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사회와 예술 인문 예술 총서 4
발터 벤야민 / 문학과지성사 / 198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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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년에 발표된 창작과 비평사 신인평론가상을 수상한 작품은 '보들레르와 근대'이다. 이 글을 접했을 때의 느낌은 참으로 묘했다. 어디서 베낀 것일까? '상상'이나 '문학동네'에 나오는 평론들은 그 논지들의 출처를 어느 정도는 짐작 할 수 있었지만 이건 잡히지 않았다.

보들레르라는 한 세부적인 항목에서 이끌어 내는 그 추론 전개 방식과 이미 당연하다는 듯이 내뱉는 전제들의 깊이는 참으로 조화로웠다. 아무리 서울대 출신이 다르다지만 이렇게 글을 쓸려면 최소 불문학 10년은 너끈하게 해야 나오는 글일텐데, 더구나 영문학도가, 나이도 그렇게 많지 않은 것을 생각하면 무척 대단하다고 생각되었다.

더군다나 그로 인해 발생된 일종의 좌절감은 한동안 나의 책읽기를 방해하는 한 원인 노릇을 톡톡히 했다. 이 책은 그 출처를 담고 있다. 서울대 영문과 대학원 1학년이 벤야민을 텍스트로 한다는 것은 알았으나 그 벤야민이 보들레르에 대해 상당히 많은 자료를 남긴 것 몰랐던 것이다.

기껏해봐야 비판이론과의 유사성과 지식사회학과의 막연한 혼동만이 있었기에 그 전집 목록을 찾아보지 않은 실수였다. 이 책의 2장 예술가의 고뇌 中 중앙공원이란 곳에 보들레르에 관한 파편적인 시각들이 듬뿍 들어있다.

이 책은 번역자가 벤야민의 전집에서 중요한 부분만을 짜집기해 놓은 책이다. 따라서 다른 출판사에서 나온 것도 있지만 여기서는 주로 문학과 예술에 대한 것만을 소개한다.

벤야민의 유명한 용어 '아우라 aura'는 그가 텍스트를 접하는 방식의 분명한 방법론을 읽을 수 있는 말이다. 이는 한 예술 작품이 탄생하게 되는 여러 요인들의 종합을 일컫는 말이나 흔히 얘기되어지는 사고의 물질적 바탕 같은 시대나 역사에 국한 된 것만은 아니다.

예를 들어 창조성, 감정 이입, 모방, 공동체험, 환상 같은 한 작품이 담고 있는 모든 외적인 것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상황적 요소들인 형태나 이념들에 반해 그가 강조하는 것은 작품 개개들의 발생적인 요소들, 내부에서 통일되어지고 스스로 구성되는 그러한 완결들의 연관이다. 작품이 소우주로 비유되는.

이러한 두 극단의 접합은 벤야민의 유명한 말 '문명의 역사는 야만의 역사' 에서도 보여지듯이 이중적으로 사고하되 그 안에서 융화시키는 독특한 시각의 중심을 이룬다.

이러한 분석틀에서 그가 초현실주의- 루카치가 그렇게 비판한-의 이념을 옹호하는 타당성을 찾을 수 있기도 하는 것이다.

'자유란 그것이 계속되고 있는 한 자유의 충만 속에서 그리고 실용주의적인 계산도 없이 무제한적으로 향유되기만을 원하는 것임을 그들(초현실주의자들)은 확신 하기 때문이다. ........ 혁명을 위한 도취의 힘을 얻는 것, 이것이 초현실주의의 모든 시도와 저서에 나타나 있는 중심과제이다.'

책을 읽을 때 중요한 것 한 가지는 말하고 있는 이의 틀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을 다시금 확인하는 좋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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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하지 않는 기사 - 칼비노 선집 3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15
이탈로 칼비노 지음, 이현경 옮김 / 민음사 / 199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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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칼비노의 소설을 읽지 않고 살았다는게 후회가 될 정도로 놀라운 소설. 7시간 연속으로 영어책들과 씨름 한 후에 빼들은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그 무겁던 머리를 가뿐히 씻겨주었다.

무대는 칼 대제가 사라센 제국과의 전쟁이 한창인 중세다. 백색의 갑옷(전혀 먼지를 뒤집어 쓰지 않은)과 검은 망토를 걸친 '존재하지 않는 기사'도 그 일원으로 그 부대의 온갖 잡일(예를 들면 부랑자들의 배급문제나 부식문제와 같은)을 신경 쓰고 있다.

이 사람은 몸이 없다. 사람들이 갑옷을 들쳐보면 아무것도 없는 텅 빈 속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사람은 너무나 완벽히 부대의 행정적인 일을 처리하고 모든 걸 파악하고 있다.

이 '존재하지 않는 기사'를 사랑하는 것은 그 기사들 중 홍일점인 여자 기사다. 그녀는 여러 남자를 경험한 후 모든 걸 다 알아버려 더 이상 '존재하는 남자'들에게 매력을 느낄 수 없어서 그를 사랑하는 것이다. 또 그 여자기사를 사랑하는 신참내기 기사도 있다.(이 신참내기 기사가 죽을 뻔할 때 그 여자기사가 구해준다.)

신참내기 기사는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왔으나 '복수담당부서'라는 곳이 그 부대에 있어 할당된 복수를 지정받는다. 어느 위치에 가서 몇 명을 죽이면 그만한 복수를 한다고 하는 이상한 부서.

'존재하지 않는 기사'는 귀족의 처녀성을 지켜주면 작위를 받는다는 그 당시의 법률에 의해 기사가 되었다. 하지만 그의 아들이라고 자처하는 이로부터 그 당시 기사가 구해준 이는 처녀가 아니었다는 말을 듣고 자기의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 그 처녀를 찾아 여행을 나선다.

그의 하인이 있는데, 이 하인의 특징은 객관과 주관을 혼동한다는 것이다. 하인이 말을 타고 간다고 생각해보자. 그는 타고 있는 자신과 사람을 태운 말의 처지에서 동시에 생각을 하고 말을 하는 것이다. 물고기를 잡다가 그물 속에 갇힌 물고기를 보고 자기가 물고기라 생각하고는 물 속으로 들어가 그물에 갇히는 식으로.

마지막에 가서야 나보코프의 소설 로리타 처럼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는 수녀가 위에서 말한 여자 기사라는 것을 독자들은 알 수있게 된다.

이 소설은 작자가 부정하고는 있지만 곳곳에서 이 사회의 단면에 대해 풍자를 하고 있다. 그 여자기사의 사랑에서 프로이트의 타나토스의 이론을 엿볼 수 있기도 하고, 부대의 조직에서 자본주의라는 제도를, 성배기사단의 행동에서 요즈음 유행하는 단이나 선에 관련된 종교인들 '구루' 같은 이들의 행태를 간간히 떠올릴 수 있다.

괴테의 파우스트를 읽은 후 거의 10년만에 느끼는 기쁨. 마르게스, 보르헤스와 더불어 20세기 3대 소설가라는 말이 전혀 과장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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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사회학 대우학술총서 구간 - 문학/인문(논저) 47
김현 지음 / 민음사 / 198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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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에 대해 대평론가라는 말을 붙이는 것이 다소 껄끄러워 진것이 언제부터인가는 잘 모르겠지만 이번에도 그 말에 대한 의심을 다시 환기시킨 책이 되지 않을까 싶다.

철학자로서 살 사람과 사회학자로서 살 사람, 새로운 이론을 만들며 짜맞추며 사는 사람과 단지 그것을 받아들이며 마치 자기것인양 요약하며 사는 인생의 차이가 김현에 대한 나의 생각을 정리할 때 제일 먼저 드는 생각이 된 것이다.

김현이 아직 살아 있다면 분명히 이상문학상 같은 것에 이름이나 빌려주며 적당히 평론하며 자기 권위가 해쳐지지 않는 범위에서 제자 양성과 그 기득에 힘쓰는 부류인 그 심사위원들의 명단에 들지 않았을까 하는 정말 기분나쁜 의심이 드는 것은 과연 내가 잘못된것 인지.......

그저 각 나라마다 있는 국내의 고만고만한 평론가로 외국 이론가들이 평가할 만한 정도의....... 마치 텐느에 관한 그의 설명은 그대로 그 김현 자신에게로 전도되어야 되지 않을까......

문학사회학의 입장에서 본다면 그 자신으로는 상당히 비극적이었겠지만, 철학적으로 계속해서 나아가지 못한것이 텐느로 하여금 문학사회학의 중요한 기초를 딱게 만든 셈이다.

모든 문학적 활동은 사회적 활동이다 라는 명제와 모든 사회적 활동이 문학안에 투영되어 있고 문학형식안에 가둘 수있다는 원칙은 80년대를 지내온 우리들에게 있어 그리 낯선 주제는 아닐 것이다.

김현은 1970년대까지의 한국에서의 문학사회학과 서양에서의 문학사회학, 스탈부인, 텐느, 플레하노프, 골드만, 루카치, 바흐찐, 독일 콘스탄쯔 학파와 프랑크푸르트 학파에 대한 개론을 설명하며 후반부에 가서는 직접 그 적용으로서의 실례로서 여러 문학사회학적 비평을 해 보이고 있다.

예술적 활동에서 이념과 형상이 밀접한 관계를 가진 문학적 작품이나 혹은 색이나 감각만으로 그 기능을 수행하는 음악이나 무용들을 다 한가지로 사회적이고 생산적인 사회생활에서 그 기원을 찾아내고 그 문학적 작품의 효과를 사회적 생활의 적극적 향상의 일부로서 연구하는 것......

- 문학의 이론과 실제 -

여기서 거창한 수준의 설명이나 이론소개들을 바라는 사람에게는 너무 실망스러울 정도의 진짜 개론들!! 과 무조건적인 수용적 태도는 그저 안타깝다는 심정만.......책 뒷편에 나오는 국내 번역본들의 소개 정도가 약간 인상적인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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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
쥐스틴 레비 / 민음사 / 199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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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국민학교 때 읽은 어느 잡지의 인물란에 프랑스 신철학의 기수 '앙리 레비'의 결혼식이 사진과 함께 실려진 기억이 난다. 거의 얼굴이 신랑의 반밖에 안되게 작은 하얀 얼굴을 가지고 있으나 키는 신랑하고 비슷했던 그 신부, 철학이라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도 몰랐던 나이임에도 모델이라고 소개된 그녀의 사진이 실린 그 조그만 기사는 한동안 나의 가슴을 설레이게 했던 그 무엇이 아니었나 싶다.

그 후 나이가 들어 우여곡절 끝에 내가 스스로 철학이라는 학문을 공부하기로 마음먹게 되고, 이 선택에 대한 의문을 가지고 과거의 기억을 더듬어 보게 되면 그것 중 하나가 대학교 학부 시절 그토록 쫓아다닌 여자 후배의 이미지가 그 때 본 '앙리 레비'의 신부의 이미지와 무척 닮아 있었음에 다소 놀라게 된다.

물론 레비 자신의 저서들에서 지금까지 가지고 있는 실망과는 별도로 인문학자들에 대한 일종의 동경은 내 속물근성까지 포함하여 그 당시부터 키워진 것이 아닌가 생각되어져서, 내가 정말 철학 학문자체가 좋아서 그런 건지, 아니면 그 철학을 발판으로 미인과 결혼하려고 그러는 건지 헷갈릴 때면 혼자서 키득키득 거리며 웃곤 한다.

이 '만남'이란 책을 다 읽고 나서야 안 사실이지만 이 저자는 실제로 그 철학자와 모델 사이에 태어난 파리에서 철학을 공부하는 대학생 딸이다. '엄마가 한 일 중에서 가장 잘한 일은 나를 낳았다는 것이다. 적어도 엄마가 내세우는 바에 의하면 그렇다.' 라는 어린애 일기를 엿보는 듯한 착각 속에서 시작한 이 책읽기는 너무도 깔끔한 문장과 밀도 있는 감각에 놀라 책을 손에서 놓지 않게 만든다.

이 소설의 주인공 '루이즈'는 지휘자인 아빠 알리스와 모델이었던 엄마 오렐리앙 사이에서 태어난 딸이며 부모님은 이혼한 상태이다. 자기를 '야옹이'라 부르는 엄마와 샴 고양이 2마리와 함께 살기도 하고, 여행을 떠나거나 도벽이나 마약과 같은 크고 작은 범죄에 휘말려 엄마가 감옥이나 요양원에 가 있을 때는 아빠와 아빠의 새 여자친구들 집으로 돌아다니며 생활한다.

그럴 때면 루이즈는 주말마다 아빠와 엄마가 첨으로 만났다는 '카페 에크리투와르'에 가서 엄마와의 약속을 기다린다. 하지만 절대 그의 엄마는 제시간에 오는 법이 없고 펑크내기가 일쑤인 것이다. 엄마를 기다리고 있으므로, 그리고 그녀가 오지 않으므로 루이즈는 그녀를 생각한다.

어머니에 대한 기억들을 거치며 어린아이의 시선에서 실제 어머니의 혼란스러운 삶들이 연민으로 바뀌게 된다. '있잖니, 야옹아, 행복하다고 착각하는 게 아니고 착각한다는게 바로 행복이란다.' 라고 지나간 사랑의 아픔을 간직한 엄마에 대한 기억들은 시간의 흐름이 주는 관계의 거리만큼 시적인 언어로 우리에게 다가오고, '슬픔이여 안녕'의 작가 사강의 언어를 연상시키는 사물을 바라보는 시선의 경쾌함은 소설읽기의 즐거움이 무엇인지 가르쳐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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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성과 페미니즘
리타 펠스키 지음, 김영찬 옮김 / 거름 / 199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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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에 관하여 얘기되어지는 서로 상반되고 이질적인 목소리에 대한 것들, 즉 한편으론 '이성적 자율적 주체 형성의 시기에 대한 것들'과 '일시적이고 유동적이고 비약적인 것들'의 출현에 대한 서술들이 어떻게 페미니즘과 연관되는가?

이 책에서는 19세기 근대에 들어와서 침투한 자본주의의 영향아래 어떻게 여성성이 생산되었는지를 여러 분석틀을 가지고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이 책의 장점은 기존의 문화사 및 문화이론이 간과하고 있는 성별 문제에 대해서, 왜 그것이 남성적인 틀로서 규범화 되었으며 '여성의 삶과 경험의 특수성'에 충분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는지에 대해 비판을 하고 있다.

예를 들어 독일 정치 경제학의 창시자인 게오르그 짐멜의 사상안에 여성성에 대한 생각을 고찰한 점이나 문화비판이론에 대한 책중 거의 성경이라 할 수있는 '계몽의 변증법'을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비판하고 있음은 상투적인 페미니즘에 찌들린 독자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고 있다.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이나 '나나' 같은 명작 뿐만 아니라 영미권 문학에서 페미니즘 쪽으로 문제시 되고 있는 여러 소설들을 다양한 관점, 예를 들면 성도착적인 여성성의 전형으로서, 동양적이고 종교적으로 신비한 이미지로서의 여성, 남성성의 은폐와 같은 것들로서 다양하게 구분되고 또 문학비평식으로 설명함은 페미니즘적 글쓰기를 추구하는 이들에게 특히나 도움이 되는 책이 되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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