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리에서 일어나 옹크리고 앉아 나는 이 전율과도 같은 힘을 끌어안고 진저리를 치면서 쩔쩔매었다. 한 개씩의 개별적인 음이 사라지고 다가오면서 선율을 이루듯이, 나는 나에게 찾아온 새로운 힘에 의하여 부드럽게 엉기고 연결되는 시간 위에서의 삶을 이루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그 가능성을 느꼈다. (•••)
나는 나에게 찾아온 새로운 힘을 `사랑`이라고 이름붙였다. 이름을 붙이고 나서 나는 혼자 좋아서 웃었다. (15~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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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나는 아주 오랜만에 깊고 편한 잠을 이룰 수 있었다. 그날 밤의 잠은 깊고 아늑했고, 빠져 죽을 듯이 곤했다. 세계와의 무섭고도 영원한 작별을 나는 잠 속에서 이루었다. 나는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겠다. 말할 수 있는 것을 겨우겨우 말하기에도, 식은땀을 흘리며 기진맥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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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P 개의 날 1
김보통 지음 / 씨네21북스 / 2015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이 만화는, 그래서 나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경계에 서서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그 시절을 차마 잊을 수가 없어, 어렵게 꺼내놓는 고백이다.
2015년 여름 김보통
_김보통, <D.P> 작가의 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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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P 개의 날 1
김보통 지음 / 씨네21북스 / 2015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그 무렵 나는 경계에 서 있었다. 가해자와 피해자, 군인과 민간인, 그리고 탈영을 하지 않은 자와 탈영을 한 자의 경계. 그 사이에 엉거주춤 선 채 어디로도 가지 못하고 기웃기웃 구경을 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_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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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은 동틀녘에 시작된다. 하지만 우리는
먼동이 트기 전 거리에 오가는 사람들 속에서
우리 자신을 만나기 시작한다. 드문 행인들 틈에서
불현듯 자신이 외롭고 졸린다는 걸 깨닫는다—
각자 외로이 꾸벅꾸벅 꿈을 꾸다가—
새벽녘에서야 눈이 번쩍 뜨인다.
아침이 오면 우리는 깜짝 놀라
비로소 시작되는 노동에 매달린다.
이제 더이상 외롭지도 않고 졸리지도 않으며,
침착하게 하루의 생각을 하다가
미소에 젖는다. 다시 떠오른 태양 아래
우리는 모두 확신에 찬다. 하지만 때로는
희미한 생각 하나—냉소—가 불현듯 우리를 사로잡고
우리는 태양이 떠오르기 전처럼 사방을 둘러본다.
투명한 도시는 노동과 냉소를 구경한다.
아무것도 아침을 방해하지 않는다. 아침에는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고, 우리는 노동에서 고개를 들고
그저 바라보기만 하면 된다. 도망친 소년들은
하릴없이 길거리를 배회하고
누군가 달려가기도 한다.
_<규범> 중에서, 86쪽

도시에서 우리는 잠시 고개를 들고
생각에 잠기다가, 다시 고개를 숙인다.
_<규범> 중에서, 8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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