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꽃 1
조정래 지음 / 해냄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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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한다는 것은 함께 운다는 것이다.


사랑은 ‘어떤 사람이나 존재를 몹시 아끼고 귀중히 여기는 마음. 또는 그런 일.’이라 사전에 명시되어 있다. 그럼 사랑한다는 건 무엇일까? 작가님의 문장처럼 너무너무 아끼고 귀중해서 누군가의 비극도 함께 짊어져 함께 울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이 소설은 사랑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지금 시대에 사랑을 던지는 이야기다.


자수성가로 부를 이룬 아버지와 그 아버지 아래에서 같은 이념으로 함께 일하는 형, 이재이는 그들과는 조금 달랐다. 부모님이 원하는 경영학을 몰래 철학과로 바꾸고 아마추어 동아리 ‘글밭’에서 활동하며 시를 지었다. 그리고 시화전을 준비하며 자신의 시를 읽고 그림을 그려준 윤소인을 만났다. 고백 한번 해보지 못하고 아버지의 뜻에 따라 미국으로 유학길을 떠난 이재이는 그 후회를 빼곡히 다이어리에 써 내려갔다.


「윤소인 윤소인 윤소인 윤소인

윤소인 윤소인 윤소인 윤소인

윤소인 윤소인 윤소인 윤소인

윤소인 윤소인 윤소인 윤소인

윤소인 윤소인 윤소인 윤소인

윤소인 윤소인 윤소인 윤소인

내마음 그대로인 소월의 「초혼」을 밤마다 외며 그대를 부른다.

-서리꽃 1 본문 중-」


이재이가 후회의 기도처럼 빼곡히 적어 내린 이름에 마치 내가 윤소인이라도 되어버린 양 가슴이 벅찼다. 고백하지 못한 이십 대의 청년이 그 후회를 몇 년이고 그리움으로 빼곡히 적어 내려갔다. 그리고 마치 운명처럼 그 그리운 후회를 전달할 수 있는 날이 오고야 말았다. 조건 없는 애정, 그것을 활자만으로도 느낄 수 있다는 것에 새삼 놀라움을 갖게 된다.


5년의 기간이 흘러 돌아온 이재이는 같은 ‘글밭’ 멤버이자 친구인 민태석을 만나고 민태석을 통해 윤소인과 재회하게 된다. 5년 만에 만난 그녀에게서는 묘한 어둠이 있었고 이재이는 곧 그녀의 얼굴이 어두운 이유를 알게 된다. 중소기업가였던 윤소인의 아버지가 대기업에 기술을 빼앗겨 그 소송을 이어가다 사망하게 되었고 막대한 빚을 가족이 떠안게 된 것이다.

윤소인은 빚쟁이들이 차려준 지하 2층의 미술학원을 운영하며 힘겹게 살아가고 있었다. 이재이는 사랑하는 그녀의 삶을 되돌려 놓기로 하며 자신의 상속분을 가지고 형과 거래를 한다.

생각한 대로 차곡차곡 일이 진행되는 듯했다. 그들 사이에는 행복만 있을 줄 알았다.


「윤소인은 빠르게 첫 장을 넘겼다. 한눈에 양쪽 페이지에 빼곡하게 적힌 글씨들이 확 들어왔다. 또박또박 정자로 쓴 그 글씨들은 다 똑같았다.

‘완쾌되기를.’

-서리꽃 2 본문 중-」


보림사에서 지내며 36일 동안 칠천오백 번이 넘는 ‘완쾌되기를.’이란 기도를 써 내려간 한 남자의 마음과 그 마음을 받은 한 여자의 마음. 분명 글을 읽었는데 그 후의 감정을 말이나 글로 전할 수 없는 이 가슴 떨림이 나는 무엇인지 모르겠다. 정말 내가 윤소인이라도 된 것인가. 어쩌면 마음 구석 깊은 곳에 윤소인처럼 사랑받고 싶었던 감정이 건드려진 걸까? 마치 내가 그 마음을 받은 당사자인 듯 가슴이 울컥거려 눈물이 났다.


사랑하는 여인을 끝까지 지키려는 남자, 사랑하는 이에게 한없는 사랑을 받는 여자 그런 사랑이 요즘은 너무 고전적이다라는 느낌이 들 수도 있다. 특히 요즘의 시대에는 더더욱.

고전이 사랑받는 이유는 깊은 곳 사람을 울리는 원초적 인간다움이 깃들어 있어서라 생각한다. 사랑에도 분명 그것이 있으니 오랜 세월 이어져 내려오지 않았을까. 돈도 아닌 자신의 감정만으로도 사람을 해하는 시대에 우리는 어떤 사랑을 주고받으며 서로를 사랑할지 한 번쯤은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책의 후반부터는 덤덤하게 두 사람과 함께 마지막 여행을 함께 했다. 그들이 파리에서 보는 그림들을 핸드폰으로 검색해 하나하나 함께 보며 마치 조금 뒤에서 함께 하는 일행처럼 소설을 읽어나갔다. 죽어서 가장 행복한 화가가 되었고 살아서는 가장 불행했다는 고흐를 보며 예술가의 삶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된다. 나에게는 꿈을 펼쳐 보지 못하고 일찍이 세상을 떠난 친구가 있다. 고등학교 시절 함께 만화동아리에서 만화를 그리던 친구는 더 높은 꿈을 위해 합격 된 대학교를 입학하지 않고 1년을 다시 준비했다. 그리고 실기시험을 며칠 앞둔 어느 날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그때 친구의 나이 고작 스물이었다. “죽을 때도 입에 붓을 물고 죽을 거야!” 라던 친구를 윤소인을 보며 떠올리게 된다. 작가님도 독자의 질문에 그 비슷한 대답을 하신 글을 보며 예술가들의 마음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윤소인도 얼마나 그림을 더 그리고 싶었을까. 얼마나 더 이재이와 사랑하고 싶었을까 얼마나 더 살고 싶었을까.


모든 걸 다 줄 수 있는 남자에게 신은 잔인했다. 유일하게 그가 줄 수 없는 걸 그녀에게서 가져간다. 소설에 한 남자의 순애가 녹아있다. 삶은 유한하고 마음은 무한하다. 미술이나 문학 등 예술이 오랜 세월 사랑받는 것은 그것을 만들어낸 존재들의 마음이 녹아있기 때문이 아닐까. 이재이 윤소인과 함께 책에 나오는 작품들을 바라보며 고흐의 작품들에는 그가 사랑한 것들이 잔뜩 담겨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흐가 사랑한 세상과 고흐가 사랑한 이들, 때때로 밉기도 했을 테지만 누구보다 사랑했을 고흐 자신. 그게 아니라면 그림들이 그토록 아름다울 수 없을 것이다. 가장 사랑한 것들을 캔버스에 그려나가며 사랑을 남긴 고흐를 생각해본다. 그것이 우리가 사랑을 잃지 않아야 할 이유로 충분하지 않을까.

사랑받고 싶은 사람에게는 잔뜩 사랑받는 하루가, 사랑 주고 싶은 사람에게는 잔뜩 사랑 주는 하루가 되길 바란다. 사랑하는 것을 잔뜩 하자. 오늘도 내일도, 살아있는 동안 그대들이 바라는 만큼은 꼭 충만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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