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의 귀환 - 누구나 아는, 그러나 아무도 모르는
제이슨 바커 지음, 이지원 옮김 / 경희대학교출판문화원(경희대학교출판부)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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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0년대 말 런던의 값싼 술집들은 대륙에서 쫒겨온 이상주의적 망명자들이 각자의 꿈을 나누는 곳이다. 그 술집의 테이블 하나하나는 세계 혁명의 소우주이다. 러시아 출신 아나키즘의 아버지이자 대책없는 허풍쟁이 바쿠닌, 강남좌파이자 강남스타일 오빠인 엥겔스와 같은 공산주의자들은 모든 나라에서 박멸하려고하는 위험분자였다. (마르크스가 자본을 쓰기 전에 공산주의자들이 존재했다.) 프랑스 혁명은 왕정에 대한 부르주아의 혁명이었을뿐, 프로레탈리아의 시대는 아직 열리지 않은 것이다.

이 책은 3부로 나누어지는데 1, 2부는 1840년대 말이고, 3부는 1870년대 초가 배경이다. 1, 2부는 자본을 쓰는 과정에서 숱한 찌질한 어려움을 그려내며, 그 과정에서 독자들이 답답함을 같이 느끼게 한다. 가정경제를 유지하기 위해 전당포를 수시로 드나들고, 밀린 방세와 온갖 외상값 독촉에 시달리고, 심지어는 항문근처에 난 종기로 인한 고통이 그를 괴롭힌다. 프로이센에서 파견된 비밀경찰의 감시에 대한 두려움이 갑갑함을 더한다. (이것은 정신병적 망상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갑갑함은 초기 자본주의 시대의 무분별한 개발로 인한 공해와 비위생적인 배경과 저자의 현란하고 현학적인 영국식 아이러니와 완곡어법 문체와 함께 섞어찌개의 진한 국물 맛을 낸다. 여러 나라의 언어도 마구 섞인다. 부인 예니와 아이들의 독어와 프랑스어, 바쿠닌의 러시아어, 그리고, 마사지 방의 중국어까지...

이에 비해 3부의 분위기는 런던에 밝은 햇빛이 비치는 분위기이다. 1871년에 깨어보니, 마르크스의 집도 넓어졌고, ‘자본은 출판되었고, 무상교육이 실시되고 있고, 여권(女權)은 신장되었고, 뒷골목은 정화되었다. 그러나, 마르크스가 꿈꾸는 프롤레타리아의 시대는 오지 않았고, 자본주의 사회를 부르조아들이 개량한 형태였다. 프롤레타리아에겐 낫과 망치밖에 없었지만, 속물인 부르조아들은 총을 가졌으므로 권력의 이동은 쉽지 않았던 거 같다. 파리 코뮌이 3일 천하이었듯이 공산주의 연맹은 항상 쫒겨다니고, 내부 반목도 있어서, 마르크스와 같은 수석이론가의 머리에서 나온 이상을 현실화할 힘이 없는 배회하는 유령이었다. 그에 비하면 자본주의는 리바이어단이 아니라 비시스템이며, 우연의 힘으로 움직이지만, 자정작용이 작동하였다. 마르크스가 노동자들을 위해 책을 쓰지만, 그들과 상종하기는 싫어하였다고 한다. 그것은 현실에 닿지 않는, 또는 공감이 배제된 이상론적인 추구였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까?

마르크스는 부인 예니와 가정부 헬레네, 세 자녀와 함께 프로이센에서 파리를 거쳐 런던에 정착하였다. ‘뭐가 맨달 닥쳐온다는 거야하는 예니는 허영끼가 있지만 매력적이다. 그녀는 귀족 집안과 결별하면서 사랑(부르조아 유대인 가정의 마르크스)을 택하고, 아이와 함께 대위를 만나서 남작의 미망인 행세를 하며 불륜을 저지르는 대담함을 가졌다. 극우성향이며 귀족주의에 물든 장교 애인 앞에선 좌파 이론을 역설한다. 런던의 쇼핑가에서 아이쇼핑을 즐기기도 한다. ‘맨날 자본이 이러니 저러니 떠들지만 말고 이제 자본을 좀 벌어보는 것은 어때요?’라고 하는 헬레네는 예니의 체스상대이자, 가정을 정상 가정(정상 식사, 청소 등)으로 돌아가게 하는 역할을 한다. 아이들은 계급투쟁놀이를 하며 자란다. 한 아들은 유아 사망, 또 한 아들은 가난으로 사망한다. 아들의 장례식에서 신부는 ‘... 종교는 (전도된 세계인식으로 이끌므로) 인민의 아편이다라는 설교를 한다. 실제로 딸 엘레아노르(1855~1898)는 후에 사회주의운동가로서 상당한 활동을 하였다. 마르크스는 다음 세대, 즉 딸의 세대를 위하여 자본을 저술하였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책에 나오는 얘기는 아니지만 딸 엘레아노르는 40대 초반에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이 책에서 나오는 여러 꿈에 빠져드는 과정은 현실과 연결이 느슨하다. 그러나, 깨어날 때는 현실과 분명하게 구별된다. 주로 달리는 기차가 허공에 던져지는 꿈이다. 이것은 맹목적인 발전하고 있는 자본주의 국가에 얹혀서 살아가고 있는 아찔함을 표현하면서, 마르케스의 마술적 사실주의적인 느낌을 갖게 한다.

엥겔스는 진화론은 과거에 대한 얘기이고, 자본론은 미래에 대한 얘기라고 하였다. 그런데, 헤겔이 말했듯이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이 깃들 무렵에야 비로소 날개를 펴고 날아오른다.’ (철학은 앞날을 미리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이루어진 역사적 조건이 지나간 이후에야 그 뜻이 분명해진다.) 헤겔의 정반합으로 바라보면, 자본주의의 자정작용은 공산주의자들의 위협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해진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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