를 날조하고 혐한기조로 희생자와 피해자가 원치않는 기금이랍시고 던져주고 대한민국이 국제법을 따르지 않는다고 적반하장으로 나오는 극우종자들에게는 더더욱.







       작가 이상 님이 패션잡지 일러스트로 넣어도 손색이 없을 것 같은 이렇게나 모던한 그림을 자유자재로 그릴 수 있는 분이었다는 것, 그리고 이 책의 작가 박태원 님이 영화감독 봉준호 님의 외할아버지였다는 점은 몰랐던 사실이라 놀라웠다. 소설가 구보 씨는 아직 내놓을 만한 작품을 쓰지도 못 한, 일제시대에 암울한 하루하루를 살아간 청춘이었는지 모르겠지만, 훌륭한 작품을 세상에 내보이겠다는 작가이자 예술가의 염원의 핏줄이 대를 이어 연결되어 전하여 진다는 것은 감동스럽고도 멋진 일이 아닌가.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이 출간되었던 1934년은 1930년대, 특히 1931년 만주사변이 발발한 이후 한반도에서의 통치 강화를 위해 정치적 활동을 금지하고 한국인들의 자치권을 철저히 박탈시키면서 경찰력을 강화하고 반일운동을 탄압했던 때였다. 특히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말살시키고 일본제국주의 이념을 주입시켰으며, 한국 농민들에게 고율의 세금 부과, 농민들의 수확물을 강제로 일본 군수 산업을 위해 싸게 바치도록 하는 등 경제적 착취를 통한 빈곤률을 발생시키고 대륙침략의 핑계로 일본의 식민지 산업을 발전시키기 위해 한국인들의 생활 향상과는 관계도 없이 마음대로 한국 지형을 훼손시키며 인프라 개발이 이루어진 때다. 학교 교육에 있어서도 문화 동화 정책을 위해 한국인의 문화와 정체성을 말살시키고 '조선어 사용 금지'를 통한 언어 말살과 일본어 사용을 강제화했던 때로, 한국의 역사와 문화는 무시되거나 왜곡이 일상이었던 시대여서 한국의 전통 문화와 관습이 말살되거나 억압되고, 일본의 신사참배를 강요하면서 한국 사회에 대한 통제와 감시, 탄압이 일상인 시대였다. 그럼에도 한국민들의 나라를 되찾으려는 저항운동은 끊이지 않았고, 국내에서 탄압이 심해졌을 때는 만주를 비롯한 대륙으로 이동하여 독립운동이 이어지는 등 우리 국민들의 저항운동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그러한 시대에 행동하지 못하는 구보 씨로 대변되는 그 당시 청춘의 무력감은 어떠했을지 작가의 소설을 통해 아주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을 지도(제국주의일본의 감시가 심각한 시대에 그들의 만행을 소설일지라도 책에 담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혹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당시에도 벗에 대한, 여성에 대한, 돈에 대한, 어머니에 대한, 행복에 대한, 꿈에 대한 이야기를 품은 한 사내의 하루 동안의 일상 생각을 엿볼 수 있을 지도,,, 어느 때나 어느 국가나 어느 사회나 힘든 면이 있다지만 나라를 잃은 사람들의 일상을, 어떠한 경우에라도 온전히 행복하다고 느낄 수 없는 당시 국민들의 일상을 요즘의 일상과 비교조차 할 수 있을까. 시대를 초월한 어머니에 대한 마음은 아래와 같이 표현되었다. 그 힘든 시절에도 어머니의 변함없는 거룩한 사랑과, 좋은 소설을 쓰라고 진심으로 말해 주는 벗이 있었기에, 구보 씨는 자신을 모멸적으로 바라본 일본순사의 눈초리에도 불쾌하지 않았으며 내면의 행복감을 잃지 않았을 것이다.




    이렇게 밤늦게 어머니는 또 잠자지 않고 아들을 기다릴 게다. 우산을 가지고 

    나가지 않은 아들에게 어머니는 또 한 가지의 근심을 가질 게다. 구보는 어머니의 

    조그만, 외로운, 슬픈 얼굴을 생각하였다. 그리고 제 자신 외로움과 또 슬픔을 

    맛보지 않으면 안된다. 구보는 거의 외로운 어머니를 잊고 있었던 것임에 틀림

    없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그 아들을 응당, 온 하루, 생각하고 염려하고, 또 걱정

    하였을 게다. 오오, 한없이 크고 또 슬픈 어머니의 사랑이여. 어버이에게서 남편

    에게로, 그리고 다시 자식에게로, 옮겨가는 여인의 사랑 - 그러나 그 사랑은 

    자식에게로 옮겨 간 까닭에 그렇게도 힘 있고 또 거룩한 것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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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림보 거북이의 단단한 결심 라임 어린이 문학 50
미하엘 엔데 지음, 율리아 뉘슈 그림, 전은경 옮김 / 라임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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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시절 정말 좋아한 '모모'의 작가 미하엘엔데가 쓴 동화책이라는 걸 모르고 봤다고 해도 정말 좋아할 동화책이었겠지만, 알고 읽으니 더 애정이 가는 동화책이다. 읽고 또 읽어도 여운이 깊게 남았던 모모만큼이나 느리게도 계속 생각나는 여운이 남는 동화책이다. 아마 글 작가뿐만 아니라 그림을 그린 율리아 뉘슈의 그림체가 더욱 마음에 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보고 또 보아도 무언가 위로가 되는 따뜻한 그림체... 


   어렸을 때는 '모모'의 작가에 대해서 이름 이외에 그 배경에 대해서는 잘 몰랐는데 독일 남부에서 초현실주의 화가인 아버지와 화가 어머니의 외아들로 자라났다니, 미하일엔데 작가가 손수 그림을 그렸다고 해도 독특한 그림체를 보여주었을 것 같다. 그 시대 작가의 아버지가 나치들로부터 예술 활동 금지 처분을 받아 어려움을 겪었다고 하는데, 그럼에도 그 부모님에게 물려받은 예술가적 기질은 작가의 재능을 막지 못하여, 글뿐만 아니라 그림은 물론, 연극에서도 두각을 보였다고 한다. 그림과 철학, 신화, 종교학, 연금술 등에도 정통했던 아버지에게 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징집 영장이 발부되면서 모든 가족이 나치의 눈을 피해 도망 다닐 수밖에 없었던 그런 불안한 시대적 배경을 겪으면서도 이렇게 따뜻한 동화를 쓸 수 있었다니 놀랍다. 


   우리나라와 같이 빨리빨리가 일상화된 사회에서는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일이 일어나 있고, 자고 일어나면 엊그제까지 봤던 집 앞 가게가 텅 비었다가 다른 가게로 바껴 있는 이런 정신 없는 도시 속도전에 심심할 새는 없을 지라도, 때로는 압도되는 질림의 느낌이 있다. 너무 변화가 없어서 질려버리는 것과는 정반대의... 그래서 도시 생활이 익숙함에도 요즘 들어 느린 시간을 살아갈 수 있는 시골 생활이나 관광객이 오고 가는 것 외에 크게 변화가 없는 관광섬 같은 곳의 생활을 동경하게도 되는데, 이 동화책을 읽으면 '너의 속도대로 살아가도 괜찮아'를 계속 속삭여 주는 것 같아서 일요일이 끝나갈 때쯤에 올라가는 스트레스 지수와 함께 쿵덕대는 심장을 차분하게 해 주는 마법이.. 헐떡대며 서두르지 않아도, 내가 더 빨리 가겠다고 경쟁하지 않아도, 그냥 나대로 내 성격대로 내 페이스대로 살아가도 괜찮은 그런 세상에서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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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어 보면 알지 - 호랑수박의 전설 웅진 모두의 그림책 74
이지은 지음 / 웅진주니어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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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먹어 보면 뭘 알까? 호랑 수박의 전설이라니 표지부터 할멈 위로 먹이사슬의 순서는 아닌 것 같은데 동물들의 재미있는 표정들이 궁금증을 유발하는 그림책이다. 원래 그림책을 좋아해서 자주 사기도 하고 선물하기도 하는데, ‘여름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과일은 수박이고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의 호랑이 이야기가 생각나는 팥 할멈과 호랑이가 주인공인 이 그림책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여름 과일의 대명사인 수박의 맛을 어떻게 알고 동물들이 수박- 수박- 수박- 하면서 돌아다니는 건지 그 모습이 마치 피가 모자란 좀비들의 모습 같아서 살짝 섬뜩한 느낌이다. 이 동화책은 귀엽고 예쁜 동화 세상의 그 느낌이라기보다는 약간은 서늘한 그림체가 어린이들에게 무섭게 다가오지 않을까하는 걱정을 하면서도, 허를 찌르는 이야기 전개가 매력이라 할 수 있다. 먹으면 큰일이 벌어진다고 스스로 말하는 수박을 먹게 되면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까? 아담과 하와가 금단의 열매를 먹고 선과 악을 알게 되어버린 것과 같은 결과가 펼쳐질까...?





그건....... 

먹어 보면 알지읽어 보면 알지...!” 

흐흐흐~ 슈슈슈슈바아아악~!




 


       본의 아니게 호랑 수박이 되어버린 호랑이의 꿈은 어디서 어디까지가 꿈이고 어디서 어디까지가 현실이었을까. 허리도 다리도 아파서 천천히 걷는 것도 에구구하는 팥 할멈은 수박의 향그러움에 빠져 호랑 수박을 공격하려는 동물들의 좀비 같은 눈들을 피해 하늘을 날아 시원한 계곡으로 피신할 수 있었을까? 차가운 물에 동동 떠있는 먹음직스러운 호랑 수박을 보면서 먹고 싶은 마음을 끝내 참을 수 있었을까, 호랑 수박을 먹었다가 할멈 수박이 되지는 않았을까?? 좀 더 철학적으로 들어가 우리가 살고 있는 이생에서의 삶은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어디까지가 꿈인 것일까? 끝까지 살아 보면 알게 될까..... 끝도 없이 펼쳐지는 이야기처럼, 알 수 없는 인생이어서 흥미로울지도, 그래서 끝까지 살아 보게 되는 것일지도...

 




       이 동화책은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닌 것 같은 끝없는 이야기와 같이, 동화의 구성에서 또 다른 이야기 전개로 이어지는 만화의 구성으로 전환했다가 답이 안 나올 것 같은 앙케트 조사로 이어진다. '이런 질문은 뭐지?' 하면서 문항 순서대로 여러 번에 걸쳐 해 본 결과, 수박을 찾아 헤맨 동물들 중 하나가 되었다가, 수박을 먹어도, 안 먹어도 괜찮았던 곰도 되었다. 답변들이 좀 허무하게 끝난 앙케트..ㅎ 그렇게 끝날 것 같았던 이 책 어딘가에 숨어 있다는, 그렇지만 금방 찾아 너네는 용이니, 도롱뇽이니, 도마뱀이니?”라고 물어보고 싶은 귀여운 얼굴의 둘 머리 용과 마주치지 말라는 네 개의 눈을 마주치고 씩- 웃으며 책을 덮을 수 있었다. 바코드마저 슈슈슈슈퍼슈바아아악!“인 이 동화책의 매력에 빠지면 일반적인 동화책은 좀 시시해질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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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관스님 나의 음식
정관 지음, 후남 셀만 글, 양혜영 옮김, 베로니크 회거 사진 / 윌북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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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찰 음식의 진수와 아름다음을 전해오신 정관스님의 책이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구매하게 된 "정관스님, 나의 음식". 본인은 셰프가 아니라 수행자라고 하신 말씀과 겹쳐지는 가득 담긴 채소 광주리를 머리에 이고 계신 수행자로서의 정관스님을 보여주는 듯한 표지 사진부터 시선을 끌었다. 스님은 이 사진이 찍힐 때 광주리가 무거워서 번뇌가 있으셨을까, 오늘 절 식구들에게는 어떤 음식으로 기쁨을 줄까하는 마음에 빨리 사진 촬영이 끝나기를 바라셨을까... 번뇌가 전혀 없는 개운한 표정은 아니셨지만, "즐겁게 드시라, 걱정도 미움도 본래는 없다."는 띠지의 모토는 개인적으로도, 최근까지도 여러 갈등과 번민을 겪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도 걱정이 없을 수는 없는 상황이지만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홀가분함을 전해주시는 것 같아 고맙고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스님은 요리를 정식으로 배우신 적은 없으시지만 셰프들의 셰프, 전세계에서 스님의 요리를 배우고 맛보고 싶어서 많은 이들이 찾아오고 넷플릭스 다큐멘터리에서도 소개되셨던 것처럼, 우리 어머니의 어머니, 그 어머니의 어머니들을 통해 전통적으로 전해 내려온 우리 땅에서 난 제철 식재료, 그 건강한 식재료로 만들어진 다양한 한식, 그리고 자연과 하나된 발효 음식의 대표주자인 우리의 김치, 된장, 간장, 고추장과 같은 우리의 몸을 살리는 한식 자체가 세계적인 명품 식단이 아닐까? 스님은 발효 양념뿐만 아니라 다양한 과일로 과일청도 만드셨는데, 요리법 자체에 있어 자연과 시간의 위대한 솜씨에 비해 자신의 솜씨는 작고 소박하지만, 생명의 근원인 대지의 힘이 큰 역할을 하고 태양과 안개, 비, 바람, 달빛과 이슬이 열매를 만들었다면 스님은 여기에 자신의 에너지를 조금 보탤 뿐이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자연과 인간이 합일을 이룬 한식이 얼마나 위대한 한 상 차림인지 몸소 보여주셨다.




이 음식이 어디서 왔는가

내 덕행으로 받기가 부끄럽네

마음의 온갖 욕심 버리고

육신을 지탱하는 약으로 알아

도업을 이루고자 이 공양을 받습니다




   수행자로서 생활하고 계시기에 요리사로서 책을 내는 것은 거부해 오셔서 그런지 그간 스님의 명성에 비해, 처음으로 요리 관련 책이 나왔다는 것도 그렇지만 그 책이 우리나라에서 먼저 출판되기보다 생소한 외국계 작가와 스위스 출신 사진작가를 통해 스위스 출판사를 통해 만들어진 책인 이유로, 스위스 독자들이 먼저 스님의 책을 접하고 이후 우리나라 출판사에서의 번역을 통해 이번에 한국에서 출판하게 되었다는 것이 외국어로 작업이 이루어지는 동안 놓칠 수 있는 부분에 있어서나 어떤 면에서 약간 아쉽다?고 해야할까, 아니면 외국인들의 이국적인 시선을 통해 스님의 일상과 음식이 더 풍성하게 담기게 되었고, 해외에 더 알려지게 된 것은 잘된 일이라고 해야할까. 한 시도 쉴 틈없이 바쁘게 생활하시는 스님 덕분에(?ㅎ) 세 계절을 스님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동안 최적의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틈을 내기가 쉽지 않았다는 사진작가의 기사 내용도 있었지만, 외국 사진작가의 이국의 시선으로 담긴 사진 덕분인지 절의 아침을 여는 스님과 빛의 조화를 담은 사진들은 인상적이었다. 




   

   스님의 다른 요리와도 다르게 좀 투박하게 담긴 듯한 스님의 비빔밥 재료에 고사리와 취나물이 들어가는데, 장손의 며느리로 매끼 대가족의 음식을 만드느라 힘드셨던 우리 어머니의 레시피와 겹쳐서 그런지 오늘따라 이제는 먹을 수 없는 어머니의 비빔밥이 유난히 그리웠다.. 어머니의 요리 솜씨는 물려받지 못한 탓인지 바쁜 도시 생활에 손이 많이 가는 요리를 그다지 즐기지 않은 탓인지, 아무리 흉내를 내려고 해도 어머니의 정성스러운 비빔밥이나 그 손맛은 따라갈 수 없겠지만, 스님이 하신 정갈한 색감의 요리들을 찬찬히 둘러보며 유난히 어머니 생각이 많이 났다... 한참 예민한 시기인 청소년기에 갑자기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절에 출가하신 스님의 당시 마음은 어떤 마음이셨을까.. 스님의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요리를 잘하는 재능과 그 요리를 통해서 주변을 건강하게 살리시며 수행하고 계신 스님의 삶은 생명을 잉태하는 어머니와 대자연의 마음이리라. 마음에 드는 이 책에서 스님의 필살기인 색색의 자연 그대로의 색감을 살린 요리 한 그릇 자체가 미적으로 보였으나, 무엇보다 이 한 권의 책에서 스님이 해 오신 요리 종류를 모두 담을 수는 없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산사의 아름다움은 물론 스님 요리의 아름다움과 밀도를 모두 보여주기에 판형이 작다고 느껴질 정도였기에, 이후 스님 요리의 미감을 최대한 살린 요리에 집중한 큰 판형 책도 출간되어 스님 요리가 후대에 잘 전수될 수 있도록 스님이 건강하고 즐겁게 오래오래 요리하시길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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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의 시간 교유서가 다시, 소설
김이정 지음 / 교유서가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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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낯선 이름의 소설이었지만 유령의 시간이라니 도대체 어떤 시간일까?’하는 궁금증과 호기심이 이 책을 집어 들게 했다. 개인적으로 책 리뷰를 남기는 것이 삶의 낙 중에 하나인 사람으로서, 도서 추천이나 이벤트가 있더라도 끌리지 않는 책은 구매하지 않는데 “우리 시대 소중한 문학적 성취 40년 만에 완성한, 잊어버린 이야기를 다시 읽는다!”는 시간의 유구함이 아니었다면 선택하지 않았을 소설일지 모른다.


 


          

          방금 전까지 사람이 앉아 있었거나, 여전히 앉아 있지만 우리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유령이 앉아 있을 것만 같은 표지... 사막 모래로 빨려 들어가고 있는 듯한 나무 의자와 금방이라도 울먹이며 비를 쏟을 것 같지만 의자를 옮겨 앉으면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작은 회색빛 구름, 그 옆으로 빗겨 짜 놓은 물감인지 굳어버린 말똥인지 알 수 없는 형체의 검은 무언가도 형이상학적 추상화를 떠올리며 소설에 대한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데 한몫했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소설은 처음 들어보는 등장인물들의 낯선 이름이 많아서 누가 누군지도 구분이 잘 안 되어 연신 다시 앞 장으로 넘겨 보거나 번역의 요상함 때문인지 진도가 나가지 않는 소설은 이걸 왜 산 걸까.’하며 하품이 쏟아지기 딱 좋지만, 작가가 경험한 지방이 어디 어디일까 궁금해지는 사투리들과 일본에서 온 가짜(?) 고모의 아이들로부터 시작해서 낯선 이름들이 쏟아지는 소설임에도 선명히 기억되는 각각의 등장인물과 술술 읽히는 글 묘사, 가속도로 시간을 넘나드는 흥미로운 내용 전개로 딴생각을 할 새 없이 읽은 소설이었다.

 

          포동포동하고 웃음기 가득했던, 집안에서 가장 어린아이 지우의 죽음으로 돌연한 사라짐의 슬픔을 다룬 부분에서는 어떤 장면이 떠올라 눈물이 날 수밖에 없었는데, 이상하게도 그 장면이 한반도의 평화를 통한 한민족의 미래를 보장하지 못했을 때 일어날 미래에 대한 경고처럼 느껴졌다... 이 땅에서 벌어진 잔인한 식민지배와 해방 그 이후 전국적으로 국민들이 원치 않았던 신탁통치를 통한 남북 분단이 남북전쟁 비극의 가장 큰 원인이었음에도, 김일성, 김정일의 사후에도 여전히 지속돼 온 정치적 이유에서의 이념 논란은 날아다니는 택시를 개발하고 있다는 21세기에도 여전히 자신들의 부패를 막기 위한 마지막 발버둥인지 더 심각하게 국민 분열을 일으키고 있다.

 

          작가는 김일성을 욕하는 아버지와 장기 집권을 위한 독재를 위해 시민들을 깔아뭉개 온 독재를 비판하는 사회 선생님의 분노에 혼란스러워하는 아이의 시선을 통해 어느 쪽이 옳다는 가치 판단을 하지 않았지만, 어떤 쪽이든 잘못은 비판하더라도 이 땅에서의 전쟁은 절대 용인할 수 없고 한반도의 평화를 사수해야 함에도 아직까지 일본의 잘못을 욕하면 친중이라거나 정부의 잘못을 비판하면 빨갱이라는 이념 논쟁은 지리멸렬함을 넘어 우리나라는 앞으로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한 걱정이 앞설 수밖에 없는 현실 속에 있다.

 

엄마, 아파. 아파. 아파...”

 

          돌연 사라져버린 지우의 마지막 음성 아프다는 물리적인 신체와 관련된 아픔 외에도 정신적 괴로움에 해당하는 아픔도 해당되는데 한반도가 그간 겪어온 아픔뿐만 아니라, 그 안에서 살고 있는 남-북한 국민들 모두가 과거사로 인해 현재에 이르기까지 아직까지도 겪고 있는 육체적, 신체적 불안감과 괴로움을 가장 잘 표현할 단어는 아프다”라고 느껴졌다...

 

          그것이 잠시 잠깐의 쇼(?)였대도 남북의 정상들이 꼭 가보고 싶은 백두산에까지 올라 백록담의 물과 한라산 천지의 물을 나누어 담고 함박웃음의 사진을 찍었던 찰나의 해빙기는 온데간데없이, 옆 나라의 전쟁 특수로 호황을 누렸던 가깝지만 먼 나라보다 못한 섬나라의 방해로 이웃의 평화를 뜻하는 종전선언마저도 반대하는 그런 이웃도 이웃이라고 돈 로비로 휘둘리고 있는 인간들이라니... 그들도 정치적 반공을 위해 더욱 심각한 괴물로 묘사된 간첩이나 다름없는 자들일 것이다.

 

          유령은 뭐든지 뜨거운 마음으로 해야 돼.”라고 삶에서 의무감이 아닌 온 마음을 다 바쳐야 한다는 교훈을 남기고 떠나간 소설 속 아버지 이섭이 아니라, 타국의 설경이 아름답다며 홋카이도는 극찬하면서도 정작 자신들의 한반도가 하나가 되었을 때 삼대가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는 백두산의 일출백두산 자생식물인 노란 두메양귀비와 같은 천상의 아름다움을 하나된 나라의 한민족을 이루어 자랑할 생각은 하지 못하고, 미래의 불안감을 품은 채 이념 논쟁의 희생양이 되어 서로 싸우도록 조종당하며 살아가고 있는 이들 모두가 유령이며 헛된 유령의 시간을 살고 있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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