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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스타 탐정 마환 - 평생도의 비밀
양시명 지음 / 몽실북스 / 2020년 8월
평점 :
절판
평생도, 사람이 태어나 자라며 겪는 인생의 일들을 아름답게 그려낸 그림이라지만 어디까지나 사대부에게만 허락된 그림이었다. 신분에 귀천이 있던 시절 그림 하나에도 신분이 있었던 것이다.
청년 환과 귀신 할이 운영하는 카페 '할의 커피맛'에 어느날 한 사내가 찾아와 탐정 의뢰를 맡긴다. 딱히 탐정이고 싶은 마음이 없는 환은 귀찮은 듯 거절해보려 하지만 귀신 할은 이 의뢰에 지대한 관심을 가진다.
의뢰는 노비가 가졌다는 평생도에 관해 알아봐 줄 것이었고 환은 마지 못해 의뢰를 받아들여 평생도에 관해 조사를 시작한다. 그러나 사대부 양반에게만 있는 것이 당연한 평생도이기에 '노비'의 평생도를 찾는 일은 좀처럼 쉽지가 않다. 노비가 지닌 평생도가 웬말이냐 그런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럴수록 환의 평생도에 대한 개인적인 궁금증도 커져간다. 그리고 평생도를 뒤쫒을수록 주변에 일어나는 의문의 살인사건까지.
한국적 미스터리를 잘 표현한 책이 아닌가 싶다. 특히 조선시대와 현재를 배경으로 넘나드는 스토리가 마음에 들었다. 개화기 시절, 여전히 신분제가 있음에도 시대가 점차 변하던 때에 사람들의 혼란은 얼마나 어지러웠을까.
백정 아버지 아래에서 태어나 손에 칼을 쥐어야 했지만 그것을 거부하고 새로운 변화의 세상을 살고 싶었던 남자와 그런 아들에게 따스한 말한마디 해주지 못하고 신분에 굴복할 것을 다그치던 아버지 말복. 세상을 떠난 아들에 대한 미안함과 애틋함으로 기여코 손에 넣은 아들의 평생도마저 결국은 신분제라는 굴레속 욕심에 의해 짓밟히고 빼앗겨버린 그 한을 어떻게 우리가 이해할 수 있을까. 내가 태어나기 불과 백년하고도 조금 더 지난 시대였음을 생각해보면 지금의 세상이 감사하게만 느껴진다.
예전에 아주 어릴때 티비에 우연히 봤던 드라마여서 정확한 제목은 기억하지 못하지만 나에겐 '백정의 딸'로 기억하는 드라마가 하나 있다. 백정의 딸로 태어나 인간취급 받지 못한 삶 속에서 여성 법조인이 된 한 여성의 이야기를 그린 드라마였는데 딱 바리스타탐정마환의 스토리에 나오는 평생도 배경과 비슷한 시대적 배경이다.
그 드라마를 기억하는 이유 중 하나는 상당히 충격적인 어떤 장면 때문이었다.
백정은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하던, 신분제 최하층에 있던 천민신분이었다고 한다. 대갓집 하인 흔히 말해 종이라 불리우는 그들조차도 백정을 우습게 여기고 하대했을 정도로 천한 신분으로 분류가 되어 있어 사람이 아닌 짐승 취급을 받았다고 한다. 당시에 백정의 아내 역을 맡았던 이휘향 배우가 낡은 한복을 입은 채 마을 사람들에게 뭇매를 맞으며 길에서 추행까지 당하는 장면이 나왔었다. 짐승이라 부르며 백정의 아내를 엎드리게 하고 백정의 아내를 말처럼 타며 길을 기어가게 만드는 사람들은 양반도 아닌 일반 백성들이었다. 그리고 짐승이라는 말을 서슴없이 하며 백정 아내의 치마를 들춰 희롱하고 추행하는 사내들 역시 일반 백성인 사내들이었다. 그리고 그런 어머니의 모습을 보며 울던 백정의 딸 역을 맡은 배우가 추상미였다. 바뀌어가는 시대에 맞춰 백정의 딸이지만 인권에 눈을 뜬 그 딸이 나중에 판사가 되며 끝난 것으로 어렴풋이 기억이 나는데 이휘향이 길거리에서 희롱당하고 폭행당하며 짐승처럼 울라는 말에 울음소리를 내던 것이 어린마음에도 충격이라 아직까지도 기억이 나는 모양이다. (사실 백정의 딸이 된게 판사인지 뭔지 정확하지는 않지만 백정의 딸이란 신분을 뛰어넘어 사회에 이름을 남기고 존경받는 사람이 되었던 것 같다)
그래서 책을 읽으며 '백정'이란 신분의 말복의 상황이 너무나 머릿속에 잘 그려졌고 그의 한이 어느 정도일지 가늠이 될 것만 같았다.한켠으로는 '있었을 법한 우리나라 신분제 속 슬픈 역사'이기도 해서 씁쓸함도 느껴진다.
말복의 '아들의 평생도' 는 신분제에 수긍하라고 다그쳤지만 사실은 아들의 안전과 행복만을 바라던 아버지가 결국은 아들이 바라던 희망에 대답한, 아들에게 띄우는 마음의 편지가 아니었을까. 아들이 자신과 같은 백정이 되길 바란 것은 아들처럼 세상을 변화를 바라보는 사람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에 혹여 아들이 다른이들에게 뭇매를 맞을까 겁이 나서 강하게 다그쳤는지도 모른다. '모난 돌이 정을 맞는다'는 말처럼 말복이 바라보는 아들은 아직은 이를 것 같은 시대를 꿈꾸는 위태로운 '모난 돌'로 보였을 것이다. 사람들 입방아에 올라 좋을 것이 없었고 그렇기에 더더욱 아들이 백정이란 신분에 순응하길 바랬을 것이다. 그렇게 허망하게 세상을 떠날 줄은 더더욱 몰랐기에..
그래서 백정이길 거부한 아들에게 대답할 수 있는 것은 사대부들이나 갖는다는 평생도였을지도 모른다.
현재의 한국과 과거의 한국을 아름답게 이어줄 드라마로 만들어져도 꽤 괜찮을 것 같은 스토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