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의 얼굴 사랑의 얼굴
김얀 지음 / 달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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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얼굴 사랑의 얼굴


' ㄱㅣㅁㅇㅑㄴ '

​-


지인의 추천으로 인해 읽게 된 책.

내가 아는 형에게 질문했다.


"형 이 책은 어때요?"


라는 물음에


"음...뭐랄까, 표현이 직설적이고 조금 야하긴 한데 재밌고.. 여자 이석원! 이라고 하면 되려나..?"

라는 대답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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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는 동안에 내 머릿속엔 '여자 이석원'이라는 말이 맴돌았다.


보통의 존재, 라는 책을 인상깊게 읽었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일까, 이 책은 나에게 조금 더 자연스럽고

친근하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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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중간중간에 삽입된 사진들은 마치

작가가 살던 동네의 모습을 그대로 옮겨둔 것 같은 느낌마저 받았다.

사진과 글이 하나가 되어

독자에게 다가갔을 때에

그 힘은 맞지 않고도 눈물을 흐르게 할 수 있는 정도의

강한 무언가를 지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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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어린시절 미조리에 관한 기억들을 풀어내며

조용하고 담담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그 작은 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되고, 상세하지는 않지만

세심한 배려 때문일까, 느낌적인 비유를 통해

그곳에 가보지 않아도 그곳이 어떤 느낌을 가진 동네인지

어떤 기운을 풍기는 마을인지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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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살아가면서 우연히 마주치는 인연들과 관계를 맺고

그속에서 느꼈던 사랑의 아픔과 행복을 동시에 그리고 따로 전달한다.

글을 읽으면서 심장이 두근거리고 쿵쾅거리는 느낌을 자주 받았다.


내가 겁쟁이어서 그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반대로 작가가 너무 용감해서 그런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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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_____you,


​사랑이라는 말이 없어도 충분한 사이,

나는 우리가 그렇게 되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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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말하는 아이러브유, 나는 너를 사랑해.

그 중간의 사랑이라는 말이 빠져도,

나와 너,

나 그리고 너,

나, 너

그 둘만으로도 충분한 사이

더이상 무엇이 필요하지 않은 관계.


이 구절은 나를 다시 돌아보게했다.

사랑을 원하고 사랑을 바라면서

사랑속에서 상처받고 치유받는 모든 관계속에서

어쩌면 사랑때문에 시작됐고

사랑때문에 끝이나는 모든 순간속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건 어쩌면 사랑이 아니라

그저 온전한 너와 나

그 둘의 존재만으로도 가득해질 수 있지 않을까,

아득해질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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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만 알고있던 작가의 글을 읽고 난 후에

항상 작가를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된다.

궁금하고, 신기하고, 또 궁금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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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언젠가, 많이 읽고 쓰는 사람이 되어

내게 궁금한 것을 물어오는 이가 있다면

솔직하고, 솔직하고, 솔직하게

이야기 해 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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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는 사람

배우고 전하는 사람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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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ㅣㅁㅇㅑㄴ

 

당신은

그런 사람들을 위해 필요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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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위로할 것 - 180 Days in Snow Lands
김동영 지음 / 달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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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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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위로할 것'

이 책은, 수년 전 어느 날 내게 다가온 책,
어쩌면 내가 직접 찾아나선 책.

생선,이라는 작가를 알게 되었고
그가 생각을 선물하는 남자라는 의미로
FISH MAN, 이라는 이름을 사용했을 때

나도 그때부터 사람들에게 생각을 선물하는 사람이 되고싶어졌다.
그래서 내가 태어나 처음 샀던 기타 가방에 FISH MAN이라는 글귀와 함께
잘 그리지도 못하는 물고기 그림을 그려 넣었고
일기를 쓰고 맨 마지막 오른쪽 아래 귀퉁이에는
휘날리는 글씨체로 피시맨, 생선남. 이라는 글귀를 새겨넣었다.

어쨌든, 당신덕분에
이 세상에 아이슬란드라는 춥고 외로워보이지만
그 속에는 따뜻한 온기를 품고있는
나라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되었고
그곳에서의 삶과 시간과 순간들이
글과 사진들로 기록되어
꿈속에서만 만날 수 있을 것 같던 그곳을
꿈꾸게 하였다.
매일 매순간 그곳에 내 두발이 닿는 꿈을 꾸고있으며
이루기 위해 한 걸음씩 앞으로 전진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 곳에 기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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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가 멀리 가기 위해서는 많은 기름을 소비해야 하네.
멀리 보기 위해서는
가진 걸 끊임없이 소비해야 하고 대가가 필요한 거지.
자네 같은 젊은이들한테 필요한 건 불안이라는 연료라네.

언제 읽어보아도 좋은 글.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에게 진심을 담아 충고 혹은 조언을 했을 땐
그 마음이 다른 사람에게까지 스며드는 것 같다는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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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라는 건 기억으로 살아가는 것일 테고 꾸준히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사랑한 거나 마찬가지일 테니깐.
우리가 함께한 순간은 세월이 될 거야.
지금에도 또 먼 훗날에도 서로에게 힘이 되는 건 지나간 시간들일 거야.
넌 믿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기억이 많을수록 사람은 잘 살게 돼 있다는 걸 나는 믿어.
나이가 들면서는 현실을 지탱하는 저울보다 기억을 지탱하는 저울이 말을 더 잘 듣게 돼 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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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라는 단어를 입 안에 굴리고 있으면, 데이트 전에 애써 만진 머리를 한순간
헝클어뜨리며 스치는 한 줄기 상쾌한 바람 같은 게, 마음 한구석에서 숨길 수 없는 작은 떨림 같은 게 느껴집니다.
여행은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연인이고 동경이며 로망인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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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순간속으로 빨려들어간 페이지.
잠시 눈을 감았고, 컴컴한 어둠속에서 초록색 오로라를 본 것만 같은 기분.
내가 만나게 될 초록색 빛은 어떤 모양새를 하고 있을지.
언제 어디서 누구와 어떻게 만나게 될 지.

숨이 너무 - 찬 - 나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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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위로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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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에게 여행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음........ 우리가 여행에서 얻는 건 기념사진이나 기념품이 아니라,
어쩌면 수레바퀴처럼 끊임없이 반복되는 우리의 여생을 버티게 해줄 추억의 보관함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떤가요?
이 정도면 당신의 질문에 답이 되었을까요?
어쩌면 제가 나이가 더 들고 더 많은 곳을 여행하다보면 여행을 하는 의미를 새롭게 발견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당분간 저의 답은 바로 이것입니다.
비록 1년반이나 늦었지만 당신 질문에 답을 할 수 있어 기분이 좋습니다.
당신도 이런 제 이메일을 기쁜 마음으로 받아보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물론 당신만의 여행도 의미도 찾길 바랍니다.
그럼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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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슬란드를 꿈꾸는 모든 이들에게 바치는 글.
당신이 그토록 바라고 원하는 그곳에 가닿길 바란다면,
주저 말고 떠나야 한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그리 길지도, 많지도 않고
당신의 끝은 항상 가까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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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슬란드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나라 중 하나다.
아이슬란드는 이름만으로도 특별하지만, 그렇다고 일 년에 크리스마스가 두 번 있거나
UFO를 자주 볼 수 잇는 그런 미스터리한 곳은 아니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그렇게 멀지 않은 곳에 있다.
아이슬란드를 특별하게 만드는 건 화산 지형이나 하루에 수십 번씩 바뀌는 날씨, 북극고래,
빙하가 녹아 만든 거대한 피요르드, 오로라, 손으로 직접 짠 아이슬란드 스타일의 울 스웨터,
그리고 여름 한철 하루 종일 해가 지지 않는 미드나잇 선셋과, 겨울철의 다크 데이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에게 아이슬란드는 그뿐만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바람이 시작되는 곳이었고,
운율은 불규칙하지만 소리내서 읽으면 너무도 아름다운 시 같은 곳이었고,
잠들지 않아도 꿈을 꿀 수 있는 곳이었고, 불어오는 바람에 내가 가진 모든 것이 날아가버리는 곳이었고,
태초의 지구의 모습과 종말 후의 지구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했고,
우리가 아는 시간이라는 개념에 포함시킬 수 없는 시간 밖의 텅 빈 공간이었다.
그곳에서 나는 여러 생을 산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으며,
북극 찬바람을 맞아 두 볼이 빨개진 수줍은 여인의 미소처럼 오래오래 따뜻했던 것이다.
그곳은 내 여행의 끝, 종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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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혼자 웃고 싶은 오후
장석주 지음 / 달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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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혼자 웃고 싶은 오후 - 장석주>


제목부터 참 좋다.

가만히 혼자 웃고 싶은 오후,라니.

오직 오후의 시간에만 읽어야 할 것 같기도 하다가도

페이지를 넘길수록 멈출 수 없이

자꾸자꾸 손이가는 새우깡처럼

이 책도 그러하다는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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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집 이라는 말을 언제부터 좋아하게 된 건지

확실히 기억이 나질 않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사람냄새나는, 사람이야기가 가득한

사람을 좋아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이 쓴 글은

언제나 재미있고, 배울 게 많고, 또 옳다고 생각한다.

지극히 개인적인 독자의 생각이니, 각자의 생각의 테두리에서

거를 것은 거르고 읽어주시길 :-)

우리 개개인은 각자가 하나의 작은 우주이며 작은 세계이니까요.

그리고, 우리는 틀린 삶, 틀린 답, 틀린 인생을 사는 게 아닌

그저 조금씩 다를뿐인 시간을 살아가고 있는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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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막 읽기 시작했지만, 아껴 읽고싶은 마음을 얼른 떨쳐버리고 큰 숟가락으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쿠키앤크림 아이스크림을 이만큼씩! 떠먹는 것처럼 많이 읽고 많이 먹어야겠다. 즐거운 오후. 가만히 혼자 웃고 싶은 오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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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주 시인. 산책자 겸 문장노동가.
날마다 읽고 쓰는 삶을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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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날마다 읽고 쓰는 삶을 살고싶다.
다시 책 읽는 재미에 풍덩 빠졌다. 수불석권이라 하였던가,

퇴근 후에 책을 읽으면 머릿속에 더 콕콕 박힌다.

커피 한 잔과 함께 하는 책 한 잔. 이런게 행복이 아닐까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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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에서 읽기는 했지만,

숲속에서 읽는다면 더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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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에서 흐르는 클래식을 들으며 읽는 것도 좋겠지만,

산 속에서, 숲 속에서 지저귀는 새소리와, 흐르는 물소리로 귀를 채운다면

마음이 조금 더 풍족해지리라 믿는다.


그리하여 본 독자는, 이번 제주도 가족 여행에 이 책을 데리고 다녀왔다는 사실!

공항에서, 제주도의 푸르른 숲속에서, 제주도의 푸른 밤 속에서

음미하듯 조금씩 조금씩 읽어내어

나의 오후가 전보다 더 푸르렀고, 가득찼던 순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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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본질은 자기에게서 떠나 되도록 자기를 멀리 벗어남에 있다. 자기에게서 해방되어 비로소 자기를 만나는 것이 여행의 보람이다.

가장 가까운 나를 만나려고 가장 먼 곳으로 떠난다. 내 어딘가의 '숨은 자아'를 만나는 것,

이것이 풍경의 먼 곳, 혹은 먼 곳의 풍경이 만들어내는 뜻밖의 효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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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가까운 나를 만나러 가장 먼 곳으로 떠난다, 라는 말이 마음 깊숙히 자리했다.

나를 만나기 위해 떠나는 여행. 꼭 해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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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보일 이란 사람은 "강물이 사람의 마음을 평온하게 하는 이유는 의심이 없기 때문이다.

스스로 어디로 가는지 잘 알고 있으며, 다른 곳으로 가고 싶어하는 일이 없다"라고 썼다.

내가 쓰고 싶었던 문장은 바로 강물같이 평온한 문장이다.

스스로 어디로 가는지 잘 알고, 다른 곳으로 가고 싶어하는 일이 없는 문장들!

이라고 적었다. 그래서일까, 문장을 읽는 동안 물 흐르듯 부드럽고 자연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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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내가 애정하는 이병률 시인님의 이름이 이 책 한 페이지에 거론이 된 것도 참 좋았다.

직접 두 눈으로 보지 못했어도

얼굴을 맞대고 만난 것 같은 느낌.

반가운 느낌.

결국, 좋은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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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중간 중간 나오는 시 구절들을 읽다보면

마치 내가 시인이 된 것처럼

세상을 달리 보게되고, 순간을 아름답게 기록하기위해 애쓰고있는

책을 좋아하고 글을 사랑하는 한 소년이 보이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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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읽다가 뇌리에 띵- 하고 스치는 문구 혹은 글귀를 만나면

스티커를 붙이기보다

 책의 한 귀퉁이를 접어주는 일을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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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부분은 계속 좋아서 더이상 접는 일이 무의미해졌다.

그래서 접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

이러다가 책의 두께가 처음 상태의 두 배는 될 것 같아서.

이러다 책장의 빈 공간들이 남아날 것 같지 않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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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며 가장 좋았던 부분, 가장 인상적이거나 가장 기억에 남는 게 무엇이냐 묻는다면,

내가 할 수 있는 대답은

그냥 꼭 한 번 읽어보시라,고 이야기 할 것 같다.

그래도 한 가지만을 선택해야 한다면,

당신이 책을 읽을 수 있도록 조금의 도움이 될 수 있는 글을 선택하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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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만들어낸 온갖 도구 중에 가장 경이로운 것은 책이다.

다른 도구들이 인간의 육체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책은 상상과 기억에서 발생한 유일한 것이기 때문이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Jorge Luis Borges, 1899~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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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작은 바람은,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더 많은 이들이 더 많은 이들의 책과 글을 읽고

생각을 공유하고 나누며

서로의 생각에 스미고 스며들어

나아가 알 수 없는 삶과 인생속에서

서로가 닮아있는 모습을 마주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우리 모두가 진정한 하나가 될 수는 없어도

하나가 되기위한 힘을 모을 수 있는

한 사람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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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라서 가능한 날들이었다
정기린 지음 / 달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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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음, 씀, 저자, 작가.
가 아닌, '보냄'이라는 말.
책은 어쩌면 독자들에게 보내는 편지. -
한 문장을 읽고 이해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 말은 곧 글에 담긴 의미와 무게가 너무도 커서 한꺼번에 담아낼 수 없었다는 뜻이겠지. 자꾸만 반복하여 읽게된다. 남은 문장들도 천천히 곱씹으며 읽어내야겠다. -
이제껏 살아온 날들과 이미 쓰인 것들 말고도
내게는 앞으로 만들어나갈 세계와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들이 가득하니,
그것들로 한 시절 그대를 살게 하는 이가 되기를
청해보아도 되겠습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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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라서 가능한 날들이었다.

" 심장 안에서 사랑이 뛰는 걸 느껴요.

이제는 알 것 같습니다.

진정으로 사랑하지 않으면,

진정으로 살아갈 수도 없다는 것을요. "

 

-

 

남은 문장들을 읽어 내려가면서 생각했다.

어떤 마음가짐을 갖고 사랑을 해야, 저 밑바닥 심연의 끝까지 내려갈 수 있을까.

아니 도대체 사랑이 무엇이길래, 한 사람이 한 사람을 향한 마음이

이토록 진하게 다가올 수 있을까.

얼만큼 진실하고 성실하게 마음을 쏟아야 할까.

 

 

 

책의 중간 중간 찍혀있는 사진들은, 그곳에 가보고 싶도록 만드는 힘이 있었다.

비록 보내는 이가 기록한 순간들이 아니더라도,

그곳에 직접 간다면 그가 느꼈던 감정의 조각들을,

아주 작은 부분이라도 더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았기 때문에.

 

--
 

 

 

 

 이제껏 살아온 날들과 이미 쓰인 것들 말고도

내게는 앞으로 만들어나갈 세계와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들이 가득하니,

그것들로 한 시절 그대를 살게 하는 이가 되기를

청해보아도 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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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구절을 몇 번이고 되풀이하였다.

작은 글자들이 유리조각의 파편처럼 가슴속에 깊이 박혔다.

빼내려고 노력했지만 그럼 더 큰 상처가 남을 것 같아서 그대로 두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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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라는 사람 때문에 두 눈이 멀었던 지난 사 년을 돌아보면,

당신은 없고 고작 자신의 그리움과 간절함에만 몰두하며 살아왔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는 당신의 두 눈을 들여다보려고, 당신이 되려고,

그리하여 간신히 당신을 사랑하려고, 나는 펜을 들었습니다.

달에게 해처럼 한 곳에서 함께 빛나지는 못하더라도,

드러내지 않는 존재와 드러나지 않는 눈빛으로만 그대를 영원히 지켜볼 수 있는

그 거리가 나를 살게 하고 사랑하게 합니다.

이 세상에 겨울 봄 여름 가을 말고 또다른 계절이 찾아오면,

그때는 우리 다시 만나 꼭 함께 있기로 합시다.

그때까지 나는 내 안의 모든 기약들을 나의 존재와 더불어 녹여내며,

걷고 또 걷고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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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장을 넘길 때, 나는 이미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음에도

또 다른 누군가를, 그 누군가가 누군지 알 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또 다른 사랑을 한 것처럼, 내 마음이 두 개가 된 것 처럼 느껴졌다.

 

지금 누군가를 사랑하거나, 사랑했었거나.

또 앞으로 누군가를 사랑하게 될 모든 사람들이

읽어 보았으면, 한 편으로는 읽지 않았으면 하는 그런 편지, 그런 글.

추천하고 싶지만, 추천하고 싶지 않은.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꼭 받아봤으면 하는 그런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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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걸음씩 걸어서 거기 도착하려네
나희덕 지음 / 달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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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클럽 달 7기, 나는 재수생이다.
6기에 도전하였으나, 의도치 않게 나보다 뛰어난 다른 분들에게 자리를 양보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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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지르지 않고 그걸 가질 수 있던가요.
저지르지 않으면 곧 잃게 되잖아요.
일단 저질러야 내 것이 될 수 있다는, 그래야 가질 수 있다는 이병률 작가님의 글을 보고 도전조차 하지 않으려 했던 내 스스로가 조금은 부끄러워졌다. 그래서 도전했고, 성공했다.
이 공간을 빌어 작가님께 고맙고 감사하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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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첫 리뷰.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조금은 막막하지만,
클럽 달 선배님들의 후기와 리뷰를 읽으며 확실하지는 않지만 희미한 첫 선을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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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책을 처음 마주할 때 겉표지와 맨 뒷장의, 그러니까 바코드가 찍힌 표지를 읽는다.
그곳에는 밤 하늘에 별빛처럼 아름답게 반짝이는 글귀가 적혀있었다.

어렵게 멀어져 간 것들이
다시 돌아올까 봐 등을 돌리고 걸었다
가만히 걷고 바라보다 보면
길이 말을 걸고 풍경에 생각이 움트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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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둘러 책을 읽고 싶었으나, 책의 제목이 눈에 들어온 순간 그럴 수 없었다.
'한 걸음씩 걸어서 거기 도착하려네'라는 문장을 보고 어찌 한숨에 내달릴 수 있을까.
그리하여 나는 한 걸음씩 천천히 걷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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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글자를 마음에 새기고

싶었으나, 여의치 못해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은 장면들만을 골랐고,
이곳에 모으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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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9-20
✔️구부러진 손가락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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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가게를 자주 찾았던 또 다른 이유는 한 점원을 보기 위해서였다. 계산대에 앉아 있는 사십 대 중반의 그 남자는 장애로 심하게 일그러진 육체를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안경 너머로 빛나는 눈은 초식동물처럼 선량하고 평화로워 보였다. 그가 자유롭지 못한 입술과 혀로 간신히 무어라 웅얼거릴 때, 나의 귀는 그의 낯선 영어 발음에 친숙하게 반응했다. 키 큰 영국인들이 머리 위로 빠르게 토해낸 말보다는 그의 더듬거리는 말이 오히려 정답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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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에는 종일 음악이 흐르고 있었는데, 레퍼토리가 나쁘지 않았다. 흥겨운 곡이 나오면 그의 구부러진 손가락들은 허벅지를 툭 툭 치며 장단을 맞추었다. 하지만 그는 몰랐을 것이다. 음악 소리를 뚫고 희미하게 울려 퍼지는 그 마찰음이 내가 더 귀 기울여 듣고 있는 음악이라는 것을. CD를 고르는 동안 내 시선은 그 슬픈 몸의 움직임에 더 오래 머물곤 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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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건을 골라 계산대 위에 놓으면 그의 손가락은 이내 음악에서 풀려나 컴퓨터 자판의 숫자들을 누르기 시작했다. 뒤틀리는 손으로 아주 천천히 숫자 버튼을 눌렀지만, 말을 잘 듣지 않는 손가락들은 자주 에러를 냈다. 그러면 친절한 그의 동료가 달려와 문제를 해결해주곤 했다. 물건을 사려고 기다리는 고객들 중에 그로 인해 시간이 지체되는 것에 짜증을 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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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내민 지폐를 받아 넣고, 그는 심하게 떨리는 손으로 거스름돈을 건넸다. 크고 작은 동전들이 오그라든 손가락들에서 금방이라도 빠져나올 것처럼 위태로워 보였다. 흔들리는 물통 속의 물처럼 찰랑거리는 동전들. 나는 그 소리가 무슨 노래라도 되는 것 같아서 동전을 지갑에 쉽게 던져 넣지 못했다. 동전을 손에 꼭 쥐고 걸으며 그가 들려준 음악의 여운을 느끼고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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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얼마나 좋으냐고 묻는다면, 그냥 빨리 읽어보라고 이야기해주고 싶다. 읽는 내내 자꾸만 온몸에 전율이 일었다. 소름이 돋는다고 표현하는 게 더 정확한가. 읽기 쉽게 쓰인 글이라 죽 읽어 나아가는데, 머릿속에 그 장면들이 옛 영화관에서나 날법 한 촤르르르륵- 소리를 내며 유유히 지나간다. 앞으로 남은 페이지 수는 약 180페이지. 이제 시작이지만, 천천히 아껴두고 오래오래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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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8-39

✔️묘비 대신 벤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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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산책하다 즐겨 앉던 벤치에는 사람 이름 대신 'Que sera sera'라는 글자만 음각되어 있다. 마음이 무겁거나 우울할 때 그곳에 앉아 도리스 데이의 그 노래를 혼자 읊조리다 보면, 마음 한끝에서 밝은 기운이 생겨나곤 했다. 내 앞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 알 수 없지만 모든 것이 잘 될 거라고 누군가 어깨를 두드려주는 것 같았다. 눈앞에 흘러가는 강물처럼 그냥 흘러가라고, 괜찮다고, 이 또한 지나갈 거라고...... 놀랍지 않은가, 평범한 의자에 적힌 한 문장이 그런 위로를 베풀어준다는 것이.

그날 저녁 산책에서 돌아와 아이들에게 제법 비장하게 말해두었다. 내가 세상을 떠나면 양지바른 언덕이나 강가에 묘비 대신 벤치를 놓아달라고. 죽어서도 차가운 대리석 묘비보다는 나무의자가 따뜻할 것 같다고. 그 벤치에 누군가 앉아 생각에 잠겼다 가거나 사랑을 나누어도 좋겠다고. 아니면 오늘처럼 아무도 앉지 않고, 종일 흰 눈만 소복하게 쌓여도 좋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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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12.
새들의 집은 아주 작고 가볍다.
특히 대지에 뿌리내리지 않아도 되는 물새 둥지는 수초처럼 늘 흔들린다. 새들의 자유는 이렇게 정주의 욕망이 없기에 가능한 게 아닐까. 왜 인간은 대지에 뿌리내리는 일로부터 한시도 자유로울 수 없을까.
집으로 돌아오는 저녁이면 수많은 창문들을 올려다보며 그런 질문을 던지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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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또한, 무섭게 하늘을 향해 올라가는 높은 아파트를 바라보면서. 이미 지어져 하늘에 닿을듯한 수많은 네모 속에 살고 있는 저들을 보면서, 저렇게나 많은 집이 있는데. 어찌하여 내 집은 없을까, 하고 생각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어느 날 출근길에 높은 나무 위에 집을 짓고 있는 까치 부부를 만났다. 부리로 열심히 집을 다듬고, 쉴 틈 없이 나뭇가지들을 실어 날랐다. 그 모습을 보면서 인간은, 한 평생 살아갈 집을 자기 손으로 짓는 것이 이리도 힘들까, 하는 생각을 했다. 슬펐다. 그날은 오늘과는 조금 달랐다. 출근하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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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천천히 읽고 있는 중이다.
한꺼번에 다 읽어버리면 너무 아까울 것 같아서.
어렵지 않고 죽 읽히는 글.
그 글이 머릿속에 들어와 자리를 잡고, 하나의 이야기처럼 필름이 이어진다.
편안하고 따뜻하고 새로운 시선.
남은 페이지가 얇아질수록 읽는 속도가 점점 더뎌지는 느낌.
당신도 지금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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