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도시의 사랑법
박상영 지음 / 창비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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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월 생일 즈음에 친구가 보여준 영화였다. 친구는 이 영화를 예매하기 전 혹시나 모를 일을 대비해서 이 영화속 남자주인공에 대해 몇차례 언급을 해주었다. 김고은과 노상현, 그리고 제목도 사랑법이 들어가는 만큼 이성애적 사랑을 보여주는 스토리로 생각하고 있을 것을 우려해서였다. 사실 사전 지식이 없었다면 당연히 이성간의 사랑 이야기로 생각했을 것이다.

소설은 남자주인공 영의 단독시점이다. 그가 사랑한 이들과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방식이다.

그리고 영화로 만들어진 것은 가장 첫 파트에 나오는 에피소드로 대학동창이자 여성인 재희가 나온다. 영화와 소설에서 조금 다른 부분들이 있는데 방탕하지만 끝까지 가지는 않은 듯한 영화속 재희와 다르게 소설 속 재희는 영화보다는 좀 더 방탕한 이미지를 준다. 여성의 자궁 모형을 들고 비를 맞으며 바들 바들 떨며 울부짖던 재희가 나는 좀 더 좋다.

집착이 사랑이 아니라면 난 한번도 사랑해 본 적이 없다.

아마 이 대사 한 줄이 인상깊어 영화로 만들어보고 싶었던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만큼 나에게는 임팩트가 있었던 대사다. 몰론 현실의 나는 너무 지나친 집착적 사랑은 거부하고 싶다. 집착은 간절히 가지고 싶은 것을 갖지 못해서 생긴 상처가 지나쳐 생기는게 아닐까. k3가 가진 집착이 딱 그렇게 느껴진다. 사랑이지만 세상에 당당히 드러낼 수 없는 사랑.

가위 하나 조차도 왼손잡이들이 사용하기에 상당히 까다롭다고 한다. 소수성애자로서 산다는 것은 상당히 피곤하고 외로울 것이다. 모든 것이 일반적 기준에 맞춰져 있는 사회를 살아간다는 것은 맞지 않는 포장 상자에 억지로 욱여 넣어지기 위해 이리저리 구겨지는 것일터다. 대다수가 내가 구겨져 상자속에 들어가는 것을 택할 것이지만 박상영 작가가 그린 소설은 과감히 그 상자를 뚫고 머리를 내민 것 같다.

'어, 그래 나 이렇게 생긴 물건이야. 이렇게 맞지 않는 상자에 억지로 욱여져서 포장하려고들 하지만 어차피 메인은 나잖아? 상자가 아니라 상자 속에 들어가 있는 내가 주인공이라고.'

마치 그렇게 소수성애자들이 하고픈 말을 대신 토해주 듯 하다.

소설을 다 읽고 나서 얼마 전 TV로 방영된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를 봤던 기억이 겹쳐졌다.

음악의 전설이 된 퀸의 보컬 프레디 머큐리를 다룬 영화로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프레디는 어딘가 소설 주인공과 닮았다. 아니 주인공이 프레디를 닮았다. '동성을 사랑하는 나'라는 부분에서는 성소수자들이 모두 프레디이고 소설의 주인공인지도 모른다.

나에게도 동성을 좋아하노라 고백한 학교 친구들이 몇 있었다. 하지만 그 중 한명은 결혼을 해서 아이까지 낳아 살고 있다하고 한 사람은 어떻게 지내는지 알 길이 없다. 이런 류의 이야기를 접할때마다 반강제적으로 기억이 소환되고는 한다. 나에게 무심한 듯 툭 던졌던 커밍아웃을, 그러냐고 무심히 대꾸하던 나의 표정을 가만히 살피던 얼굴을. 그리고는 아무렇지 않게 같이 팔짱을 끼며 복도를 걷고 점심 도시락을 먹고 수다를 떨었던 날들을.. 성인이 된 이후 주변에도 커밍아웃을 하겠다던 문제로 오해가 생겨 연락을 끊었지만, 그래서 소식이 딱히 궁금한 것은 아니지만, 때때로 "나는 정말 겁을 먹으면서 동성을 좋아하노라 고백을 했는데, 정말 벌레씹은 표정으로 쳐다볼 것을 생각하며 커밍아웃했는데 덤덤하게 그러냐라고 대답해서 얼마나 어이가 없었는줄 아냐"라던 그 말이 여전히 친구 대신 남아있다.

그 애가 어딘가 묘하게 뾰족하고 날카로웠던 건 세상이 정해놓은 통념 속에서 늘 외롭다고 슬프다고 그럼에도 나는 나라고 외치고 싶었던 마음이 아니었을까. 소설 속 주인공과 어디가 좀 닮은 구석이 있어 생각이 난다. 너도 이 나라 어느 도시에서 여전히 누군가를 사랑하며 살고 있을까.

나와는 이제 상관이 없는 인연이지만 어떤 사랑을 하고 있든 아프지 말고 지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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