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마네치를 위하여 - 제2회 황산벌청년문학상 수상작
조남주 지음 / 은행나무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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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어가며 82년생 김지영과 비슷하다고 생각은 했지만 사실 작가 이름을 기억하고 있지 않았기에 동일 작가의 소설이란 걸 중반쯤에 알게 되었습니다. 

저에겐 조남주라는 작가보다 82년생 김지영이 더 또렷하게 저장되어 있었는데, 결국 조남주라는 작가를 머릿속에 저장하게 되었네요. 

82년생 김지영에서도 그러했지만 조남주 작가, 그녀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참 나의 어린 시절의 이야기들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고마니 곁에서 찬찬히 그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88올림픽을 계기로 친구들과 체조를 연습하고 그 참에 무용학원을 다니게 된 고마니. 가난한 s동네에 살면서 자식에게 무엇하나 해준게 없어 자식이 원하는 체조라도 시키고 싶어 무리하게 체조를 할 수 있는 사립학교에 전학을 시킨 어머니의 마음은 어떠했을지

그리고 가난한 살림에 쓸데없는 일을 벌인다며 펄펄뛰면서도 결국 전학을 보내는대에 끝까지 반대하지 못한 아버지의 심정까지.. 저 역시 학창시절 유난히도 친구들이 부러웠던 또 한명의 고마니였습니다.

그 시절 고마니들의 마음은 다 비슷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80,90년대에는 시대가 급변하는 시기와 맞물려 IMF까지 겹쳐 말그대로 다사다난했던 시대였던 것 같습니다. 

한겨울 눈이 소복히 쌓인 거리에 쌓여있던, 타버려 살색이 되어버린 연탄들. 원통의 배출구를 통해 품어져 나오던 하얀 연탄 연기들의 매캐함. 난롯가에 앉아 얼었던 몸을 녹일때의 그 노곤함. 볶은김치의 국물이 흘러 붉게 물든 도시락의 흰 쌀밥과 부러웠던 친구의 돈까스 반찬 등

가난했지만 행복했다라는 가삿말처럼 지난 것들은 모두 추억이 되나봅니다. 발이 꽁꽁 얼어 그토록 추웠던 어린날의 겨울들이 지금보다 훨씬 즐거웠던 것 같으니까요.


딱히 잘나지도, 그렇다고 꿈이 없었던 것도 아닌 시절을 거쳐 고만 고만한 잘나지 못한 일상을 보내는 많은 고마니들. 우리 그렇게 살았지만, 딱히 어른이 되어서도 잘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우리 잘 살아가고 있잖아라는 쓸쓸한 위로를 전하는 소설이 아닌가 합니다.



크고 작은 포기와 실패와 거절 이후에도 삶은 계속되었다. 소설이 끝나고 영화가 끝나듯 인생은 멈추어주지 않았고, 나는 눈앞에 놓인 길고 긴 시간을 건너뛰거나 내려버리지 못하고 일분 일 초 또박 또박 살아내야 했다.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 사소한 태도들이 모여 삶을 만들고, 그 삶들이 모여 세상이 된다.

진지한 표정과 결연한 눈빛들. 누구도 행복하지 않지만 누구도 우울하지 않다. 다만 그들의 시간을 열심히 살고 있을 뿐이다.



무섭게 변하는 세상에서도 변하지 않는 것. 바로 성실한 사람들은 어디서나 성실하고, 그럼에도 가난한 사람들은 언제나 가난하다는 사실이다.


부모님 세대 때부터 허리띠 졸라매며 부지런히 숨가프게 살았는데 그 중에는 잘된 이들도 있을 것이고 잘 되다 어려워진 이들도 있을 것이고 꾸준히 어려운 이들도 있을겁니다.

그렇다고 그네들의 삶에 너는 몇점 너는 몇점 점수를 매길 수는 없습니다.

나미야 잡화점이란 소설에서 잡화점 주인 나미야씨는 자신도 100점을 맡고 싶다는 학생의 편지에 자기 자신을 주제로 시험을 치면 100점을 받을 수 있다고 조언해줍니다.

그것처럼 삶이란 비록 가난해도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는 점에서 자신에게는 100점인지도 모릅니다.

어린 날을 회상하며 엄마와 이런 저런 예전 가난의 이야기를 나누었을 때 엄마는 "정말 없이 살았고 늘 부족했겠지만 그게 나에겐 최선을 다한거였다."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사실 굉장히 충격을 받았습니다.

생각해보면 학창시절이 정말 힘들었지만 그럼에도 엄마에겐 당시에 최선을 다한 선택이였고 최선을 다해 자식을 키웠던 것이겠죠. 

마니의 엄마처럼 자식이 원하는거 해주고 싶으셨을테고 또 남들보기에도 번듯하게 잘 살고 싶으셨을테고 그러다보니 말도 안되는 오기를 부리기도 하셨을 겁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엄마는 엄마로서 박수를 받아야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프고 슬프고 두려운 그런 어려운 난제들을 엄마의 방식대로 잘 풀어내며 살아오셨을테니까요.

 


최초의 10점 만점을 받은 체조선수 코마네치처럼 체조선수가 되고 싶었던 고마니. 그리고 그처럼 많은 꿈들을 꾸며 달려왔을 우리들. 

자식을 위해 없는 살림에 무리해서라도 체조를 배우게 해주고 싶었던, 마니의 엄마와 같은 마음이셨을 우리네 어머니들.

막상 현실 속에서는 여러가지 어려움을 겪고 미국으로 망명까지 해야 했을, 그래서 고마니가 조금은 실망한 고마니의 영웅 코마네치처럼 우리들 모두 이상과 현실의 차이 속에서 어려워도 하루 하루 평행대 위에서 걸음을 내딪습니다.

아슬아슬한 꿈이 흔들릴 때도, 자신이 흔들릴 때도 먼 과거의 나는 언제고 나를 응원할테니 걱정마세요, 괜찮습니다. 쉽지 않은 평균대에서 균형을 잡고 나아가기 위해서는 흔들릴 수 밖에없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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