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과학
히라바야시 준 지음, 김은진 옮김, 정완상 감수 / 이치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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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릴린 먼로의 섹시워킹, 바람 맞으며 노상방뇨하는 남자가 오줌에 젓지 않기,
시속 60km의 차 안에서 손 내밀어 느끼는 여자 가슴 감촉, 팬티가 안 보이는 미니스커트 길이
등 주로 발칙한 토픽에 대해 과학적 공식을 계산해내는 재미있는 과학책.

인문학자, 사회학자가 유추와 경험으로 알아내는 것을
과학자는 (역시나) 물리공식, 그래프로 설명해보인다.
놀라운 것은 둘의 값이 거의 동일하게 나온다는 것이다.
속옷 방어선을 갖춘 미니스커트 길이를 산출해내는 과학자도 대단하지만
수학계산 없이도 팬티 안 보이는 미니스커트 길이를 깨달은 디자이너도 대단하다.

대신 후자의 경우는 수많은 시행착오, 임상실험, 부작용을 거쳐야했을 것이므로
다분히 반인륜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렇다고 전자의 경우는 예외적 상황에 대처하지 못 하니 이는 또 반사회적이다.

공식과 논리, 법칙과 유추가 나란히 상생하면서 세계 평화를 추구해야 할 것이며
그에 앞서 홍익인간의 정신부터 익혀 무장해야 할 것이다.

(2008.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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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선껌 타고 동강을 동동동 문원아이 저학년문고 3
윤제학 지음, 이민선 그림 / 도서출판 문원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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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 3~4학년용 동화책 같은 걸 언제 마지막으로 읽었는지 모르겠다.
아예 유아용 책이라면 조카 등을 위해서라도 펼쳐든 적이 있지만
스스로 글을 읽을 줄 아는 아이들 책을 어른인 내가 볼 일이 뭐 있었을라구.

하여 이 책이 또래 도서들에 비하여 잘 쓰여졌는지 그렇지 않은지
쉽게 되어 있는지 괜히 어렵게 되어 있는지 나는 알 도리가 없다.

다만 나도 사랑하는 동강의 이야기를 동화로 다루고 있다는 반가움과
일면이 있는 작가에 대한 경외감으로 정성껏 내가 그 알맞은 독자가 된 듯 읽는다.

동화의 도덕은 교훈있음일까?
동화의 정의는 어린 생물체가 화자 또는 소재로 채택됨일까?
나는 동화의 도덕은 상상력이라고 생각한다.
아직 상상의 기진맥진을 겪지 않은 깨끗하고 말랑말랑한 뇌,
그것의 허기를 채워주고 그 대역폭을 넓혀주는 것이 동화의 임무가 아닐까?

자연보호라는 화두를 의무처럼 지니고 있어 안쓰럽기는 해도
풍선껌을 불어 하늘을 동동 날아다니는 수달과 별 친구의 동강 유람기는
그런 의미에서 재미가 있다.

말랑말랑한 뇌들의 허기를 달래줄 동화를 쓸 수 있다면!

(2008.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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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살무늬토기의 추억 - 문학동네 소설 2001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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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작할 수 없다, 기억할 수 없다, 나아갈 수 없다, 버틸 수 없다...

그의 글에 나타나는 극중 화자의 이 할 수 없는 무력감 앞에
나는 목울대가 뻣뻣해지곤 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괴로운 것은 '말할 수 없다'고 토로하는 부분이다.
반백이 되도록 글을 파먹은 기자 출신의 관념소설가가
대개 그 자신으로 치환되곤 하는 주인공의 입을 통해
"나는 이것은 이러하나 이렇다고 말할 수 없었다" 라고 속울음을 우는데야
어찌 가슴이 먹먹해지지 않을 수가 있을까.

그의 처연한 무기력은 <칼의 노래>, <현의 노래>, <남한산성>,
<화장>에까지 이어져있으니 혹자는 이를 두고
컨디션만 바뀌었을 뿐 캐릭터의 변함은 없다고 폄하했을 터.

그러나 그 할 수 없음의 할 수 없음을 그도, 나도 어쩔 것인가.
할 수 없음의 할 수 없음은 세상 천지가 다 알고 말글보다 몸이 더 알아
불 앞에 맨 몸뚱이로 나서는 나나 장철민이 더 무섭고 더럽다 말하는데
그것을 누가 추상이니 패턴이니 손가락질 할 것인가.
이 연민과 모성의 피멍을 누구라도 감당할 것인가 말이다.

피뢰침을 뽑아낸 해수관음마저 물과 불로 엉겨 질척거렸더랬다.

(2008.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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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 - 2004년 제28회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
김훈 외 지음 / 문학사상사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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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과 죽음이 격렬하게 대비되면서도 또 끈덕지게 들러붙어 있다.
제대로 조여주지 못해 흘러내리는 아내의 똥물이나
제대로 열리지 못해 고여가는 남자의 오줌은 죽음을 알리는 시그널같다.
그러면서도 살아있다는, 살아가고 있다는 근거다.

MRI 사진 속에서 밝고 환하게 반짝이는 종양의 모습이 삶이 아니듯
악취 풍기고 거북살스럽다고 해서 죽음의 증거가 아니다.
악취가 수치스럽고 거북함에 잠을 이루지 못하는 것은
결국 살아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생의 비율이 조금도 섞여 있지 않은 명쾌한 죽음에는 그런 여지조차 없다.
죽음은 급속냉동과 화장 속에서도 의연하다.
몇 토막 뼈조각과 부스러기들은 수치를 모른다.
굶고 있을 애완견도 걱정하지 않는다.
확고부동한 죽음이 되려면 이쯤은 돼야 한다.

그러나 자신이, 우리가 조금씩 죽어가고 있다 여기는 남자에게는
'추은주'로 대변되는 확고한 삶의 증거만을 연모할 따름이다.
제대로 조이고 제대로 열리는, 제대로 오물거리고 제대로 내딛는 추은주와 그녀의 아기.
그것은 변질되거나 의심받을 것도 없이 확고부동한 삶이요 생명이어서
남자는 경외하며 흠모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씻은 물김치를 받아먹던 조그만 아기의 입도
언젠가 제대로 닫히지 않으며 입 속 침 따위도 제대로 간수하지 못할 것이다.

죽음이 마치 여기서 위싱턴만큼이나 뚝 떨어져 존재하는 삶은 없다.
죽음에 수렴하는 삶이 아니라 열리고 닫히고 고장나고 수치스럽고 하는
삶 자체가 그냥 삶이다.

죽음은 완전히 별개여서 누구나 알아챌 수 있다.

(2008.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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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해록, 조선 선비 중국을 표류하다 - 기행문 겨레고전문학선집 14
최부 지음, 김찬순 옮김 / 보리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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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에 조선 선비 일본 기행문을 하도 재미나게 읽어
같은 출판사, 같은 시리즈, 같은 옮긴이의 책을 꺼내 읽었다.

일전이 기행문이라면 이것은 엄연히 표류기이다.
한유롭게 경치를 감상하기보다는 "대체 여기는 어디란 말인가!"하며
불안에 떨며 휘둘러보는 처지다.

또한 '문인'의 감흥이 아니라 행정공무원, 중견정치인이
풍파 속에서도 위엄을 잃지 않고 패닉에 빠진 일행들을 카리스마 있게 대하고
표류지인 당시의 대국, 중국에서도 당당하고 용기있게 행동하는 것이
이 글의 감상포인트라면 포인트랄까 문장 자체의 수려함은 없다.

나는 이런 차이가 생긴 또 하나의 큰 이유를 연륜이라 생각하는데
일전의 글쓴이는 표해록의 최부보다 나이가 곱절이나 많은 노인으로써
오색찬란한 일본 상차림을 보고서도 놀랄 것이 없는 양반이었다.

대신 생에 대한 성철과 끈끈하게 잘 조려진 충정이
그저 검박한 붓끝으로 솟아나온데 반해
서른 다섯의 최부에게는 아직 끓고 있는 충정과 야망,
그리고 파도같은 희노애락의 높고 낮음으로 인해
그전에 느꼈던 흐뭇한 감동을 느낄 수가 없는 것이다.

박애와 용서, 통찰과 평정으로 가득찬 글쓴이가 되기에는
결국 세월이란 성실한 관문을 거쳐야 하는 것인가.

(2008.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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