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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슬픔이 아름다워 나는 편지를 썼다
와카마쓰 에이스케 지음, 나지윤 옮김 / 예문아카이브 / 2018년 6월
평점 :
절판
비가 내려 촉촉하게 가라앉은 날, 조용하고 조금은 서늘해진 공기 속에서 유일하게 따스한 차한잔을 놓고 누군가가 보낸 편지를 천천히 읽어내린다면 이 책의 분위기와 닮아질까요?
너의 슬픔이 아름다워 나는 편지를 썼다.
제목부터 어쩐지 고요한 침묵 속에서 누군가의 슬픈 등을 가만히 어루만지는 기분입니다.
누군가의 슬픔을 아름답다고 칭한다면 예의에 무척이나 어긋나겠지만 이 책 속에 들어있는 슬픔들 중에는 정말 살아가는 슬픔의 아름다움을 잘 보여주는 예시들이 있어서 죄송스럽게도 어울리는 제목이란 생각이 듭니다.
갑작스런 죽음이나 오랜 병마 끝에 다가온 죽음은 당사자와 유족들에게 어느쪽이든 무겁고 슬픈 일임은 틀림없습니다. 오랜 병마라고 해서 덜 슬프다거나 덜 힘든 것이 아닙니다.
사별이란 갑자기든 오랜 병마를 통해서든 영엉 만나지 못하는 서러운 이별이란 의미이니까요.
초등학생 시절 갑작스럽게 겪은 이별은 어린아이여서 그 무게를 잘 느끼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다시는 만나지 못한다는 그 한문장으로 서럽고 서러워 눈물을 쏟아냈었고, 나이가 들어 이별을 몇 번이나 겪었음에도 아직도 영영 다시는 우연이라도 만나지 못한다는 생각에 또 서럽고 서러워 울게 됩니다.
슬픔을 슬퍼하되 슬픔의 강속에 깊이 가라앉기보다는 슬픔을 받아들이고 앞을 향해 걸어가야 한다는 당부가 담긴 편지들이 아닌가 합니다.
책에 나온 이야기 중, 미나마타병에 걸린 사카모토 기요코의 이야기는 특히나 기억에 남습니다. 짓소라는 기업이 유기 수은을 방출해 환경이 오염되면서 기요코를 포함한 주민들이 신체 변형이 생기는 병에 걸렸습니다. 사지가 뒤틀리는 병으로 밖에도 나가지 못하는 기요코는 벚꽃 잎이 흩날리는 날, 툇마루에 굴러 떨어져 바닥을 기면서도 떨어진 꽃잎을 주으려 했습니다. 그 해에 기요코는 자신의 온전치 못한 몸을 떠나 자유로워졌지요.
그 아이는 아무 원망도 안 했어요. 꽃다운 나이에 그저 벚꽃 잎 하나 줍는게 소원이었어요.
그래서 당신에게 한가지 부탁을 드리고 싶어요. 짓소(가해기업) 사람들에게 편지를 써주시겠어요?
아니 세상 모든사람들에게 써주세요. 벚꽃 피는 계절이 오면, 기요코를 위해 꽃잎 하나 주워 달라고요. 꽃을 공양하는 마음으로요.
슬픔을 견뎌낸 사랑이 얼마나 대단한지, 아직 슬픔을 이겨내느라 마음을 다치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어쩌면 기요코는 벚꽃잎 가득 품은 손으로 응원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슬픔의 뒤에는 절망과 고통이란 단어가 단짝처럼 붙을지도 모르지만, 슬픔의 뒤에 무슨 단어가 따라 붙을지는 누구도 단정지어선 안됩니다.. 어떤이들에겐 슬픔 뒤에 찬란함이 붙을지도 모릅니다.
슬픔에는 슬픔을 구원할 힘이 있다.
오늘 그들의 슬픔에 구원을 빚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