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밤, 나 혼자 만나는 나에게 - 김소울 박사의 미술심리치료 에세이
김소울 지음 / 일리 / 2018년 9월
평점 :
절판


이 책을 받기 전,후로 나는 상당히 정신적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었다. 
직장 상사와의 마찰과 회사 운영의 불안함으로 퇴직을 고민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 곳에서 꽤 오래 일을 했기에 당장 변화가 찾아온다는 데에 두려움이 컸다. 
퇴사 의사를 밝히고 출근을 하면서 그저 회사를 관둘 뿐인데 나의 나이, 환경 등을 떠올리며 마치 내 미래가 모두 끝난 듯이 우울해했다. 
이직의 걱정, 당장의 생활, 그리고 가족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마치 앞뒤 출구가 모두 무너진 다리의 중앙에서 울고 있는 기분이었다. 
주변 친구들의 격려와 위로 그리고 책을 통해 다시금 조금씩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  
책 속에 나오는 다른 이들의 상황들을 살펴보며 어쩜 사람들은 다 비슷하구나 큰 맥락의 고통들은 보통 같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두 나의 이야기 같았다.
혼자가 아니구나.. 모두 웃고 있는 중에 혼자 울고 있는 것만은 아니구나. 다들 힘들어도 자신을 격려해가며 이겨내가고 있는 것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감점사고란 타당한 근거 없이 자기 자신을 깎아내리고 비하하는 부정적 사고를 의미한다. 그리고 이런 감점사고는 우울증 내담자들에게쉽게 찾아볼 수 있다. 

나는 이 감점사고란 것을 많이 하는 분류의 사람이다. 그렇기에 늘 일상속에서 수시로 우울감을 느끼고 그 기분에 사로잡혀 불안증세를 보이고는 한다. 
부정적인 생각은 미래의 불확실함을 떠올리게 하고 과거를 후회하게 한다. 그리고 그것들은 현재의 불안을 야기해 공포를 준다. 그러다보면 '더이상 살아도 의미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다시 꼬리를 물곤한다. 
하지만 이런 감점사고는 갖지 않는 사람이 이해하는데는 한계가 있어서 늘 주변사람과 부딪히게 되곤했다. 그렇게 점점 스스로가 떠밀려 궁지로 들어가는 모양이 된다. 
그런데 내가 겪는 경우는 그런 상황에서도 끝없이 희망을 기대한다는 점이다. 나의 경우는 그 희망이 지인들이다. 
우울감에 젖거나 모든것을 놓고 싶을 때면 친하다고 생각하는 친구에게 전화를 건다. 그렇게 힘든 것들을 토해내고 위로를 받다보면 아무것도 남은 것이 없는 것은 아니다라는 작은 희망을 손에 쥔다. 
그것이 또 버티는 시간이 되어준다. 
작가이자 심리치료박사인 책의 저자를 찾는 이들 역시 그러한 마음으로 마지막 한조각의 희망을 잡기 위해 찾아오는 지도 모른다. 

아플 때는 의사를 찾는다. 마음이 아픈 이들은 의사인 '사람'을 찾는다. 그리고 작가는 미술, 사람이 손으로 일구는 아름다운 예술로 사람을 치료한다. 

당장 심리를 상담받기가 부담스러운 사람들에겐 책 속에 나와있는 방법들을 혼자서 해보는 것도 나름의 회복시간이 될 것 같아서 좋아보인다. 
치유를 하기 위해선 전문가와의 담소가 있어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겠지만 사실 선뜻 가볍게 방문을 하게 되진 않는다. 
나 역시 작년 회사의 문제로 경찰조사를 받으며 꽤나 맘고생을 했는데 그로 인해 수면장애가 생겼었지만 두려운 마음에 심리상담의 정신과병원을 망설였었다. 
아파서 병원에 가는 것이 당연한데도 정신적인 치료를 요하는 정신과나 상담소는 어쩐지 망설이게 된다 어쩌면 사람들이 나를 평범하지 못한 사람으로 생각할까봐 하는 불안감 때문일 것이다. 
나의 경우는 의사와의 상담보다는 대기하던 중에 만난 다른 환자분과의 담소가 위로가 되었던 기억이 선명하게 남아있다. (지금 지나고나서 생각해보면 웃음이 나올 장면이다 대기실에 앉아 환자가 환자를 상담해주고 다독여 준다. 게다가 그 아주머니의 의상은 어디로보나 예술 계통에 계신 분의 화려한 복장이셨다. 지금도 기억난다 그 갈색의 화려한 개량한복과 치렁치렁 뒤로 나부끼는 얇은 드레스같은 조끼.)
나이가 좀 있으신 아주머니셨는데 가만히 멍하게 앉아있는 나를 바라보며 괜찮아. 상담받고 나면 한결 편안해질거야. 아가씨 기운내 라며 선뜻 자신이 병원에 다니게 된 이야기를 해주셨었다. 
그분의 이야기를 듣다가 내 이야기를 조금 하다가 그렇게 앉아서 울고 있으니 다 좋아질거야. 참지 말고 울어버려. 그래야 다시 웃지 라는 이야기를 해주셨다. 
그 후 아픔은 아파본 사람만이 제대로 이해하고 위로해줄 수 있겠구나라는 믿음이 생겼다. 아파도 그 아픔이 누군가를 위로해줄 수 있는 미래의 재산이 된다는 것은 꽤나 희망적이라고 생각한다. 
미술은 이러한 일의 작은 부가적인 방법이다. 내가 주체가 되어 나의 아픔을 꺼내어 하나 하나 그려보고 그 그림을 다시 바라보면서 아픔을 이해한다면 어디를 어떻게 치유해야 하는지 조금은 선명해질 것이다.  그림을 그리지 못해도 상관없고 그리는 것이 싫다면 그저 누군가의 그림을 보는 거만으로도 좋을 것이다. 

심리치료와 미술이라고 하니 불연듯 떠오르는 일화가 있다. 
어떤 카페에 간 적이 있는데 그 카페는 공방을 하는 분들에게 자리를 대여해주는 시스템도 겸하고 있다. 그리고 그 곳에는 여러가지 미술 작품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한 손님이 어떤 작품을 보고는 작가를 소개해달라고 했단다. 알고보니 전시되어 있던 그림을 구매하려했던 모양이다. 목각을 조각한 조각화였는데 그 속에서 어미 '모'자가 한자로 조각되어 있고 아이러니하게도 액자를 잘못 놓아서 뒤집혀 있었단다.  
그래서 주변에서는 이건 뭘 뜻하는거지? 라는 이야기도 있었나보다.  
그런데 그 손님은 보자마자 어미 모 그 단어를 찾아냈고 눈물이 났단다. 바로 얼마전에 어머니가 돌아가신 것이다. 왜인지 그 조각품은 자신에게 와야 하다는 생각이 들어 부랴 부랴 작가를 알려달라고 해 구매를 하고 싶다고 했던 모양이다. 
그 작가도 어머니를 생각해서 조각품에 어미 모를 세겨 넣었을 것이다. 아픔을 담은 미술이 아픔을 만나 서로를 위로한 순간이 아니었을까. 

사람은 행복하게 살기 위해 희망을 꿈꾸고, 그 희망으로 인해 마음의 통증을 앓는다. 그 통증속에서도 희망을 놓지 않기에 치유를 바라고 또한 치유를 해나간다. 
내가 서서히 안정을 되찾아가듯 누군가의 소리없는 절규 속에도 빛이 들어차길 바란다.  


잊지말자 
나답게 사는 것만큼 행복한 것은 없다. 
마음의 소리는 항상 나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을 알려준다. 
그동안 무심했던 마음의 소리에 오늘 하루만큼은 귀 기울이자. 


[탐서가 서평이벤트 & 출판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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