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교사 안은영 (특별판)
정세랑 지음 / 민음사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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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인처럼 무언가가 머릿속에 박혀 있으면 선입견이 생기는것이 참 쉬운 것 같다.

'보건교사 안은영'. 제목만 생각해보고 82년생 김지영과 같은 소설류인가보다 생각했고,

요즘은 그런 소재의 책에 관심이 조금 덜해서 도서순위에 올라온 이 책을

다음으로 넘기며 가볍게 넘어갔었다.뭔가 읽을 책이 없나 살피면서도 말이다.


그러다 넷플릭스에 거론되는 것을 알게되면서 이 책의 장르가 

조금은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첫 페이지부터 드라마를 보듯 영화를 보듯 술술 넘어가는 것이 최근

읽고 싶어하던 류의 소설이란 직감이 들었다.

이미 주인공들이 낙점된 상태에서 누가 여주이고 누가 남주인지를 

알아서인지 읽으면서 내가 알던 여배우의 모습으로 상황 하나 하나가 그려졌다. 

꼭 여주인공이 아는 배우가 아니더라도 아마 판타지나 조금은 판타지가 가미된 드라마들을 본 사람들이라면 쉽게 상상하며 머릿속에 그릴 수 있을 것이다.


비비탄과 장난감 칼을 든 다소 특이한 보건교사.

내 학창시절에는 '양호선생님'에 관한 다소 특이한 괴소문들이 나돌았던 

기억이 나서인지 몰입하기에 좋았다.

가령 비오는날 인형을 안고 운다거나.... 머리가 아프다고 해도 머리에 빨간약을, 

배가 아프다고 해도 배에 빨간약을 발라준다거나.... 

어른으로서 생각하는 모습과는 동떨어진 소문들이 난무했다. 

다른 학교에서도 그럴까?


이 학교의 보건교사 안은영은 학생들 사이에서 내 어릴적 양호 선생님과 

조금은 비슷한 괴소문의 소유자다.

그리고 학교를 세운 할아버지의 유언으로 학교에서 교사로 일하는 남주인공 

인표도 어쩌면 우리내 학교에 한분쯤은 있음직한 선생님이 아닐까. 

그런 그들이 만들어내는 이야기는 소소한듯 소소하지 않은 이야기들이다.


폭력성과 경쟁심의 덩어리들, 묵은 반목과 불명예와 수치의 잔여물들이 

어두운 곳에 누워 있었다.


학교라는 공간을 음침하고 슬픔이 가득찬 공간으로 표현한다면

딱 이 말이 맞는 말이겠다는 생각이 든다.


여러 아이들이 여러가지 감정을 품고 한데 엮여 서로 밀고 당기는 아비규환의 공간.

사랑받는 학생이 있으면 핀잔받는 학생이 있고, 얌전한 학생이 있으면 엇나가서 

들끓은 황소처럼 부딪히는 학생들도 있다. 시험이라는 등급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고 그럼에도 한 곳에선 서로가 끈끈한 심장을 나누기도 한다. 

어린 아이들이 내뿜는 그 감정들 속에서 어른들의 사랑도 있고 무관심도 있다.

그것들이 만들어내는 어떠한 형태를, 나쁜 영향을 끼치는 어떠한 젤리들을 

퇴치하는 것이 바로 은영의 일이다.

뭐, 인표의 말을 들으면 그다지 영웅처럼 멋있는 자태는 아닌 모양이지만 말이다.

어쩌면 그 편이 더 은영스러운게 아닐까.


우리는 은영과는 조금 다르지만 은영처럼 보이지 않는 것들에 사로잡혀 살아간다.

내 안에 그 젤리들이 있다는 것도 안다. 이기심, 질투심, 외로움, 괴로움, 슬픔..

그것들은 따뜻하기보다 차갑고 날카로운 것들이 많지만 

그럼에도 때로는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이기심이 있기에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에게 선을 그을 용기가 생기고 

질투가 있기에 더 잘하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외로움을 알아야 사람간의 온기를 느낄수 있다. 

모든 것이 부정적이기만 한 것이 아닌 것이다.


내 안의 젤리를 말랑 말랑 나를 감싸는 보호막으로 만들지, 

나를 숨막히게 할 흉기로 만들지는 우리에게 달렸고 우리가 선택해야만 한다. 

은영이 해결해 줄수 없는 유일한 젤리는 바로 우리의 마음이니 말이다.


'도깨비'처럼 뭔가 현대적 배경에서 현실과는 조금 떨어진 판타지가 풍기는 

소설, 드라마를 원한다면 딱 맞을만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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