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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무서운 꿈을 꾼다
우사미 마코토 지음, 이연승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4년 10월
평점 :
가정을 돌보지 않는 무능한 아버지, 그런 아버지로 인해 소년 와타루는 엄마와 함께 길거리로 내몰리게 된다. 엄마의 뱃속에는 와타루의 동생이 세상과 만나기 위해 하루하루 자라고 있는 중이다. 엄마의 손을 잡고 엄마가 예전에 일했던 찻집을 찾아가 보지만 그 곳의 도움을 받기도 여의치가 않다. 대신 찻집에서 일하는 코우짱이라 불린 남자에게 달콤한 크림소다를 한 잔 얻어 마셨다.
크림소다의 달콤함을 뒤로 하고 다시금 엄마의 손을 잡고 거리로 나섰다. 그 시간, 그 거리에 전단지를 나눠주는 어느 종교 단체로 인해 와타루는 그렇게 엄마와 함께 '시온의 빛'이라는 종교단체에 들어가 살게 된다. 시온의 빛에서는 잠을 잘 수 있는 잠자리와 따뜻한 음식을 제공해주고 와타루가 근처 학교에도 다닐 수 있게 해주었다. 엄마 에리코는 그런 시온의 빛 종교 단체 생활에 점점 익숙해지고 모든것을 기대게 된다. 하지만 와타루는 학교에서 이 시온의 빛 종교 단체가 마을에서 썩 신뢰를 받고 있지는 않다는사실을 알게 된다. 아니 되려 와타루는 시온의 빛에서 살고 있다는 점을 이유로 괴롭힘을 당하게 된다.
시온의 빛의 도움을 통해 드디어 엄마의 뱃속에 있던 동생은 세상 밖으로 나온다. 귀여운 마리나라는 여동생이었다. 작디 작고 보드라운 귀여운 여동생을 지키는 것이 와타루의 삶의 목표가 되었다.
갑자기 흘러 들어온 와타루 자신처럼 아오토라는 동급생이 전학을 온다. 어딘가 타인과 잘 썪이지 못하는 모습이 와타루와 닮았지만 조금 다르다면 아오토는 스스로가 타인을 신경쓰지 않는 어른스러운 구석이 있었다.
아무에게도 곁을 내주지 않는 아오토지만 괴롭힘을 당하는 같은 처지의 동질감인지 와타루에게만은 곁을 내주었고 와타루도 그런 아오토가 너무 소중했다. 그러다 아오토의 비밀을 알게 되고, 아오토의 가족들을 만나게 된다. 그들도 아오토만큼 '특별한' 존재들이다.
어릴 적 달콤한 크림소다를 뒤로 하고 거리로 내몰렸던 것처럼 와타루의 달콤쌉싸름한 일상이 또다시 큰 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시온의 빛이 마리나에게 정체불명의 약을 먹인 후 숨을 쉬지 않게 된 것이다. 그들은 이 사실을 숨기기 위해 작고 여린 마리나의 몸을 작은 플라스틱에 담아 강가에 유기한다. 와타루는 그런 마리나를 향해 물 속에 뛰어들어 마리나를, 그 작은 죽은 몸을 구한다. 그리고 아오토의 가족에게 찾아가 부탁한다.
마리나를 살려내달라고. 그 사건 이후 마리나와 홀연히 떠나버린 아오토의 가족들. 그리고 시온의 빛을 나와 와타루는 홀로 세상을 살아내며 어른이 된다. 하지만 다시금 아오토 가족과의 인연에 얽히게 되고 만다.
시대 배경이 마치 코로나19를 연상시키는 부분들이 있다. 이 책 이후 읽고 있는 다른 일본 소설에서도 who가 언급되는 것을 보니 작년 일본의 트렌드 단어가 who였나보다. 개인적으로는 who로 언급될 때마다 우리나라에서 대중적으로 쓰이는 '세계보건기구'라는 명칭이 더 좋은 것 같다. 어쩌면 익숙함 일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책은 두껍지 않지만 의외로 페이지는 400페이지에 달한다. 그럼에도 지루하지 않다. 와타루와 아오토의 우정이 좋았고 아오토 가족의 신비스러움에 끌리는 책이다. 그리고 나의 관심을 늘 가져가는 주제인 어린 아이들을 향한 학대 혹은 방임의 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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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이하게도 '가족'이라는 단어를 입에 담는 에리코가 증오스러웠다.
또 손에 잡히는 행복만 골라서 누리려는 태도를 용서할 수 없었다.
세상에는 절대 부모가 돼서는 안 되는 사람이 있다. 바로 눈 앞에 있는 이 여자다.
본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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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보다 더 먼저 사회문제로 제기되어 왔던 아동 방임, 가정내 학대 문제를 다루고 있는데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아무도 모른다'가 개봉된 것이 2005년임을 생각하면 20년이 지난 현재도 전세계적으로 완벽히 해결되지 못하는 문제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한다.
20년이라는 시간이 지나 내가 부모가 될 나이에 접어들어보니 확실히 나이를 먹는다고 훌륭한 어른이 된다는 것은 허무맹랑한 이야기에 가깝다고 느껴진다. 또래의 지인들이 부모가 되고 아이를 케어 하는 것을 보면서, 이상과 현실이 얼마나 다른지를 조금은 이해할 것 같다. 그럼에도 우리는 훌륭한 부모가 되어야 하고 훌륭한 어른이 되어야한다. 훌륭함이 버겁다면 적어도 따뜻한 어른은 되어야 한다. 그 따뜻함이 지금을 살고 있는 다음 세대의 누군가에게 희망이 될테니까. 세상은 그렇게 살면 손해야 라고 말 하면서도 우리는 가끔 누군가의 선행에 영웅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칭찬한다. 그 손해로 인해 누군가가 도움을 받을 수 있음을 알기에.
오늘밤 누군가의 무서운 꿈 하나가 사라지는 그런 하루가 되길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