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홍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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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눈 쌓인 산장에 혼자서 요란히 불꽃을 튀며 타들어가는 벽난로의 장작같은 소설이다.

자극적이지도 그렇다고 완벽하게 고요한 것도 아닌, 분주하면서도 소란스럽지 않은 소설이다.

그리고 눈이 내린 사방처럼 명확한 선을 찾기가 어려운 소설이기도 했다.

과연 주인공이 가보았던 그 미지의 도시는 존재하는 곳일까. 

주인공의 착각은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사라진 M**소년을 그 도시에서 만난 것은 대체 무엇일까?


주인공은 어린시절 만난 한 소녀를 평생 마음에 품고 살아간다.

그 소녀의 이야기로 말미암아 두사람이 함께 만든 "도시".

어느날 소녀가 아무런 흔적도 없이 사리지고, 혼자 남은 소년은 어른이 되었다.

소녀를 만나기 위해 기여코 찾아가게 된 그 도시는, 자신의 그림자를 떼어놓고

한번 들어가면 지금의 세상으로 나오는 것이 쉽게 허락되지 않는다.

그리고 한번 나가면 두번 다시 돌아올 수 없다.

그렇게 소년이었던 사내는 그 미지의 도시에서 생활을 하게 된다.

그럼에도 그런 세상에서 지금의 현세로 되돌아온 사내는

자신조차도 왜 다시 이 세계로 돌아온 것인지 몰라 혼란스럽다.


본래의 세계로 되돌아온 사내는 다니던 회사를 관두고 시골의 작은 도서관의

관장직을 맡으며 그 작은 마을에 이사해 살아간다.

그리고 그는 그 미지의 도시처럼 현실의 이 마을에서도 신기한 일을 경험하게 된다.


이 소설의 이야기가 작가의 손에서 다시금 완고히 지어져 나오는데 걸린 세월이 40년,

나라는 사람이 살아온 인생이 딱 그쯤인 것을 생각하면 작가가 얼마나 오랜 세월

이 눈의 도시 이야기를 가슴에 품으며 잊지 않고 살아왔는지 가늠하게되어 경이롭다.

이 책은 독자인 나 한사람의 일생처럼, 한 일생을 살아 움직이며 완성된 이야기다.

'이야기'에 '진심'인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의 대단함을 느낀다.


책을 읽으면서 이 책 속의 신비한 도시를 계속 생각했다.

도시. 불확실한 벽. 그림자가 없는 세계.

어쩌면 그 도시는 마음속 공허함과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는 불안감을 가진 이들만이

발을 들여 놓을 수 있는 일종의 방공호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림자라는 것은 나와 한 몸이면서도 나와는 다르게 검기만한 모습이다.

내가 가진 어두운 내면을 나타내는 게 아닐까. 

그래서 나를 지키는 이 방공호 같은 도시에 나의 그림자는 들어갈수 없는게 아닐까.

겨울 눈을 몸에 쌓은채 죽어가는 단각수들은 현실에 존재했을 그림자 잃은 도시인들의

미지의 가능성이 아니었을까. 어쩌면 이루어졌을지도 모를 많은 꿈들이 단각수가 되어

겨울철 그렇게 하나 둘 사라져가는 것이 아닐까.

환상적인 이야기 속 눈의 도시를 생각하며 어쩐지 나는

슬픔으로 얼룩져 숨어버린 우리들 마음이 이 도시에 비유된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서서히 죽어가던 그림자와 단각수들...

고요하고 깨끗한 도시. 그럼에도 어딘가 쓸쓸하고 슬픈 도시.

마치 언젠가의 나의 마음과 닮은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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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담이지만 궁금해져서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니 나도 수요일에 태어난 수요일의 아이였다...

'수요일의 아이는 수심이 가득하다.' 괜찮다. 나의 벽은 그래도 아직 건강할 것 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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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스텔라 2023-12-21 16: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개인적 감상이자 스포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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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는 현실의 세계에서 한동안 밖을 다니지 못할 만큼의 무기력함을 가지고 있었던 점과, 주인공은 소녀를 잃고 방황하며 마음 둘 곳이 없이 소녀만을 만나고 싶어했던 점. 그리고 M**소년의 경우 서펀트 증후군으로 무관심한 아버지와 지나친 관심을 가지는 어머니를 가진 환경적 요인으로 현실에서 평온함을 얻지 못했다. 그들이 편히 쉬고 싶은 마음속 방공호이자 안식처가 그 도시가 아니었을까. 그림자를 두고 들어간 사내와 그림자를 가진채 몰래 들어간 소년의 차이점이 어쩌면 마음의 병을 나타내는 것이 아닐까. 자체적인 마음의 우울함? 공허함을 지닌 사내와 서펀트 증후군으로 그런 우울이나 공허함은 없지만 자신이 현실에 없어져야 한다는 생각을 한 소년의 차이가 아닐까?. 마지막에 그래서 소년은 사내와 함께해 대신 그 도시에 살아가겠다고 한 것이 아닐까. 주인공 사내에겐 다시금 현실에서 대화를 하고 싶고 함께 커피를 마시고 싶은 사람이 생겼기에.
전체적으로 그래서 내가 느낀 도시란 마음이 아픈 사람들의 현실을 등진 내면의 도시가 아닐까... 그들의 바램대로 그 어떤 자극도 없이 평온한 도시. 그덕에 단각수의 형태로 죽어가는 현실의 많은 미래의 꿈과 희망들... 그래서 어딘가 쓸쓸한 도시.
고요하고 평온함이 주는 도시에서 더이상 자라지도 늙지도 않는 신체로 살아갈 것인지, 괴롭더라도 다시금 현세로 돌아와 부딪힐 것인지. 벽은 내면의 상처를 나타내는 것이 아닐까. 상처에 따라 변하고 스스로를 보호하려 외부로의 출입과 내부에서 나가려는 것을 막는 부분이 말이다. 그리고 이 도시에서 그 벽을 어떻게 돌파해 나갈 것 인지는 결국 나 자신에게 달렸다는 그런 의미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