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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를 읽자 - 1,222명에서 찾은 인간관계의 비밀
한기정 지음 / 엑스북스(xbooks) / 2018년 10월
평점 :
셰익스피어는 사람의 한 평생을 7막으로 나누었다. 그중 6막이 지금의 내 나이에 맞는 거 같다. ‘실내화를 신은 수척한 어리광대 노인’ 여기서 ‘수척하다’고 하는 것은 근육이 빠졌다는 것인데, 60대에 특별히 운동을 하지 않으면 한 해에 근육이 10%이상 빠진다고 한다. 몸에서 근육이 빠져나가듯이 머리에서 빠져나가 것도 있다. 서서히 죽음에 대비하는 것이다.
이 책에서는 우리 머리에서 서서히 빠져나가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일러준다. 이 책은 12장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각각의 제목은 우리가 젊을 때 심각하게 번민을 하게 하였고, 때로는 가슴을 데웠던 단어들이다. 역설과 아이러니, 충신과 간신, 불안감, 권력과 정치, 사랑, 복수, 표절과 창의성, 품위와 명예, 우정과 배신, 허풍과 허세, 질투와 의심, 어리석음과 현명함.
이런 단어들은 서서히 우리의 머리에서 빠져나가고 있다. 점점 우리는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여러번 빨아서 색깔이 옅어져가는 바지 저고리가 되어가고 있다. 지금 이 단어들을 하나씩 곱씹어보면 우리가 저질러 놓은 수십년의 삶이 되돌릴 수 없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어떤 단어는 가벼운 한숨을 짓게 하고, 어떤 단어는 머릿속에서 빨리 지워버리고 싶은 어느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저자는 우리에게서 멀어져가고 있는 이런 것들이 종합비타민처럼 셰익스피어의 희곡에 녹아있다고 한다. 이 12가지 단어들을 대표하는 등장인물들과 그들의 대사를 소개한다. 4백년 또는 그전에 사람들의 삶이 총천연색으로 다가온다. 최근 MBTI로 사람의 성격을 나누는 것이 유행하고 있다. 그전에는 혈액형으로 사람의 성격을 짐작하였다. 혈액형은 4가지이다. 그에 비하면 MBTI는 4가지 카테고리에서 2가지씩 있으니 16가지이다. 나도 MBTI를 조사해 본 적이 있는데, 내가 어렴풋이 짐작하는 ‘나’가 놀랄 정도로 상세히 기술되어 있었다. 그리고, 우리 네 가족이 같은 이에게 MBTI 조사를 하니까 가족간의 관계와 서로 조심해야할 것까지 알려주었다.
그런데, 셰익스피어의 희곡에는 총 365가지 인간형이 나온단다. 더구나, 그렇게 서로 다른 인간들이 서로 관계를 가지게 되니까 그 얘기는 정말 무궁무진해지는 것이다. 여기에 셰익스피어의 착착 감기는 시적 표현과 깊이있는 철학이 더해진다. 삼국지를 3번 읽은 사람은 상대하지 말라는 말은 셰익스피어에게 적용할 말이 아닌가 생각된다. 제임스 조이스는 셰익스피어를 ‘하나님 다음으로 인간을 많이 창조하였다’라고 했다고 한다. 이미 존재한 사람도 재창조하였다. 클레오파트라는 셰익스피어 이전에 역사적인 평가가 좋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셰익스피어의 희곡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에서 그녀의 지고한 사랑꾼의 모습, 카리스마, 지략 등이 부각되면서 전세계인이 사랑하는 여인으로 인식 대전환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이 책에 의하면 블루터스에 대한 후세들의 평가도 셰익스피어가 크게 바꾸어 놓은 것 같다.
저자의 약력을 보면 영문학과를 기웃대긴 하였지만 경제학을 전공했고, 젊을 때 외국계 회사인 IBM에 근무한 후 IT 회사의 CEO를 하였다. 그런데, 39편의 셰익스피어 희곡을 다 읽은 것은 물론이고, 어떤 것은 옥스퍼드 판본 원어로 읽었다고 한다. 또한 국내외의 셰익스피어에 관한 비평서나 전기까지 섭렵하였다. 엄청난 양의 독서이다. 그 많은 정보를 흡입하고 충분히 소화한 후, 그는 우리의 상황에 맞는 논리로 셰익스피어를 재해석한다. 그래서인지 나는 그만의 해석이 더 와닿았다.
우리는 그냥 쉽게 햄릿을 우유부단함의 대명사로 받아들이지만, 작가는 햄릿의 신앙심, 과감성, 철학적 깊이, 사람에 대한 배려 등에 대해 다시 종합해석을 내놓는다. 그래서, ‘to be or not to be’를 그냥 ‘사느냐 죽는냐’로 해석하기에는 너무나도 많은 의미가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삼국지의 조조를 배우자는 현대적 재평가나, 흥부말고 놀부에 무게를 주는 뒤집어보기를 셰익스피어에 적용한 것이다. 저자는 샤일록에 대한 평가도 달리한다. 기존의 샤일록에 대한 인식은 나찌의 홀로코스트를 지지하게 할 수도 있었지만, 셰익스피어의 의도는 샤일록을 통해서 오히려 당시 유럽 귀족들의 허세와 모순적 행동을 고발하였다는 것이라고 해석한다. 이미 쓰여진 셰익스피어의 희곡들은 이제 한 글자도 수정할 수 없는 텍스트이지만, 시대상황에 따라, 수많은 다른 변주곡을 일으킬 수 있는 것이다. 번스타인의 웨스트사이드 스토리, 멜델스존의 한여름밤의 꿈, 베를리오즈의 환상교향곡 등등 음악에서도 마찬가지이다.
21세기를 사는 당신은 셰익스피어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인터넷의 시대, 4차산업혁명으로 특징짓는 21세기에는 공감이 중요하다고 미래학자들은 얘기한다. 아리스트텔레스는 ‘시학’에서 ‘연극은 공감을 얻기 위한 전략’이라고 하였다고 한다. 우리들의 손자손녀들은 로블록스나 제페토 같은 메타버스에서 우리가 평생 만난 사람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그리고, 자신의 아바타를 창조하여 새로운 정체성으로 새로운 관계를 가꾸어 나간다. 여러분들은 가상적인 것을 무시할지 몰라도, 셰익스피어가 얘기했듯 ‘가장 진실한 시는 가장 허황된 것이다.’ 이제는 연극같은 가상이 새로운 현실이다.
그들에게는 공감이 절실하다. 다른 이에게 공감해주고, 다른 이로부터 공감을 받고 싶다. 셰익스피어가 창조한 365가지 인간형을 접하는 것으로 공감 능력을 백배로 키울 수 있지 않을까? 셰익스피어는 그 당시의 인기 대중예술가였다. 대중들의 친구로서 왕실과 귀족을 대신 조롱해주었다. 그는 귀족이나, 하인이나, 광대나 모두에게 기본적으로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 손자손녀들이 인간에 대한 존중심을 가지게 하려면 셰익스피어를 읽게 하자. 그들이 셰익스피어를 읽을 수 없다면, 우리가 ‘셰익스피어를 읽자.’
내 머리에서 빠져나간 생각 근육들 하나하나를 다시 키워서, 백세 인생을 새롭게 구상해보자. 셰익스피어를 읽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