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하나 건너면 벼랑 끝 - 성매매라는 착취와 폭력에서 살아남은 한 여성의 용감한 기록
봄날 지음 / 반비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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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에 공장으로 성매매 업소로 몰리게 된 여성이 긴 터널을 지나 어떻게 그 곳을 벗어나게 되는지 때로는 담담하게, 때로는 분노하며 써내려간 책이다.

 

1부가 성매매 업소로 유입되어, 그곳에서 나오게 되는 마지막 장면으로 끝나는데, 여성이 향하는 곳은 '집'이었다. 그녀는 그곳밖에 몰랐을 것이다. 우리 기억 속에서 '집'은 따뜻하게 우리를 반겨주는 곳이니까. 그러나 현실의 '집'은 우리가 늘 그리는 그 '집'이 아니다. 가끔, 집에 있을 때에도 '아~ 집에 가고싶다'는 말이 나오기도 하니까. 그녀가 마지막에 '집'으로 향할 때, 말할 수 없는 슬픔을 느꼈다.

 

400페이지가 넘는 책을 자신의 삶을 지배해 온 성매매 루트를 한줄한줄 다시 되새김하며 썼을 필자를 생각하면, 얼마나 고통스러워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업소와 업자에 대한 분노, 그런 성매매 시스템을 굴리고 있는 사회와 국가에 대한 분노가 함께 치밀었다. 이런 시스템 자체가 낳은 것이 n번방일 것이다.

 

성매매를 없애는 것은 성매매 여성 단속이 아니라 성매매 여성을 착취하는 것이 일종의 문화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한국사회와 국가 전체를 바꾸는 것으로 가능할 것이다. 업소에 대한 분노는 그 시작일 뿐이다. 국가는 성매매 여성을 착취하는 시스템을 그냥 두고 그 시스템 속에서 정치와 법이 집행되어 왔다는 것을 인정하고, 여성착취에 대한 책임을 국가는 반드시 져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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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여성 - 그녀들의 가슴에 묻어 둔 5.18 이야기
광주전남여성단체연합 기획, 이정우 편집 / 후마니타스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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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다리가 다치면 다리만 아프고, 손이 다치면 손만 아프다고 생각하기 쉽다. 나도 그랬던 것 같다. 그래서 다리를 다쳤을 때, 다리만 아프고 다리만 치료하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그때, 내 몸 전체가 아팠고, 내 몸 전체를 치료했다.

 

전두환이 5.18 때 광주를 분리된 다리처럼 분리시키려고 했고, 우리가 5.18을 다룰 때도 어떤 '사건'으로만 다루려고 할 때도 있지만 5.18은 사실 한국 전체를 바꾸고, 한국 전체가 아픈 사건이다. 그리고 사람의 삶에서도 그러했을 것이다.

 

이 책은 5.18 당시의 사람들의 경험만을 다룬 것이 아니라 여성들이 5.18을 관통하면서 어떻게 삶이 바뀌게 되었는지, 5.18 이전의 삶과 이후의 삶을 스스로 해석하는데 5.18이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책이었다. 여성들의 입으로 전해지는 5.18 광주와 광주에서의 삶이 기록된 중요한 역사서라고 생각한다. 기록되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에 좌담이 두개 붙어 있었다. 김상봉 선생님의 <철학의 헌정> 너무 좋았는데, 선생님이 하시는 말씀마다 소설가 이화경 선생님이 페미니즘적 입장에서 문제제기 해주셔서, 좌담의 긴장감이 느껴져서 재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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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늦지 않았다 - 마쓰모토세이초, 반생의 기록
마쓰모토 세이초 지음, 김경남 옮김 / 모비딕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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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늦지 않았다'는 제목이 마음에 들어서 읽었다. 왠지 힘이 나게 하는 문장인 것 같아서. 그러나 다 읽고 나니, 이 책의 제목을 왜 <아직 늦지 않았다>로 지은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찾아보니 원래 제목은 그냥 <반생의 기록半生の記>이구만.

 

제목을 봐도, 그리고 41세에 등단한 늦깍이 어쩌구라는 출판사 쪽의 홍보나 설명을 봐도, 책을 읽는 사람들은 아마도 이 작가가 어떤 고난을 거쳐서 위대한 작가가 되었는지와 같은 출세기나 성공기를 기대하면서 읽을 듯하다. 그러나 아마도 세이초는 자신의 반생이 그렇게 읽히길 바라지 않을 것 같다. 책의 막바지에도 나오지만, 출판사 쪽에서 작가로 데뷔한 부분까지 써달라고 했는데 자신은 '처음부터 문학에 뜻을 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작가가 되기 위한 공부에 대해서는 쓸 말이 없다'고 했다. 이 책에는 작가가 된 이후의 자서전은 좀 더 작가생활을 하고 쓰겠다고 쓰여져 있는데, 실제로 썼는지 궁금하다.

 

이 책은 마츠모토 세이초가 어려운 가정 환경에서 어떻게 자신의 삶과 생계, 가족을 어깨에 짊어지고 살아왔는지에 대한 기록이었다. 어려운 가정형편과 대가족을 지탱하기 위해 조바심을 내고, 마음을 졸여가며 돈을 벌었던 때를 기록할 때는 그 마음 졸임이 읽는 나에게도 전해졌다. 신문사 광고계의 도안가일때 무시했던 사람들, 소설이 당선되고 유명한 소설가를 찾아갔을 때 은근히 무시했던 문학청년들에 대해서도 쓰고 있는데, 세이초는 그 사람들이 싫었기 때문에 교류를 끊거나 만나지 않았다고 쓴다. 증오와 분노는 그런 사람들이랑 계속 만날 수밖에 없을 때 일어나는데, 세이초는 아예 그런 사람들에 대한 기대도 희망도 없었던 것 같은 느낌이 드는 부분도 있었다. 어쨌든 책 표지 뒷편에 쓰여진 "돈도 학벌도 희망도 없이, 인쇄공에서 도안가로 그리고 결국에는 작가로 거듭난 불굴의 늦깎이"로 해석되고 홍보되는게 맞는지 나는 모르겠다. 세이초는 오히려 살아내기위해 글을 쓴 사람으로 느껴졌다.

 

이 기록에서 흥미로웠던 부분은 태평양전쟁 때 조선의 전라도 정읍에 군인으로 와 있었고, 일왕의 패전 옥음?방송을 직접 들었던 때의 장면이었다. 라디오를 군인들이 둘러싸고 방송을 들었는데도, 도통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어서 패전했는지, 항복했는지도 몰랐던 장면이 영화처럼 쓰여져 있다.

 

일본으로 인양된 후 빗자루 장사를 했을 때 전국을 기차를 타고 이리저리 오갔던 기억을 적은 부분은 마츠모토 세이초 소설에 자주 나오는 기차 시간과 노선을 활용한 추리가 이런 경험에서 나왔구나 하는 생각도 들어 재미있었다. 미군부대의 탈영 사건과 관련된 경험도 마츠모토 세이초 추리 소설의 배경이되거나 항성 언급이 되는 미군주둔 시기에 대한 관점이나 재현에 영향을 주었음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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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로 모비딕 마쓰모토 세이초 단편 미스터리 걸작선 2
마쓰모토 세이초 지음, 전혜선 옮김 / 모비딕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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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매달 한 권씩 마쓰모토 세이초를 읽기로 계획했다. 1월에는 <동경제국대학>, 2월에는 <범죄자의 탄생>을 읽었다. 3월에는 도서관이 문을 다 닫아서 사 읽어야 하나? 하고 있었는데, 도서관에서 드라이브 스루 대출을 해주길래,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다.

 

3월이 거의 막바지로 향하고 있을 때쯤에 <역로>를 읽기 시작했는데, 이 즈음에 텔레그램 n번방 성착취 사건이 크게 보도되기 시작했다. 나도 sns와 티비를 통해 분노하면서 계속 n번방 성착취 보도를 보았다. <그것이 알고싶다 >에서도 이 사건을 취재하고 방영했다.(내가 본 것은 아니다. 이 사건 내용을 하나하나 다 보기가 너무 힘들다.)

 

야튼 이걸 보면서, 범인이 누구인지? 범인의 생애와 사건의 정황이 계속 나왔다. 사건은 '그래서' '요래요래' '그 결과' '벌어졌다' 처럼 항상 완결된 서사가 되었다. <역로>의 여러 사건들과 이야기들도 다 이런 완결된 서사가 되었다. 범인이 어떤 인간이었고, 어떻게 사건을 저지르고, 결국 어떻게 되었다는 것이 마쓰모토의 추리소설이다. 계속 똑같은 내용의 문장을 반복하고 있는데, <역로>를 읽으면서 추리소설이라는 구조가 너무 답답하게 느껴졌다. 어떤 사건의 정황에 범인은 꼭 맞게 들어간다. 그리고, 그 범인이 밝혀지고 그 세계는 다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변하지 않는다. 추리 소설에는 다음 세계에 대한 전망이 안보였다. 단지 지금의 이유나 상황을 밝히고 만들어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완결된 세계들이 보여주는 것은 뭘까. 이 완결된 세계에 전복은 가능한 것일까. n번방 박사가 만들어진 이유와 배경과 관련된 모든 서사들이 작성된다는 것이 의미하는 것은 추리소설이 끝난 후의 변함없는 세계 같다. 그래서 sns의 많은 친구들이 가해자에게 서사를 부여하지 말자고 하는 것일까.

 

문득, 이 오래된 추리소설의 역사는 이 오래된 국민국가가 유지되어온 '歷路'가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제목은 왜 한자로 <기찻길>이라고 안하고 <역로(驛路)>라고 했을까나.... 한글 '역로'만 보고 '逆路'인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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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1960년대 - 도쿄대 전공투 운동의 나날과 근대 일본 과학기술사의 민낯
야마모토 요시타카 지음, 임경화 옮김 / 돌베개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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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반일 무장전선>이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었는데, 이들의 전쟁에 대한 자기반성이 인상적이었다. 자신이 받아온 교육, 자신이 누려온 것들, 자신의 삶 자체가 전쟁을 승인하는 사회 속에서 가능했음을 뼈저리게 반성하며 자기 부정을 통해 자기반성을 하는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다.

 

<나의 1960년대>는 전쟁을 승인하고 전쟁을 위해 과학 연구를 하고 국가를 위해 학도병을 보냈던 동경대에 대한 동경대 대학생들의 자기부정과 비판이 잘 기록되어 있는 책이었다. 이 자기부정과 비판을 했던 동경대 전공투 운동가들은 동경대 폐지를 주장했고 대학에 남아 연구하지 않고 많은 사람들이 학원 강사가 되었다고 들었다.

 

읽다보면 이런 의문이 든다. 한국에 있었던 경성제국대학 학생들은 이렇게 뼈아픈 반성을 한 적이 있나, 식민을 승인하고, 전쟁을 옹호하며 해방후 친일정권을 승인했던 경성제국대학생과 대학은 한 번이라도 이런 반성을 한 적이 있었던가....하는 생각이 든다. 서울대 폐지라는 것이 학벌주의 폐지와 관련해서도 생각해볼 일이기도 하지만, 역사적으로 한국의 대학들이 무엇을 승인해왔는지, 무엇을 위해 연구해 왔는지, 반성적 성찰을 하는 주체로서 존재해 왔는지 의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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