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에게 있어서는 순수 국내 문학에 즐거움을 느끼게 해준 시작점의

몇몇 작가들이 있다. 그 중 한 작가가 최은영 작가이다.

쇼코의 미소, 내게 무해한 사람, 밝은 밤. 그리고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까지

그녀의 첫 작품 쇼코의 미소를 시작으로 함께 나란히 독서라는 산책을

걷고 있는 것 같다.

최은영 작가의 소설들은 비슷한 나잇대의 여성이라면 특히나 공감하게 되는

힘이 있는 것 같다. 같은 시대, 같은 '사회의 분위기'라는 공기를 마시며

살아왔기 때문일까. 그녀의 소설 속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을 접할 때마다

꼭 나의 이야기, 내 언니의 이야기, 내 친구의 이야기를 조곤조곤 듣게 되는

것 같아서 공감이 되기도 하면서 가끔은 아프고 가끔은 응원하고 가끔은 또..

적잖은 분노를 토하게 하는 것 같다.

반짝이며 빛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아름답지 않다고 할 수 없다.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삶이 꼭 그러하다.

그저 평범한, 아니 때로는 삶의 무게에 짓눌려 버린 듯한 삶을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가 왜 이토록 마음에 남을까.

그들의 이야기가 이 세상의 많은 '우리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이 아닐까.

서운하다는 감정에는 폭력적인데가 있었으니까.

넌 내 뜻대로 반응해야 해 하는 마음.

서운함은 원망보다는 옅고 미움보다는 직접적이지 않지만,

그런 감정들과 아주 가까이 붙어 있다.

(본문 중)

넌 내 뜻대로 반응해야 해라는 마음.

일방통행에서 느끼는 서운하다라는 감정을 가장 잘 표현해주는 문장이

아닌가 싶다. 최근 지인의 하소연을 들어주면서 "사정이나 상황을 다 이해는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서운해."라던 지인의 말에 "이해를 하는데 서운해하고

섭섭해하면 결국 그건 이해를 한 게 아니지 않아?"라고

반문 했었는데 이 책을 읽은 후에 그 하소연을 들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랬다면 내가 했던 말보다는 좀 더 둥근 표현인 "넌 내뜻대로 반응해야 해."

라는 말을 해줄수 있었을 텐데.. 그랬다면 덜 상처를 줬을까.

'답신' 편을 읽을 때는 주인공들 만큼은 아니었지만 살기 팍팍한 어린시절

느꼈던 집안의 날서고 메마른 공기가 떠올랐다. 어른들의 냉랭한 공기는

아이들을 눈치보게 만든다.

언니와 나는 우리가 달라지면 아빠의 태도가 달라질 거라고

꽤 오래 믿었던 것 같아.

그래서 아빠의 눈치를 살피며 호감을 얻으려고 노력했지.

(본문 중)

아빠의 눈치를 보던 딸은 자라서 남편의 눈치를 보는 아내가 되고,

끝없이 '상대는 본래 착한 사람' 이라는 자기 합리화를 한다.

자라는 환경에서 사랑을 받지 못했다라는 것이 한 개인에게 그저 단순한

과거형이 되는데에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라서

어른이 되어서도 사랑에 굶주려 현재 진행형으로 자신을 몰아세운다.

상대에게 맞추기 위해 필사적이다. 그리고 그들의 필사적임을 상대는

너무나도 잘 알고 이용한다. 지금은 인연이 닿지 않는 먼 옛날의 지인 역시

그런 경우였다. 공교롭게도 내 지인 역시 친한 '언니'였다.

그래서 답신 편을 보면서 주인공의 언니를 보면서 그 언니가 참 많이

생각이 난다. 지금은 본인의 바람대로 행복해졌을까.


잔뜩 흐리고 비가 보슬보슬 내리는 그런 날 같다.

미묘하게 약간은 슬프기도 하고, 그럼에도 약간은 평온하기도 한

그런 이야기들. 먹구름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해는 가려져 있고,

곧 저 사이로 해와 파란 하늘이 스치듯 보일 것 같은데

여전히 보슬 보슬 비가 내린다. 춥지도 덥지도 않다.

파란하늘은 보이지 않지만 여전히 주위는 밝다.

그리고 마음 한켠 곧 파란 하늘을 볼수 있겠지라는

작은 마음을 품으며 가만히 하늘을 올려다보는 그런 마음이

이 이야기들을 닮은게 아닐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