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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썼다, 오늘의 공무원 - 오늘도 국가 뒤에서 묵묵히 일하고 있는 공무원들에게
영지 지음 / 허밍버드 / 2020년 7월
평점 :
나는 직업 에세이를 좋아한다.
책을 읽는 이유 중 하나도 내가 잘 모르는 분야를 책을 통해 알게 되고 간접 경험과 대리만족을 느끼는 등에 있는데 직업 에세이야말로 내가 정말 모르는 직업군의 생생한 현장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 알아가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
그래서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했고 활약하고 있는 전·현직에 있는 이들의 에세이를 읽었다.
교사, 간호사, 소방관, 화가, 가수, 작사가, 배우, 모델, 승무원 등 진짜 많은 이들이 자신들의 이야기들을 만화나 사진 등과 함께 맛깔지게 쓰셨다.
예전에 책은 작가들만 쓸 수 있는 거였지만 요즘에는 인터넷과 SNS을 통해 그 허들이 많이 낮아졌다.
덕분에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하면서 글재주까지 있는 분들을 많이 알게 돼서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업무를 의도적으로 가르쳐주지 않는 분위기를 나는 한참 후에야 알게 되었다. 내가 없는 자리에서 나의 태도와 말투, 옷차림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얘기를 한다는 느낌까지. 사실 그런 걸 살쳐볼 여유도 눈치도 내겐 없었다. 내 편이 한 명도 없다는 절박함은 일상이 되었고, 그렇게 나는 점점 주눅이 들어갔다. 따돌림이었다. '왕따'의 모습이 바로 그런 게 아니었을까. 차가운 겨울날 회식을 하다 말고 올라간 건물 옥상에서 터트린 나의 눈물은 부서장 때문이었다. 나와 비슷한 또래의 아이가 있는 부서의 직원이 있었다. 물론 부서장과 같은 직렬이었고 평소 그가 아끼는 직원이었다. 그날 회식 자리에서 보란 듯이 아이 갖다 주라며 그 직원만 음식을 챙겨주는 부서장을 보면서 '아무렇지 않은 척'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앉아 있는 내 모습. 그 순간 그동안 쌓인 뭔가가 울컥하고 치밀어 올라왔다. 하지만 참아야 했다. 어리숙한 데다 찌질한 모습까지 그들에게 보여줄 수는 없었다. 그렇게 나는 가슴 시린 서러움을 피해 한겨울 시린 공기가 서린 옥상으로 올라갔다.
타 직렬이 주류인 부서에서 어리숙한 데다가 눈치도, 특별한 능력도 없었던 7년 전 내 모습. 그들에게 내가 왕따가 된 건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었을까. 애매한 태도와 말투, 나도 모르게 그들에게 주었던 상처, 그들도 모르게 나에게 주었던 상처, 그렇게 함께한 2년의 시간, 지금은 업무적인 용건 외에는 그 누구와도 연락하지 않는다.
직렬 간의 벽이 아닌 나의 어리숙함과 무지에서 온 애매한 태도. 뭐 그런 개인적인 것들이 당시 따돌림의 가장 큰 이유였는지도 모른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시간. 그때 그들 중 한 명이라도 내게 손을 내밀어주었다면, 내 마음속 이야기에 한 번이라도 귀 기울여주었다면, 나는 그 긴 시간을 '따돌림'으로만 기억하고 있지는 않을 텐데. 지금 돌이켜보니 딱 하나 마음에 남은 게 바로 그 아쉬움이다.
-p.015~016 '어리숙한 나는 그렇게 왕따가 되었다'中
어릴 때는 어른이 되면 따돌림이나 왕따 같은 것들은 없을 줄 알았다.
하지만 정작 내가 어른이 되고 학교가 아닌 사회라는, 회사라는 조직에 몸을 담고 오래 일을 하다 보니 회사도 결국 성장판 학교이며 돈을 내는 게 아닌 돈을 받기에 더 빡센 공간에 불과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어른 중에는 제대로 성숙한 어른들보다 몸만 크고 늙어가고 있는 어른 아이가 많고 학교보다 더 업그레이드된 유치하면서 악질적인 이 구역의 미친 XX들이 참 많았으며 그래서 본의 아니게 내 멘탈 강화를 하고 있을 때가 있었다.
[애썼다, 오늘의 공무원]의 저자인 영지 님도 11년간 공무원 조직에 몸담고 계신 현직 7급 공무원이시다.
앞으로 남은 공직의 중간 지점에서 본인께서 경험한 11년간의 공무원의 업무와 고민들을 풀어내셨다.
10여 년 동안 공무원 조직 속에 속해 있으면서 길을 잃기도 하고 방황한 이야기부터 어느 게 맞는 건지 고민하고 바꾸기 위해 노력하는 작가님의 모습이 생생하다.
'절대 튀지 마! 여기선 그래야 살아남아!' 공직 초기, 스스로 바로 서지 못했던 혼란의 시기에 나 자신에게 수없이 다짐했던 말이다. 처음 느낀 공무원 조직은 참으로 낯선 것이었다. 일터에서 만난 동료와 선배 그리고 상사들이 의미 없이 툭툭 던지는 말들. 그 속엔 진심 어린 '걱정'도 있었지만, '뼈'도 있었고 '경고'도 있었다.
"그런 옷은 어디서 사는 거야?"
"너무 적극적으로 하지 마. 뭘 그렇게까지 해."
"그러다 다쳐, 적당히 해."
일상의 작은 상처들. 그것들에 지치고 조금씩 작아졌던 나. 그렇게 나는 절대 튀지 않기 위해 심각하게 고민했던 때가 있었다. 직장생활에서 '튄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외모일까. 성격일까, 눈에 띄는 능력 같은 걸까. 아니면 독특한 취향일까. 무엇으로 우리는 조직에서 '튀는 사람'을 정의하고 있을까?
-p.019~020 '절대 튀지 마! 여기선 그래야 살아남아'中
튀지 말아라, 나대지 말아라는 말은 어느 조직에서나 통용되는 말이 아닐까 싶다.
사실 나도 이 두 가지 말을 다 들었던지라 무척이나 억울해 했던 기억이 나고 지금 다시 생각해도 억울하다.
모순적인 부분에 이해가 안 가고 아닌 걸 아니라고 말한 기억밖에 없는데 나를 마치 모난 돌처럼, 반란 분자처럼 위험인물 취급 당했던 기억이 정말 생생하다.
내가 정색을 하고 말하거나 불퉁하게 말한 것도 아니고 정말 이해가 안 가서 질문을 하거나 웃으며 난처하게 에둘러 말했을 때도 나에게 네가 아직 어리고 사회경험이 적어서 그런다는 듯 철없는 어린아이 보듯 말하던 이들을 아직도 나는 기억한다.
직업 에세이를 읽으면서 내가 경험하지 못한, 다른 이들의 다양한 직업에 대한 편견과 오해, 그리고 이해와 수용에 대한 생각들을 많이 하게 되었다.
특정 직업군에 대한 우리의 편견과 오해는 생각보다 참 많다.
자신이 경험하지 않고 알지 못하는 분야에 대한 편견과 오해는 놀라울 정도면 그 분야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보다는 부정적인 평가와 악의가 많다는 걸 경험할 때가 많다.
공무원 조직에서 '순환 보직'(일정 기간이 지나면 다른 부서로 옮겨 일하는 것)은 근무한 부서의 수만큼 나에 대한 다채로운 평가, 즉 평판을 만들어낸다. 이 사람 저 사람이 던지는 나름의 평가를 피할 수 없다. 수천 명이 일하는 조직에서 나를 바라보는 수천 개의 눈 그리고 보이지 않는 숨겨진 또 다른 눈, 다양한 기준과 잣대, 좋고 싫음, 불편함과 편함 그리고 별 느낌 없음……. 나란 공무원은 그동안 얼마나 많은 평가를 이 세상에 그리고 조직에 만들어냈을까. 그들이 나에게 던진 평가, 내가 그들에게 던진 평가.
11년의 공무원 조직생활. 최근 두 명의 팀장으로부터 들은 평가가 과연 나를 전부 대변할 수 있을까. 버겁고 만만치 않은 직원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이 조직에서 '나다움'을 지키며 어떻게 녹아들 수 있을까. 다른 한편으로 나는 또 다른 고민에 빠진다. 나를 향한 평가만큼 '지금까지 내가 누군가를 향해 쏟아낸 평가'는 과연 괜찮은 것이었을까.
"그분 회식 때 술 드시면 반말한다며?"
"그 팀장 좀 이상해 보이던데, 같이 근무는 안 해봤는데 이미지가 좀 그래."
"옷 입는 게 너무 촌스럽지 않아? 내 스타일은 아냐. 고리타분해 보여서."
"그분 너무 좋으시던데요. 매너도 좋으시고, 저는 무척 좋은 분 같아 보였어요……."
내가 그동안 누군가를 향해 만들어낸 평가의 말들. 그리고 주위에서 주워들은 또 다른 누군가에 대한 말들이다. 물론 당사자가 없는 곳에서 제3자와 주고받은 말이다. 이 상황에서 만약 평가의 대상이 영화 속 지영이 그랬던 것처럼 내 앞에 서서 금방이라도 눈물이 떨어질 것만 같은 커다란 눈망울로 "저를 아세요?"라고 묻는다면, 과연 나는 얼마나 당당할 수 있을까.
-p.028~030 ''82년생 김지영'은 나를 바꿔놓았다'中
이 부분을 읽으면서 참 많이 반성했다.
내가 그동안 누군가를 향해 만들어냈던 다양한 평가의 말들과 주위에서 주워듣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 전달했을 말들이 적지는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내가 뭐라고 그들을 평가하고 주워들은 말을 마음대로 전달했을까 싶고, 내가 누군가를 안다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싶어 반성하고 또 반성하며 말과 입 조심을 하자는 생각을 하며 여러 번 읽은 부분이다.
아무 생각 없이 적은 내 댓글이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 생각해 댓글 하나 달 때도 고심에 고심을 하면서 정작 말을 그러지 못하고 있는 게 아닐까, 특히 큰 조직이라고 할지라도 결국에는 사람들 사이에 돌고 돌아 나에게로 돌아오는 게 말이라는 걸 알면서도 한 번씩 말실수를 하는 거 같아 자기검열을 하게 된다.
해보기 전에 먼저 지레 판단하는 건 좋지 못하다는 걸 알고 있지만 나는 공무원이 맞지 않았다.
오랫동안 기약 없이 재미있을 거 같지도, 내 꿈도 아닌 공무원이 되기 위해 좋아하지 않는 공부를 하고 싶지 않았고 어렵게 공부를 해서 공무원이 된다고 해도 행복할 거 같지 않아 나는 공무원 시험을 보지 않았다.
많은 이들이 공무원을 꿈꾸는 이유 중 하나가 안정된 직장이라는 점을 드는데 자신의 적성과 성향을 외면하고 공무원이 된다 하들 그 사람이 과연 행복할 수 있을까 궁금하다.
내가 내 몸의 작은 움직임까지 통제한다는 의미. 이걸 통제해서 얻어지는 내 몸과 배 전체의 균형. 공무원이라는 나의 직업과 누군가의 엄마, 아내, 딸, 친구라는 개인적인 삶. 그 경계 어느 점을 아슬아슬하게 오고가는 일상의 순간순간 속에서 때로는 당황하고 때로는 냉정해지고 때로는 절망하는 내 모습을 본다.
이 둘 사이의 균형은 내가 공무원이란 직업을 그만두지 않는 한 계속 풀어내고 또 견고하게 만들어야 할 과제가 아닐까.
잔잔한 호수 위에 아슬아슬하게 떠 있는 조정 보트 위. 그 모습은 나의 일상과 꼭 닮았다. 내가 균형을 잡고 있어도 다른 누군가에 의해 평온한 일상은 언제든지 흔들릴 수 있다. 그렇다면 나는 무얼 할 수 있을까. 보트 위에서 내가 해야 하는 첫 번째는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양손의 노를 가지런히 잡아 밸런스를 유지하는 것이다.
균형. 공직과 개인적인 삶 사이 중간 어느 지점. 거기에 나는 단단히 두 발을 땅에 딛고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멈추지 않고 한 걸음씩 나아가야 한다.
다시 첫 조정 연습 날 아침, 호수 표면의 무수한 수초들 사이를 헤치고 내가 탄 보트는 거침없이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른 아침 정적 속에서 보트 위 네 명의 크루가 만들어내는 노 젓는 소리만이 공기를 가로지른다. 첫 승선인 나는 어떤 힘도 보태지 못했다. 양손의 노를 꽉 쥐고 균형을 유지하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 그때 나는 무엇을 느꼈을까. 막연한 두려움? 아니다. 신기하게도 그때 나는 앞으로 이 배 위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만들어갈 또 하나의 이야기가 문득 궁금해졌다. 왠지 모를 설렘과 기대감. 내 인생 첫 조정 연습 날 아침은 그렇게 흐르고 있었다.
-p.133~134 '조정은 나에게 아주 특별하다'中
직업인으로서 뿐 아니라 한 사람의 성인으로 살아가는데 이런 균형이 정말로 필요하고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라는 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역할과 위치에 어느 한쪽으로 치우침 없이 넘어지거나 휘청이지 않기 위해 정말 많은 노력과 때로는 발버둥이 필요하다.
공무원에도 다양한 분야가 있는데 이 책의 저자 님은 행정 공무원이신 듯하다.
이 책은 공무원과 공무원 조직을 지켜본 관찰기이며 사명감으로 공무원이라는 직업을 온전히 받아들이기까지의 극복기라고 한다.
공무원과 공무원 조직이라는 특수성이 있긴 하지만 책을 읽다 보면 다양한 분야의 회사원과 회사 조직에서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상황들과 고민, 악습과 변화들의 유사한 부분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변화는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구청에서 공직자들의 반바지 출근은 거의 일상화가 된 듯했다. 이미 익숙해져서 정작 본인들은 반바지 입은 자신들을 보고 놀라고 있는 내가 더 신기할지도 모르겠다. 그렇다. 요즘 젊은 공직자들의 패션 트렌드는 '반바지 입는 공무원'이다. 반바지를 입고 민원 전화를 받고 회의를 준비하고 업무 보고를 하고 현장을 나가 민원 처리를 한다. 누군가는 그놈의 반바지가 무슨 대수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느끼는 건 조금 다르다. 무채색의 눈에 띄지 않는 옷차림에서 '반바지 입는 공무원'으로 프레임의 전환이다. 반바지를 입고 일하는 공무원도, 또 그런 공무원을 바라보는 시민도 뭔가 달라졌음을 느끼는 것. 그 감정이 중요한 게 아닐까.
휴일이나 주말이 아닌 주중 근무 시간에 반바지를 입고 일하는 나를 느끼는 것만으로도 예전과 비교할 수 없는 자유로움을 느낀다. 평범한 직장인이 가장 많이 하는 고민이 뭘까? 각자 취향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나름 평범하게 살고 있다고 자부하는 내가 주로 하는 고민은 딱 두 가지다. 아침에는 '오늘 뭐 입지?' 그리고 점심때와 저녁때는 '오늘 뭐 먹지?'다. 직장인에게 옷차림이 주는 상징성은 무척 크다. 그래서 '반바지 입는 공무원'들은 내게 더욱 특별하게 다가온다. 반바지가 주는 그 '자유분방함'과 공무원이란 직업이 주는 '경직성'이 공존하는 현실, 그 속에 내가 있음이 신기할 따름이다.
아직은 반바지 입고 출근하는 내가 어색하다. 그래서 공식적인 회의가 있는 날에는 나름 갖춰 입는다. 그에 비해 옆자리, 앞자리 그리고 건너편 자리 8~9급 후배 공무원들은 편한 반바지를 거의 매일 패턴과 색깔을 바꾸가며 입고 출근한다. 사실 부럽다. 그 자유분방함과 쓸데없이 눈치 보지 않는 당당함이. 변화에 앞장서 있다고 자신하던 나였는데 후배 공무원들의 자신만만한 반바지 패션에 괜히 주눅이 든다. 문득 나도 어쩔 수 없이 과거 선배 공무원들이 내게 의미 없이 툭툭 던졌던 '튀지 마, 그래야 편해'라는 마인드가 어느새 익숙해진 건 아닐까 하는 불안감마저 든다.
-p.152~154 '반바지 입는 공무원들'中
얼마 전에 읽은 책 [90년생이 온다]가 생각났다.
이제는 90년생이 아니라 00년생이 사회에 나올 때가 됐다.
반바지가 가지는 의미는 어떨까,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회사에 청바지와 면 티를 입거나 운동화를 신고 출근하면 노골적으로 싫어하시는 분들이 계셨던 기억이 생생하다.
머리 염색이나 네일 컬러를 가지고 싫은 내색을 넘어 한 소리씩 하셨던 분들도 계셨다.
정말 불과 몇 년 전이었는데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지금은 자연스럽게 다들 편한 옷차림과 자유롭게 출근하고 있다.
앞으로 몇 년 뒤에는 또 어떤 변화가 있을지 두근거리며 기대하게 된다.
디저트가 맛있는 카페에서 음료와 함께 가벼운 마음으로 읽다 오려고 가지고 나왔다가 나 또한 어떠한 조직에 속해 월급을 받고 있는 직장인으로 어느 부분은 공감하고 공무원과 공무원 조직에 대해 새로 알기도 하고 이해하면서 순식간에 다 읽었다.
주변의 공무원과 공무원 조직에 고민하는 공무원이나 공무원을 꿈꾸는 이들에게 선물하면 좋을 거 같다.
굳이 공무원이나 공무원을 꿈꾸는 이들이 아니더라도 요즘 많이 나오는 직장인, 회사원 에세이처럼 직장과 일 사이에서 고민하고 방황하는 사람들에게 위로를 줄 수 있는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