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멸일기 - 윤자영 장편소설
윤자영 지음 / 몽실북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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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민과 공승민이 한 학교에 존재한다.
같은 이름의 동급생이 친한 벗이 된다면 좋겠지만 현실에서는 그런 일이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 같은 이름인 이상 선생님들, 같은 동급생들에게 비교를 당하는 일이 허다하기에 같은 이름을 가진 인연 속에서도 좀처럼 친해지기는 어렵다. 나의 경우도 같은 이름임에도 우리학교의 학년 전체에서 뛰어난 공부 실력을 가진 동급생 덕분에 늘 비교를 당했다. 그리고 신체적으로도 뛰어난 그 친구의 이름 앞에는 '큰'자가 붙고 내 이름 앞에는 '작은'이 붙었다. 같은 이름 같은 교실이지만 그 친구와 나의 공간, 온도, 분위기는 전혀 달랐다. 같은 공간에서 다른 세상을 살았다. 그래도 다행이었다 그 친구가 공승민 같은 친구가 아니었고, 착하고 얌전한 모범생이었으니 말이다.
9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냈지만 그 당시에도 학교폭력은 있었다. 없어지기는 커녕 더 간악해지고 사악해진 수법으로 진화했다. 참 슬픈 일이다.
초등학교시절 반에서 두 여자아이에게 괴롭힘 당한 적이 있다. 다른이들에겐 착하고 공부도 열심히 하는 아이들이었지만 이상하게도 몰래 몰래 나를 괴롭혔다. 그때의 교훈이었던지 중학교 때는 상당히 입이 거칠어 주변에서 나를 겁낼 정도였다.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것을 알기에 어린 마음에 중학교에서는 당하고 싶지 않았던 모양이다. 아무도 건들지 않아 나름 평온하게 나의 세계에서 나의 온도로 학교를 잘 다녔다. 그리고 중3 어느날, 정신을 차려보니 내 뒷자리에 앉은 초등학교 동창인 반친구가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는 걸 인지했다.
식은땀이 났다. 도와줬다가 초등학교때 처럼 괴롭힘을 당하면 어쩌나.. 야간자율학습(당시엔 중학교때도 8시까지 야간학습을 했고 도시락을 두개씩 싸서 다녔다) 시간내내 고민하다 공책을 찢어 쪽지를 써 보냈다. '주변에 관심이 없어 몰랐는데 너의 상황이 눈에 들어왔다고, 힘내라고, 모르고 있었다지만 무관심해서 미안했다고 해줄수 있는건 없지만 힘이된다면 점심 저녁 식사 시간에 같이 밥먹어도 되겠냐고' 잠시 뒤에 친구의 울음소리가 들려 화들짝 놀랐었다.
그때 확실하게 사람을 괴롭히는것도 방관해서도 안된다는 것을 느꼈다.
내가 괴롭힘을 당했기에 남을 괴롭히는게 나쁘다고 인식하는게 아니다. 상식같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대다수의 경험자들은 똑같은 그 고통을 다시 느끼고 싶지 않기에 되려 가해자의 선에 보조를 맞춘다. 폭력이 나쁘지만 내가 경험한바로 그 고통이 어떤지를 알기에 폭력에 맞서기보다 폭력의 선에 은근슬쩍 맞춘다. 그게 아니면 나와는 상관 없는 일이라며 무시한다. 관여하는거 자체를 꺼린다
내가 느꼈던 고통을 겪는 다른 누군가를 위로했을 때, 그래서 그 상대가 온몸으로 나 아팠다고 무너지듯 기대어 올 때, 그때 사람은 폭력의 무게를 더 잘 느끼고 깨우치는 것 같다.
내 작은 쪽지가 그 친구에게 유일한 위로였을거란 생각에 지금도 가끔 깊은 어떤 감정을 느끼게된다. 미안함과 고마움과 안쓰러움과 타인들의 비겁함에 대한 미움 등 여러가지의 감정 덩어리다.
(지금에서야 느낀거지만 그 친구가 하루도 빠짐없이 학교를 나온게 신기할 정도이고 어쩌면 집안의 분위기도 무서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고통의 교실을 매일 다녔을 것 같다)
이 소설에 나온 이승민은 피해자이지만 대외적으로는 가해자다.
공승민은 가해자이지만 피해자다. 그 사실을 두사람만이 알고 있다.
고등학교에 올라와서도 이어진 공승민의 괴롭힘.
이승민은 집에서 조차도 괴롭다. 그래서 자신을 힘들게 하는 두사람 자신의 아버지와 공승민을 한꺼번에 없앨 방법을 세운다.
그리고 실제로 승민의 계획대로 공승민이 살해된다.
소설을 전반적으로 무리없이 쭉 읽히는 가독성을 가지고 있다.
후반부로 갈수록 사람, 그 중에서도 어른이란 존재들의 추악함을 보여준다. 교사라는 모범이 되야할 인물들의 그림자에 숨어있는 (일부의)어른이라는 추악함. 소설같으면서도 어딘가에 있을 것 같은 인물들이란 점이 이미 내가 어른의 추악함을 너무 많이 알고 있는걸까.
우리는 얼마나 우리의 부끄러움을 인지하고 살고 있을까.
(이)승민이가 그랬듯 우리가 우리자신에게 죄를 묻는다면 우리는 승민이보다 떳떳할 수 있을까. (이)승민이는 자신의 죄를 깨달아 자살로서 스스로에게 어쩌면 세례를 내리게 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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