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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관스님 나의 음식
정관 지음, 후남 셀만 글, 양혜영 옮김, 베로니크 회거 사진 / 윌북 / 2025년 4월
평점 :

사찰 음식의 진수와 아름다음을 전해오신 정관스님의 책이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구매하게 된 "정관스님, 나의 음식". 본인은 셰프가 아니라 수행자라고 하신 말씀과 겹쳐지는 가득 담긴 채소 광주리를 머리에 이고 계신 수행자로서의 정관스님을 보여주는 듯한 표지 사진부터 시선을 끌었다. 스님은 이 사진이 찍힐 때 광주리가 무거워서 번뇌가 있으셨을까, 오늘 절 식구들에게는 어떤 음식으로 기쁨을 줄까하는 마음에 빨리 사진 촬영이 끝나기를 바라셨을까... 번뇌가 전혀 없는 개운한 표정은 아니셨지만, "즐겁게 드시라, 걱정도 미움도 본래는 없다."는 띠지의 모토는 개인적으로도, 최근까지도 여러 갈등과 번민을 겪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도 걱정이 없을 수는 없는 상황이지만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홀가분함을 전해주시는 것 같아 고맙고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스님은 요리를 정식으로 배우신 적은 없으시지만 셰프들의 셰프, 전세계에서 스님의 요리를 배우고 맛보고 싶어서 많은 이들이 찾아오고 넷플릭스 다큐멘터리에서도 소개되셨던 것처럼, 우리 어머니의 어머니, 그 어머니의 어머니들을 통해 전통적으로 전해 내려온 우리 땅에서 난 제철 식재료, 그 건강한 식재료로 만들어진 다양한 한식, 그리고 자연과 하나된 발효 음식의 대표주자인 우리의 김치, 된장, 간장, 고추장과 같은 우리의 몸을 살리는 한식 자체가 세계적인 명품 식단이 아닐까? 스님은 발효 양념뿐만 아니라 다양한 과일로 과일청도 만드셨는데, 요리법 자체에 있어 자연과 시간의 위대한 솜씨에 비해 자신의 솜씨는 작고 소박하지만, 생명의 근원인 대지의 힘이 큰 역할을 하고 태양과 안개, 비, 바람, 달빛과 이슬이 열매를 만들었다면 스님은 여기에 자신의 에너지를 조금 보탤 뿐이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자연과 인간이 합일을 이룬 한식이 얼마나 위대한 한 상 차림인지 몸소 보여주셨다.
이 음식이 어디서 왔는가
내 덕행으로 받기가 부끄럽네
마음의 온갖 욕심 버리고
육신을 지탱하는 약으로 알아
도업을 이루고자 이 공양을 받습니다
수행자로서 생활하고 계시기에 요리사로서 책을 내는 것은 거부해 오셔서 그런지 그간 스님의 명성에 비해, 처음으로 요리 관련 책이 나왔다는 것도 그렇지만 그 책이 우리나라에서 먼저 출판되기보다 생소한 외국계 작가와 스위스 출신 사진작가를 통해 스위스 출판사를 통해 만들어진 책인 이유로, 스위스 독자들이 먼저 스님의 책을 접하고 이후 우리나라 출판사에서의 번역을 통해 이번에 한국에서 출판하게 되었다는 것이 외국어로 작업이 이루어지는 동안 놓칠 수 있는 부분에 있어서나 어떤 면에서 약간 아쉽다?고 해야할까, 아니면 외국인들의 이국적인 시선을 통해 스님의 일상과 음식이 더 풍성하게 담기게 되었고, 해외에 더 알려지게 된 것은 잘된 일이라고 해야할까. 한 시도 쉴 틈없이 바쁘게 생활하시는 스님 덕분에(?ㅎ) 세 계절을 스님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동안 최적의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틈을 내기가 쉽지 않았다는 사진작가의 기사 내용도 있었지만, 외국 사진작가의 이국의 시선으로 담긴 사진 덕분인지 절의 아침을 여는 스님과 빛의 조화를 담은 사진들은 인상적이었다.

스님의 다른 요리와도 다르게 좀 투박하게 담긴 듯한 스님의 비빔밥 재료에 고사리와 취나물이 들어가는데, 장손의 며느리로 매끼 대가족의 음식을 만드느라 힘드셨던 우리 어머니의 레시피와 겹쳐서 그런지 오늘따라 이제는 먹을 수 없는 어머니의 비빔밥이 유난히 그리웠다.. 어머니의 요리 솜씨는 물려받지 못한 탓인지 바쁜 도시 생활에 손이 많이 가는 요리를 그다지 즐기지 않은 탓인지, 아무리 흉내를 내려고 해도 어머니의 정성스러운 비빔밥이나 그 손맛은 따라갈 수 없겠지만, 스님이 하신 정갈한 색감의 요리들을 찬찬히 둘러보며 유난히 어머니 생각이 많이 났다... 한참 예민한 시기인 청소년기에 갑자기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절에 출가하신 스님의 당시 마음은 어떤 마음이셨을까.. 스님의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요리를 잘하는 재능과 그 요리를 통해서 주변을 건강하게 살리시며 수행하고 계신 스님의 삶은 생명을 잉태하는 어머니와 대자연의 마음이리라. 마음에 드는 이 책에서 스님의 필살기인 색색의 자연 그대로의 색감을 살린 요리 한 그릇 자체가 미적으로 보였으나, 무엇보다 이 한 권의 책에서 스님이 해 오신 요리 종류를 모두 담을 수는 없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산사의 아름다움은 물론 스님 요리의 아름다움과 밀도를 모두 보여주기에 판형이 작다고 느껴질 정도였기에, 이후 스님 요리의 미감을 최대한 살린 요리에 집중한 큰 판형 책도 출간되어 스님 요리가 후대에 잘 전수될 수 있도록 스님이 건강하고 즐겁게 오래오래 요리하시길 바라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