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무해한 사람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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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무해한 사람]의 첫 시작인 단편 [그 여름]은 작년 2017 젊은작가상수상작을 통해 이미 만난 적이 있던 단편이었다.

그럼에도 쉬이 넘기지 못하고 차근 차근 처음 읽을때와 같은 속도로 읽어내려갔다. 읽어가면서도 알고 있다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이 장면, 이 대사, 이 사람들을 나는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조바심내지 않고 쉬이 넘기지 않고 차근 차근 그들을 쫒아 읽어내려가면서 세삼 최은영이란 작가를 생각하게 됐다.

이미 한번 읽은 이야기들임에도 다시 읽었을 때 지루함 없이 따라가게 되는 글을 쓰는, 미소가 예쁜 작가. 독자인 나에게 최은영은 그런 작가로 다가왔다.

그녀의 이전 단편집 쇼코의 미소를 읽었을 때도 그녀의 문체는 어딘가 따스하고 조심스럽고 그럼에도 순수하게 해맑다는 생각을 했었다.

내게 무해한 사람 속에서는 일상적이면서도 눈길이 멈추는 문장들이 꽤 있어서 놀라웠다.

아름답게 꾸며진 것이 아닌 일상 속에서 쓰는 문장같은데 쉬이 눈길이 떠나지 못하고 멤도는 그런 문장들이 있다.


그런 밤이 있었다. 사람에게 기대고 싶은 밤.

나를 오해하고 조롱하고 비난하고 이용할지도 모를, 그리하여 나를 낙담하게 하고 상처 입힐 수 있는 사람이라는 피조물에게 나의 마음을 열어 보여주고 싶은 밤이 있었다.

사람에게 이야기해서만 구할 수 있는 마음이 존재하는지도 모른다고 나의 신에게 조용히 털어 놓았던 밤이 있었다.


사람에게 이야기해서만 구할 수 있는 마음, 그 마음은 뭘까.

아마도 그것은 살아서 함께하는 생명에 대한 온기인지도 모른다. 단순히 체온이 아닌 마음과 마음으로 느끼는 온기로서 말이다. 마음과 마음으로 이어져 기대는 사람은 자신에게 있어 가장 무해한 사람으로 느껴진다. 사람 대 사람이라고 해서 쉬이 기댈 수 있는 것은 아니기에.

나는 남에게 무해한 사람일까. 그리고..나는 나에게 무해한 사람일까. 나조차 나 자신을 기대고 위로하기 어려운 이유는 무얼까.


나는 무해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고통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사람이 주는 고통이 얼마나 파괴적인지 몸으로 느꼈으니까.

그러나 그랬을까, 내가.


끝 단락에 있는 작가의 말에서 최은영작가는 이와 같은 말을 했다.

아마 그런 마음이 이 소설을 있게 한 것은 아닐까. 무해한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럼에도 뜻하건 뜻하지 않건 남에게 해를 끼치게 되는 경우가 있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이 몸 어딘가에 도사리며 웅크린채 둥지를 트는 날이 있다. 타인에게든..타인에게가 아니면 자신에게라도 말이다.


공무에게는 두 손이 있다. 그리고 그 손을 잡아줄 사람은 나와 모래, 둘뿐이다.


큰일을 겪는 이들에게 가장 많이 하는 것이 손을 잡아주는 일이다.

외로움 속에 내던져져있을 때 자신의 손에 감겼던 외로움의 서늘함을 너무나도 잘 알기에 우리는 덥썩 손부터 잡아 주는지도 모른다. 손안에 감겼던 외로움을 아니까 누군가의 손바닥은 외롭지 말라고 서늘하지 말라고 손부터 잡아 서로 꼬옥 움켜잡는지도 모른다.

 

수이의 거칠었을 손을, 여자아이로 태어났다는 이유로 너무나 외롭고 두려웠을 효진이의 어린 손을, 홀로 밤공기를 맞으며 세월을 견뎌내는 별처럼 쓸쓸한 공무씨의 손을 가만히 잡아주고 싶은 시간들이었다.

 

내게 무해한 사람들에게 나역시 그들에게 무해하지 않다고 서로의 아픔을 꼭 안아줄 수 있는 삶이라면 좋겠다.

 

차갑고 시리던 내 두 손이 따스할 때, 적어도 내 손을 잡아준 이들의 남은 한손이 외롭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바라게되는 그런 시간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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