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영혼을 다독이는 관계 심리학 - 나르시시즘과 외로움
우즈훙 지음, 박나영 옮김 / 리드리드출판(한국능률협회)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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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친구에게 이유를 알수 없는 적대감을 받은 적이 있다.

그로 인해 친구와의 사이가 틀어졌는데 나는 이 이유를 알 수 없어 답답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어쩌면 가까운 이유를 어렴풋이 알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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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도움은 내 자존심을 상하게 하므로 네 도움을 원하지 않는다.

나는 도움이 필요치 않고 누가 나를 도와주고 싶다면 내가 그것을 받아들이도록 

설득해야 한다. (본문 생략) 건강하지 못한 나르시시즘을 가진 이들은 

자기애를 지키기 위해 사람들로부터 입은 은덕을 저비리기도 하고 배신하기도 한다. 

[본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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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더 일찍 이 부분을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면 친구와의 상황은 조금 

달라져있었을까 그런 아쉬움이 남는다. 나의 도움이나 걱정스러운 염려들이 

그 친구에게는 자기애를 지키기 위한 불필요함이었던 것이 아닐까. 

순수하게 애정을 쏟으면 그런 자상함이라면 그것이 꼭 받아들여질거라고

그렇게 믿어온 착각이 두사람 모두에게 예기치 못한 상처를 남긴 것 같다.


책에서 지나친 도덕적 나르시시즘을 경계하라고 하는데 나는 도덕적 나르시시즘에 

빠져있었던 듯하다. 친구와의 문제에서 누군가가 내게 말하길

 '너는 이상주의자고 그 친구는 지나치게 현실주의자다.' 라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내가 이상주의자였던가? 머리에 뭔가 묵직한 것이 떨어진 기분이었다.

생각해보면 나는 '도덕적이고 깨끗하며 착한사람이 당연히 복을 받는 세계'를 

꿈꾸고 있었다. 그래서 불합리한 일에는 쉽게 분노하곤했는데 어쩌면 그런 부분들이

누군가에겐 불편함으로 다가갔을 수도 있을 것 같다. 모든 사람이 착한 공간이

꼭 이상적인 파라다이스가 아닐수도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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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을 인정할 줄 아는 것은 타협적이고 관용적인 모습의 표현이다. 

반대로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과도한 나르시시즘과 편집증과 연결된다. 

이제껏 항상 당신이 옳았다면 당신은 실속 있게 살아본 적이 없다는 진실의 반증이다. 

[본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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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비스에 속하는 직종에서 일을 하기에 손님을 대하는 일이 많은데, 

가끔 타협을 모르는 손님들이 있다. 분명 사전에 고지를 해드리고 몇번이나 확인을

요구함에도 불구하고 나중에 물건이 완성되고 나서야 '그건 여기서 제.대.로. 확인을

해줬어야죠!' 라며 막무가내로 상대에게 잘못을 미루는 것이다.

최근엔 그래서 마지막으로 컨펀을 받을 때에는 이번 확정 이후 일어나는 문제에

대해서는 책임지지 않기에 최종 확인 한번 더 부탁드린다라고 말씀을 드리고 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종종 그런 손님을 마주하곤한다.

나도 어딘가에서 누군가에게 실속없이 행동했던 것은 아닌가 반성해보게 된다.

나르시시즘이 부정적 이미지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지만 결국 나르시시즘은

 '나를 사랑하는 태도'로서 얼마나 긍정적이고 좋은 방향으로 가꿔가는지가 관건인 

하나의 꽃나무와 같다. 메마른 가지가 될 수도, 여린 어린 가지가 될수도, 그리고

가시투성이 가지가 될수도 있다. 그럼에도 열심히 강해져서, 단단하고 매끈한

'나'라는 본체를 지탱해줄 한그루의 어엿한 나무가 되는 것이 가장 중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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