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주역 - 삶의 맥락을 읽는 감응의 인문학
한기정 지음 / 뮤진트리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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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주역>을 읽다보면, 저자 한기정은 독서광(책에서 말하는 看書痴)이며 음악애호가라는 것을 절로 알 수 있다. 저자는 이전에 셰익스피어에 대해서 두 권의 책을 썼다. 이 책들을 읽으면 저자가 셰익스피어 희곡을 셰익스피어 당시의 원어로도 읽었을 뿐아니라, 수많은 셰익스피어 연구서까지 탐독하고 썼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번엔 주역이다. ‘그거 점 보는데 쓰는 거 아냐?’하는 주역에 대한 오해를 없애고, 그것이 어떻게 우리와 가까워질 수 있는가를 설명하기 위해 셰익스피어의 많은 등장인물은 물론이고, 수많은 클래식 음악들, 그리고, 근대이후의 많은 철학자들을 동원한다. 물론 저자의 지난했을 독서 여정에서 만난 것들이다. 그리고, 주역은 현대인에게 독서(讀書)의 대상이라는 것을 주장한다. 지금 여러분들을 불안하게 하고 있는 인공지능을 이해하기 위해서도...

이 책을 읽으면서 문득 BTS가 군대 다녀온 후 처음으로 완전체로 공연한 ‘아리랑’의 포스터에 있던 괘가 생각났다.(아래 그림 참고) 3개의 동그라미중 첫 번째는 태극이고, 두 번째는 태극기 왼쪽위에 있는 건(하늘 乾)이고, 세 번째는 리(떼놓을 離 ☲)라고 한다. 그런데, 건이 위에 있고, 리가 아래로 들어가는 괘는 동인(同人 ䷌)이고, 반대로 건이 아래로 가면, 대유(大有 ䷍)괘가 된다. 동인(同人)괘는 ‘만남’ 또는 ‘하모니’를 뜻하고, 대유(大有)괘는 ‘크게 형통함’을 뜻한다. ‘만나서, 크게 형통하다’는 뜻이 된다. BTS가 의도한 것일까?


주역은 독서의 대상이다. 저자가 원하는 것은 세상만사의 이치를 꿰뚫어 보는 것 아닐까 생각한다. 내가 읽는 주역은 나를 읽을 수 있게 한다. 저자는 셰익스피어 전문가답게 일단 셰익스피어의 등장인물을 주역을 통해 설명하기 위해 척전(擲錢, 괘를 찾기 위해 동전던지기)해본다. 셰익스피어의 인물들이 동양의 고전을 만나 입체적으로 다가온다. 나는 주역을 세상만사에 적용해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내가 최근 관심을 가지고 있는 ‘놀이’에 대입해본다.

1. “놀이는 행위성(agency)을 미디어로 하는 예술이다.” (2020) - 응우옌 -

회화는 시각적인 미디어, 즉, 물감이나 석고를 이용해서 보는 대상을 만드는 예술이다. 놀이가 예술이라면 무엇이 미디어가 될까? 행위이다. 일상의 행위는 제한적이지만, 놀이에서는 풍부한 행위를 경험할 수 있다. 놀이를 하면서 애를 쓰고, 참아내고, 협력하고, 경쟁하고, 상대방을 도와주고, 남을 방해하고, 더 높이, 더 빠르게, 더 멀리 도달하려는(ultimate concern) 행위를 한다. 컴퓨터 게임의 장르도 액션 및 슈터, 롤플레잉, 시뮬레이션, 모험, 퍼즐 등 다양하다. 놀이가 재미있는 이유는 DNA에 새겨져 있다는 말을 한다. 인간은 정착해서 산 것은 몇 만년밖에 안되고, 그전에 수십만년을 수렵과 채취 생활을 하였으므로, 인간의 뇌와 신체는 수렵과 채취에 맞게 진화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니, 정해진 행위만 하고 있는 지금은 뇌와 몸이 근질근질한 것이다.

놀이가 행위성을 미디어로 한다면, 주역은 괘를 미디어로 하는 예술이다. 이것은 기본적으로 음(..)과 양(_)으로 이루어 진다. 컴퓨터에다, AI까지 아우르는 현대 디지털 기술이 기본적으로 0과 1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생각하면 재미있다. 음과 양 6개를 조합하면 괘가 된다. 그래서, 괘는 2를 6번 곱한 64개가 있다. 회화로 얘기하면, 색의 3원색을 섞어서 여러 색깔을 내듯, 64개의 기본 색깔이 있는 것이다. 양(_)만 6개로 취하면, 건(乾 ䷀)이 되며, ‘순수한 창조’를 뜻한다. 음(..)만 6개 취하면, 坤(곤 ䷁)이 되며, ‘수용(受容)의 대지’를 뜻한다. 간단하게 뜻을 얘기했지만, 각각의 괘는 괘를 한자어로 설명한 괘사(卦辭)가 있다. 건의 괘사는 乾 元亨利貞(위대한 시작, 순조로운 성장, 올바름에 이로움이 있다)이다. 괘와 괘가 만나면, 64를 두 번 곱한 경우의 수가 생긴다. 그런데, 그것들의 강도가 서로 다른 것까지 고려한다면, 표현할 수 있는 상황은 무한대가 된다. 그래서, 셰익스피어의 등장인물은 물론이고, 앞으로 AI가 어떻게 세상을 바꾸는지를 설명하는데도 주역이 쓰일 수 있게 된다.

사실 자연 또는 사건은 무한한 정보를 담고있다. 그것을 기록하고, 거기서 패턴을 찾기 위해서 인간은 많은 것을 필터링한다. 한 인간이 살아온 삶이나, 한 나라의 역사가 1차원적인 글로 기록되면서 많은 것을 잃어버린다. 그런데, 무한한 그것이 유한한 글로 기록되어야, 전달될 수 있다. 어릴 적 크레파스는 적게는 12색이었고, 많은 것은 48색이었다. 그것으로 우리는 다양한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그 색들이 도화지에서 배치되고, 색과 색이 섞이는 조화는 변화무쌍했다.

2. “미디어는 메시지이다.” (1964) - 맥루한 -

이 책의 소제목에도 나오지만 ‘감응(感應)’은 이 책의 중요한 열쇠말이다. ‘느끼고 반응한다’는 뜻이다. 컴퓨터 게임은 감응의 놀이이다. 소설에는 개입할 수 없다. 소설가가 쓴 글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을 수 밖에 없다. ‘감’은 있지만, 즉각적인 ‘응’이 불가능하다. 영화도 마찬가지 이다. 이에 비하면, 컴퓨터 게임은 ‘감’과 ‘응’이 수시로 일어나는 놀이이다. 이것이 즐거운 이유는 우리 조상들의 수렵과 채취가 ‘감’과 ‘응’이 수시로 일어나는 행위였기 때문일 것이다. 태극문양은 감응(感應)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하나의 원이 다른 원으로 밀고 들어가고, 끝을 보이며 사라지면서 새로운 원이 시작되는 ‘끝없는 움직임’을 뜻한다.

‘미디어는 메시지이다.’ 여기서 미디어는 인간과 자연, 인간과 인간의 중간에 있는 매개체를 말한다. 영어 성경에 나오는 medium(media의 단수형)은 영매(靈媒), 즉, 무당을 뜻한다. 맥루한은 하나의 미디어가 세상에 나오면, 그 미디어를 만든 사람이나, 사회의 변화를 예고(message)한다고 한다. 미디어의 내용때문이 아니고, 그것의 형식이 그 변화를 일으킨다고 한다. 예를 들어, 축음기(미디어)는 민주주의(메시지)를 가져온다. 축음기이전에 음악은 귀족(또는 양반)의 전유물이었고, 이로써 귀족/평민 계급(class)이 존재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그런데, 축음기의 등장으로 모든 사람이 음악을 즐길 수 있게 되면서 계급에 대한 의심이 시작되었다. 하나 예를 더 들면, TV(미디어)는 ‘이유없는 반항’(메시지)를 가져왔다. TV이전에는 정보가 부모세대를 통해서 아이들 세대로 전달되었다. 그런데, TV가 등장하면서 거실에서 동시에 새로운 정보를 취하게 되었다. 제임스 딘이 반항을 한 것은 TV 프로그램이 선정적이었거나, 폭력적인 것이 문제의 본질이 아니었다. 엄마아빠들이 거실에서 TV를 보고 있을 때, 아이는 자기 방에서 컴퓨터 게임을 하면서 지구를 구하고 있다. 그것의 메시지는 무엇일까?

감응과 관련해서 인간은 4개의 유형으로 나누어진다. 군자, 소인, 비인, 악인이 그것이다. 군자는 일단 겸손이 중요하다. 빨리 ‘감’을 하면서 ‘응’은 가장 효과적으로 하기위해 함부로 나서지 않는다. 소인은 감과 응이 모두 빠른 경우이다. 나를 말하는 것 같다. 비인은 감과 응이 없는 경우이다. 악인은 ‘감’을 잘 하지만, 그 능력을 가지고, 악하게 ‘응’을 하는 사람을 말한다.

그런데, 나는 주역에서 선악이나 정의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아서 처신이나 처세만 강조하고 있다는 느낌을 처음에 받았다. 주역은 세상을 읽는 ‘감’과 내가 선택하여 행위를 하는 ‘응’에 두루 쓰인다. 그냥, 세상이라고 했지만, 그것은 인간, 사회, 세계, 우주 등 4개의 층위(layer)가 있다. ‘인간’에게는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 감응이 중요하고, ‘사회’에 대해서는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다스리는데 필요하며, ‘세계’에 대해서는 국가의 발전을 생각하고, ‘우주’에 대해서는 궁극적인 철학을 가져다 준다. 게임에는 2개의 층위(layer)가 있다. 일차적인 목표와 이차적인 목표이다. 골프로 말하면 일차적인 목표는 막대기로 쳐서 구멍에 넣는 것이다. 이차적인 목표는 그런 어려운 일을 받아들이면서 얻는 기쁨과 깨달음이다. 일차적으로 군자의 겸손하고 때를 기다리는 처신과 처세는 이차적으로 관계를 좋게하고, 사회를 발전시키고, 철학으로 결실을 맺는다면 선(善)이고 정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 그 과정이 잘 이해는 되지 않는다.

3. “놀이의 비합리성으로 인간은 합리적 존재이상의 존재가 된다.” (1938) - 하위징아 -

놀이는 비합리적이다. 강아지 두 마리가 서로 물고 쫒아가고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포유류 새끼들이 일반적으로 하는 놀이이다. 여유가 있을 때, 자발적으로 한다. 포유류의 이러한 행위로 생존에 필요한 인지능력, 근육발달 등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강아지들이 ‘나의 인지능력과 근육을 키워야지’하면서 한 행동은 아니다. 하위징아는 놀이가 인간의 가장 근원적인 행위이며, 놀이에서 많은 문화가 만들어졌다고 한다. 인디언의 포트래치(potlatch) 축제에서는 부족의 추장간에 선물하기 게임을 하였다. 일년동안 쌓인 재화를 상대방에게 더 많이 주거나 더 많이 자기의 재화를 파괴하는 쪽이 승리한다. 매우 비합리적이다. 그런데, 이 축제에서 춘하추동의 주기적인 변화를 흉내내는 행위가 음악, 춤, 미술 등 예술이 되었고, 시시비비를 가려주던 행위가 재판이라는 제도를 낳았다고 한다.

주역은 기원전 천년부터 약 8백년간 걸쳐 만들어졌다고 한다. 주역이 없다면 연속적이고 불확실한 잡음으로 가득찬 세계가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잡음은 64개의 패턴으로 받아들이면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세계가 되어 인간의 뇌가 다룰 수 있게 된다. 이것은 비계(scaffold)와 같은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다. 비계는 건물을 지을 때, 높은 곳에서 작업할 수 있도록 파이프 등으로 아래위 또는 옆으로 임시로 설치하는 기둥을 말한다. 주역은 생각의 비계이다. 감을 하는데도 이러한 비계가 필요하고, 응을 하는데도 비계가 필요하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의 뇌는 온간 잡음에 시달리면서 1층집을 겨우 지을 수 있을 뿐이다.

리어왕을 생각하면서 3개의 동전을 6번 던진다(척전 擲錢). 그리고, 그 순서대로 나열해서 하나의 괘를 만들고 그 괘에 따라, 리어왕을 이해해본다. 매우 비합리적이다. 왜냐하면, 그 괘는 또 동전을 던져 만들면 다른 것이 나올 것이고, 다른 사람이 던져도 다른 것이 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척전의 결과로 나온 괘와 리어왕과 인과관계가 있다고 믿을 수 없다. 이것은 사주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태어난 연월일시로 나의 운명을 점친다는 것은 매우 비합리적이다. 그런데, 64층 높이의 비계를 통해 리어왕을, 나의 일생을 곰곰히 씹어보는 시간을 가지면 리어왕과 나의 인생에 대한 64층의 건물을 지을 수 있다. 부부싸움을 하는 도중에 한번 3개의 동전을 6번 던져보고 나온 괘를 생각해보라. 당신의 인생이 확실히 달라질 것이다.

기원전에 나온 주역은 중국에서 가장 중요한 사상인 유가와 도가의 중요한 경전이 되었다고 한다. 예술은 우리의 삶과 우주를 표현하는 미디어이면서, 우리가 꾸는 꿈이다. 주역의 64괘를 미디어로 당신의 삶과 당신이 꿈꾸는 세상을 더 구체적으로 만나보기 바란다. 1층말고 64층짜리 건축물로...


인공지능의 시대에 인간은 정보 처리자를 넘어 감응의 매개자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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