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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하지 않는 기사 - 칼비노 선집 3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15
이탈로 칼비노 지음, 이현경 옮김 / 민음사 / 1997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칼비노의 소설을 읽지 않고 살았다는게 후회가 될 정도로 놀라운 소설. 7시간 연속으로 영어책들과 씨름 한 후에 빼들은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그 무겁던 머리를 가뿐히 씻겨주었다.
무대는 칼 대제가 사라센 제국과의 전쟁이 한창인 중세다. 백색의 갑옷(전혀 먼지를 뒤집어 쓰지 않은)과 검은 망토를 걸친 '존재하지 않는 기사'도 그 일원으로 그 부대의 온갖 잡일(예를 들면 부랑자들의 배급문제나 부식문제와 같은)을 신경 쓰고 있다.
이 사람은 몸이 없다. 사람들이 갑옷을 들쳐보면 아무것도 없는 텅 빈 속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사람은 너무나 완벽히 부대의 행정적인 일을 처리하고 모든 걸 파악하고 있다.
이 '존재하지 않는 기사'를 사랑하는 것은 그 기사들 중 홍일점인 여자 기사다. 그녀는 여러 남자를 경험한 후 모든 걸 다 알아버려 더 이상 '존재하는 남자'들에게 매력을 느낄 수 없어서 그를 사랑하는 것이다. 또 그 여자기사를 사랑하는 신참내기 기사도 있다.(이 신참내기 기사가 죽을 뻔할 때 그 여자기사가 구해준다.)
신참내기 기사는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왔으나 '복수담당부서'라는 곳이 그 부대에 있어 할당된 복수를 지정받는다. 어느 위치에 가서 몇 명을 죽이면 그만한 복수를 한다고 하는 이상한 부서.
'존재하지 않는 기사'는 귀족의 처녀성을 지켜주면 작위를 받는다는 그 당시의 법률에 의해 기사가 되었다. 하지만 그의 아들이라고 자처하는 이로부터 그 당시 기사가 구해준 이는 처녀가 아니었다는 말을 듣고 자기의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 그 처녀를 찾아 여행을 나선다.
그의 하인이 있는데, 이 하인의 특징은 객관과 주관을 혼동한다는 것이다. 하인이 말을 타고 간다고 생각해보자. 그는 타고 있는 자신과 사람을 태운 말의 처지에서 동시에 생각을 하고 말을 하는 것이다. 물고기를 잡다가 그물 속에 갇힌 물고기를 보고 자기가 물고기라 생각하고는 물 속으로 들어가 그물에 갇히는 식으로.
마지막에 가서야 나보코프의 소설 로리타 처럼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는 수녀가 위에서 말한 여자 기사라는 것을 독자들은 알 수있게 된다.
이 소설은 작자가 부정하고는 있지만 곳곳에서 이 사회의 단면에 대해 풍자를 하고 있다. 그 여자기사의 사랑에서 프로이트의 타나토스의 이론을 엿볼 수 있기도 하고, 부대의 조직에서 자본주의라는 제도를, 성배기사단의 행동에서 요즈음 유행하는 단이나 선에 관련된 종교인들 '구루' 같은 이들의 행태를 간간히 떠올릴 수 있다.
괴테의 파우스트를 읽은 후 거의 10년만에 느끼는 기쁨. 마르게스, 보르헤스와 더불어 20세기 3대 소설가라는 말이 전혀 과장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