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경 바빌론 1
CLAMP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1997년 1월
평점 :
절판


동경바빌론은 clamp의 성전과 함께 초기작에 속한다. 또한 클램프가 지향하는 것, 클램프다운 것들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작품이다. 그러나 X처럼 시니컬하고 암울하다거나, wish, 미유끼짱, 클램프학원탐정단처럼 비현실적인 환상을 다루는 클램프의 두가지 경향,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은, 현실속에서 뭔가를 개선해보려는 시도가 보인 작품이다. 클램프의 작품이되 클램프의 여타작과는 다른 만화이다.

주요내용은 1992년의 도쿄, 선대때부터 일본을 지켜온 스메라기가의 13대 당주 스바루와 그의 쌍동이 누나 호쿠도, 그리고 스바루와 끈질긴 인연으로 이 이야기를 컨트롤하는 어둠의 음양사 세이시로 관한 이야기다. 17세가 된 스바루와 그를 사랑한다고 하고 보살피는 세이시로, 그둘으 어렸을때 벚나무에서 뭔가 약속을 했다는 것은 모두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역시 크램프다운 결말, 그 약속이라는 것이 타인의 피를 한없이 마시는 벚꽃나무 세이시로(사쿠라즈카라는 성은 벚꽃무덤이란 뜻, 즉 세이시로가 벚꽃나무주술사임을 암시함)가 스바루를 1년동안 사랑할려고 노력해서 감정이 생긴다면 살려주되, 그렇지않을땐 죽여버리겠다는 것이었다는 것엔읽는 이를 놀라게 한다.

그결과 스바루는 한때 호쿠도가 말한대로 역시 너무 순수한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갈 수 없기에 그전의 수수함을 닫아버리게 되고 호쿠도는 세이시로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 이작품은 이렇게해서 끝난 것이 아니다. 마지막 장의 이름이 start였던 것처럼 또 다른 시작임을 암시하고 있으며 X에서 이 둘의 애증은 이어진다.

극장판에서 보인 결말, 선사인시티(이둘이 곧잘 데이트를 했던 장소이기도 함)에서의 동반자살과 달리,진짜 둘의 결말은 어떻게 될 것이인가. 또한 15권에서 언급된 스바루의 진짜 소망이란 무엇인가.(글에선 세이시로 만이 어루어 줄수 있다고 한다만) 또한 동경바빌론 7권에서 말한 호쿠도만이 할수 있다는 건 무엇일까..

동경바빌론은 신중하게 봐야할 작품이다. 여러 숨겨진 키워드가 많이 나온다.

첫째, 너무나 확실한 벚꽃과 죽음에 대한 암시이다. 활짝 만개한 벚꽃 다음은 죽음이다. 세이시로는 벚꽃에 휩싸여 있고, 스바루는 벚꽃에 쉽슬려 간다. 이건 X에서도 마찬가지다. 카무이가 멋있으라고 벚꽃을 뿌리고 다니는 건 아니다.

둘째 뒤섞인 성이다. 어차피 세이시로가 스바루를 좋아하는 것부터 야오이물로 생각될 소지가 있기도 하지만 이 만화에선 도무지 남, 여라는 개념이 없다. 전혀 상관치 않는 듯하다. (몰론 클램프 전체 작품이 거의 대부분 그렇다. )스바루는 여자이름이고 호쿠도는 의외로 남자이름인 것에서도 그렇다.

개인적으로난 동경바빌론이 클램프의 최고 작품이라고 생각한다.물론 스크린톤의 폭격이라고 불릴만큼 거칠게 그림을 그릴때지만..내용은 여러번 곱씹어 볼만한 가치가 있는 그런 작품이다. 동경바빌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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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다 노부나가 1 - 난세의 파천왕
이케미야 쇼이치로 지음, 양억관 옮김 / 중심 / 200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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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철저히 오다 노부나가를 존경하는 마음으로 쓴 책이다. 나도 노부나가를 참 좋아하는 사람이지만 이 책은 더하다. 오케하자마에서 이마가와를 꺽고 아케치를 만나는 장면부터 시작하는 이 책은 철저히 노부나가의 입장에서 연구하고 분석한 책이다. 대망에서의 노부나가, 우리나라에서 출간된 몇 안되는 일본서의 노부나가와는 다른 분석과 견해를 많이 보여준다.

내가 특히 주목한 부분은 노부나가의 광기와 관련된 부분이다. 작가가 언급하는 것처럼 예전의 책에선 노부나가에겐 광기가 있다는 말을 곧잘 했었다. 그건 노부나가의 너무나 기발한 사고방식, 잔혹한 학살(혼간사, 나가시마 등.)을 근거로 언급되어진다. 그러나 작가는 800년 일본 역사의 모순을 근절하기 위한 노부나가의 뛰어난 천재성과 과감성을 바탕으로 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했다.글쎄... 너무 편드는 사람의 말은 어쩐지 다 믿어지지 않는 법이다.

또 하나 노부나가가 진정 천하포무와 기후라는 말에 의미를 담지 않은 것일까..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 또한 일본을 통일할 기반으로 삼자는 뜻에서 기후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았을까..

노부나가와 이에야스는 일본사람들이 정말 좋아하는 사람 중 하나로 알고 있다. 일본인들은 그들의 위인을 여전히 연구하고 '영웅'으로 만들기 좋아한다. 노부나가, 이에야스 (이상하게 히데요시는 별로 인기가 없는 듯), 메이지시대의 사이고 다카모리, 거기다가 오키타 소오시, 아마쿠사 시로같은 몇몇 인물은 여러 무수한 소설에서 언급되어 젊은 사람들로 부터 여전히 사랑을 받고 있다. 이점은 참 부러운 점이다. 그들이 여전히 사랑할 만한 인물을 일본이 많이 배출한 것일까. 아니면 현대인들이 끊임없이 갈고 닦은 결과일까.. 당연히 후자일 것이다. 그들의 이러한 노력은 나처럼 딴 나라의 사람도 팬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이야기가 잠깐 딴 데로 샌것 같다. 확실히 노부나가는 드문 인물이다. 놀라운 결단력, 카리스마, 전혀 고정관념에 얽매이지 않는 (작가의 말에 의하면 과거를 돌아보지 않는 )사고방식,.. 대망의 작가 야마오까 소하찌가 질풍이라고 표현한 말은 딱 들어맞는 말이다. 이 책에서 노부나가에 대한 다른 분석과 견해를 알게되엇지만 소설은 소설이다. 그러나 도대체 일본에 관한 연구가 너무나 부족한 우리나라에선 오히려 갈증만 더 남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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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항하지마 1
후지사와 토루 / 학산문화사(만화) / 199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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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저하게 10대를 위한 만화다. 일본에서는 어떤 출판사에서 출간되었는지는 확인하지 않았지만 여타 많은 10대 위주의 잡지 중의 하나일 것이다. 재밋는 만화다. 그건 확실하다. 바람의 검심도 끝나고 김전일와 원피스가 간간히 이어져 나오고 확실한 대희트작이 나오지 않는 상황에서 말이다. 상남 이인조를 이어서 한층 부드러워진 그림체와 챔프류의 만화에 익숙해진 사람들에게 가볍고 건강한 만화인 것은 틀림없다. 초밥집, 홍자집, 등등 별의별 사람을 만화주인공으로 내세우더니만 드디어 학생들이 공감하고 학생들과 친구가 될 수 있는 이 오니즈카(영길)까지 나왔다. 신선한 생각과 갑자기 툭툭 튀어나오는 위트도 역시 재밋다.

하지만! 10대가 아닌 내가 보기엔 이 작품에서 아쉬운 점이 참 많다. 우선 캐릭터설정이다. 영길은 백호를 너무나 많이 닮았다. 이 작품을 모르는 사람에게 설명할때 백호가 철 좀 들어서 선생되었다고 하면 대부분 금방 짐작을 한다. (아..슬램덩크의 강백호) 성격, 외모(리젠트머리를 밀어버리는 점까지..)남들과 부딛쳐 나가는 방식.. 참 많이 닮았다. 아닌 점도 많다. 워낙에 타케이코 이노우에의 케릭터 설정이 강해서 그런 줄도 모르겠다. 그리고 영길네 아이들...국지, 레미, 견.... 이모두는 비슷비슷하다.. 영길에게 대적할 듯 하다가 반해버린다..비슷비슷하다..

또 하나 지적하자면.. 10대와 기성세대의 너무나 확연한 이분법적인 패가르기다..너무나 기성세대티를 철철내는 학교선생들...10대치고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기성세대에 대해 증오를 드러내는 다 자란 10대들.. 타협없는 이런 단순함는 금방 지겨워지고 자극이 없어지는 법이다. 이점이 이 만화에서 아주 아쉬운 점이다. 하지만 젊은 현대작가가 그런 만화라 만화영화에 관해선 매니아라고 자부하는 나로선 재밋는 점을 많이 발견할 수 있어 기뻤다. 오니즈카의 코스프레, 건담 3형제, 또 일본만화에 가끔 등장하는 아사쿠라 시로 이야기..재밋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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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년 동안에 1
마루야마 겐지 지음, 김난주 옮김 / 문학동네 / 1999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마루야마 겐지는 이책을 접하면서 첨 알게된작가다. two무리카미, 요시토모 바나나 등의 각적인 현대 작가에 익숙해져 있던 나에게 이 가의 글은 무게가 남달랐다. 현재 일상사의 섬세한 분 하나하나에서 자신의 감정을 반추하는, 어떻게보면 감정의 홍수와 마찬가지인 여타 품들과 비교해서 이 품은 메달라서 버석버석 부러질 것 같은 느낌이었다. 정확한 시간을 알수없는 그저 일본을 배경으로 한 이 소설은 천년을 살아온, 이세상에 대해서 초월하여 관조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나무와 세상의 한 부분으로 태어나 천년 세월을 잇는 일명 '흐름'을 지니고 살아가는 한 인간에 관한이야기다. 주인공은 흐름을 대변하는 나무와 이야기하는 여러 인물들 주의하나에 불과하다고도 할수있다.

계속 언급된는 '흐름'이란 무엇일까..작가는 현실에, 어떤 물질적인 것에 자신을 묶지 않고 자유롭게 모든 것을 느끼고 타협하지않고, 그래서 더더욱 자신에게도 묶이지 않는 그야말로 세상속에 물처럼 흘러내리는 것이라고 표현한다. 어떻게보면 도가의 사상이 생각나기도 하는 지극히 관념적인 이야기다. 그것이 이 혼탁한 세상에서 진정 '살아가는'방법이라고 했다. 좋게 말하면 정신없는 세상에서 자신의 위치를 돌이켜 보고 쓸데없는 것에 얽매여 고민하는 짓을 그만두라는 깔끔한 녹차같은 책이 될수 도 있고, 다르게 보면 세상사에 묶여 발을 뺄수없는 처지에서 쉽게 말하는 염불이 될수도 있는 책이다. 어떻게느끼는 가에 따라 다른것이 아닐까..

어찌 되었던 이책릏 읽고 나면 우선 머리속이 시원하게 정화되어 시끌시끌한 세상의 열기가 조금은 식은 듯한 느낌이다. 금은 사소한 것에 집착하기보다는 자신에게 돌아올 있게 해주었다. 그러나 이책에서 꼭 짚고 넘어가야 할것이있다. 물론 내가 그의 다른 전작을 읽어보지 않아서 섯부른 비판이 될수도 있겠지만 이책에선 확실히 드러나는 남성우월주의 사상이다. 이책에서 흐르는 자를 우선으르 친다면 ,'여자는 흐르는 자가 될수 없다.'라는 말로 여자는 -그의 표현에 의하면 - 세상사에 얽매인 존재라는 것이다. 또한 이책에서 오는 여성은 모두 다 심한 수준이다.

욕심 많고 속이 얕으며 자신의 편리를 위해 흐르는 남성을 묶어 매려는 존재로 묘사되어 있다. 이러한 작가의 생각은 너무나 남성적인 그의 어투에서도 드러난다. 그는 왜이렇게 숨김없이 노골적으로 표현을 했을까.. 당당하게 그의 생각을 밀어붙이려는 것일까. 아니면 내가 그의 생각을 어리석게 오해한 것일까. 물론 한 작품 가지고 모듣 것을 이해하고 비판을 할 는 없는 노릇이다. 아무해도 그의 다른 작품을 읽어봐야 내가 그의 대해서 가지고 있는 것이 오해인지, 아닌지 알게 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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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계에서 온 사무라이 - Understanding Japanese Animation
안토니아 레비 지음, 이혜정 옮김 / 초록배매직스 / 200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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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이 책은 아니메(일본에선 에니메이션을 아니메라고 부른다. 또한 이책에서 작가는 여타 다른 나라의 에니메이션과 구분하여 일본 에니메이션을 아니메라고 부른다.)를 좋아하지 않고 그래서 많은 작품을 보지 않은 사람이 봐선 진도도 안나갈 책이다.
실제 일본 아니메 예시가 계속 쏟아져 나오기 때문에 그 작품들을모르고서는 이책을 읽어나가기가 힘이든다. 왠만한 아니메는 다 봤다고 자부하는 나도 모르는 작품이 나오면 작가가 하는 말을 다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이 책은 서양인, 안토니오 레비가 본 일본(어떻게 보면 동양문화도 전반적으로 다 포함 된다고도 할 수 있다.)문화이다. 일본인은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사고방식 문화코드를 작가는 이렇게 풀이하고 있다. 그는 이 책의 카피로도 쓰인 벚꽃은 죽음을 상징한다는 말을 mono no aware 라는 관념으로 풀이하고 있다.일본인의 이중성, 강렬한 미의식은 극대화된 아름다움은 바로 사라져 버리고 끝난다는 즉 벚꽃이 활짝 만개 하였으니 곧바로 사라진다는 그네들의 사고방식을 알수 있었다.. 이점이 우리나라에서 일본국화는 확 피고 나면 바로 져버린다고 비하시키는 점인데 그네들은 다르게 풀이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무궁화는 일년내내 꽃이 지지않고 핀다고 우리는 자랑하는데.. 얼마나 다른 일본과 한국의 사고방식이란 말인가..또 확실히 일본신에는 신성성이 부족하다.그들은 신이나 신화에선 신성함을 느낄 수가 없다. 그리스 신화와 마찬가지고 지극히 인간적인 신이다.. 남매간의 관계로 태어난 일본자손, 또 여러가지 인간적인 모습...그래서 일본엔 절대적 선(기독교에서의 절대선, 절대신념)이 없다고 한다. 그것은 일본의 여러 아니메 주인공에서도 나온다.선악개념이 불분명하고 꼭 주인공이라고 해서 선인이라고 할 수 없는 모호함말이다..

또 하나는 일본인은 그들의 아니메를 그들만을 위해서 만든다는 것이다..이것은 일본 아니메를 보면서 많이 느낀건데.. 너무나 일본 토속적인 것을 다루어서 일본인이 아니면 모를 것을 자주 다룬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이 작품이 외국인도 본다는 것을 모르는 것일까.. 라고 불평하곤 했었다.확실히 일본만화는 지극히 일본적이다. clamp의 x에서 뻔뻔스럽게도 그들에게 세계의 중심은 오직 또쿄뿐인것 처럼 묘사한 것을 보면 알수 있다. 모든 외래어를 가타가나로 바꿔서 외국인은 뜻을 짐작하기 힘든 일본어로 바꿔버리는 것이 일본인긴 것이다.

그렇게 한일간에는 벼랑처럼 차이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작가는 서양인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풍습이라고 설명해놓은 것에는 한국인인 우리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것도 많다.우리들로선 전혀 차이를 모르고 받아들인 것들 말이다..그러고보면 완전히 다른 족속도 아닌데 말이다.. 일본은. 서로를 이해하려는 차이를 비하시키기보다는 차이점을 깨닫고 이해하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요즘처럼 다시 안볼 것 처럼 사이가 벌어진 시국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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