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내가 모든 것을 안다는 걸 모른다. 당신을 렌즈처럼 이용해 세상을 보고 있다는 걸 모른다. 나의, 그리고 당신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속속들이 꿰고 있다는 사실을 짐작조차 하지 못한다. 어떻게 그토록 모르는 것이 가능할까.
_`굿바이` 중에서, 5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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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앞에 당신이 있습니다. 나는 당신을 행복하게 해줄 수도 없고, 우리가 오래 살거나, 당신이 나를 불안에서 해방시켜줄 거라는 생각도 들지 않습니다. 나는 모르는 사이에 당신을 파괴하고, 당신의 꿈과 시간과 기쁨을 희생시켜 내 살과 피로 바꿔놓고는 철면피처럼 계속 같이 있어줘, 라는 말을 던질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사는 방은 초라해져가고, 우리는 함께 낡아가며 종종 서로 때문에 눈물을 흘릴 것입니다. 마음이 모든 것을 이길 수 있다고 나는 믿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당신을 좋아합니다. 이 일에 어떤 가치가 있는지, 약간의 옳은 부분이라도 있기는 한지 알지 못합니다. 그래도 나는 당신이 필요합니다. 이렇듯 미숙하고 무능하게 당신을 좋아해왔습니다. 지금, 당신은 아직도 내 말을 듣고 있네요. 이런 내 곁에 있어줘서 고마웠어요.
부족하다는 걸 알지만 할 수 없습니다. 계속 쓸 수밖에. 내일도 우리가 함께이고, 기적이 일어나서 내가 조금 더 건강한 사람이 되어, 조금 더 나은 방식으로 당신을 좋아할 수 있을 거라고 믿는 수밖에.
_작가의 말 중에서 356~35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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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들은 장식이다. 혹은 허상이다. 기억은 사람을 살게 해주지만 대부분 홀로그램에 가깝다. 대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주어진 끝을 받아들였다.
`대니` 중에서, 4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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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수도 없이 대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짐짓 단호한 척, 명령하는 어조를 골랐던 나를 후회하면서. 그때까지 한 번도 부끄러워한 적 없는 내 늙음을 부끄러워하고, 내게는 없다고 믿었던 감정들이 덩굴손처럼 집요하게 마음을 휘감고 뻗어가는 것에 당황했으나 멈출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
대니는 받지 않았다. 나는 계속 전화를 걸었다. 놀이터에서 지희를 업은 채 웃고 있는 그를, 마치 처음 만났을 때처럼 환한 빛 속에서 무심하게 부서지는 그 미소를, 그의 곁에 있는 다른 사람들을 발견할 때까지.
_`대니` 중에서, 45~4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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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니_ (•••) 할머니의 어떤 어려움은 없어지지 않는 것 같았어요. 견디는 거죠, 그런 건? 같이 시간을 보내는 동안 알게 된 거예요. 다른 게 또 있어요. 할머니는 행복한 순간에도 견딜 때가 있었고, 견디는 순간에도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 같은 표정일 때가 있었어요. 저에게는 그게 의미가 있었어요.
질문_ 아름다웠나요?
대니_ 잘은 모르겠어요. 내가 그 순간 무슨 의미로 그 말을 했는지요. 몰라서 미안해요.
질문_ 대니, 사과할 필요는 없어요.
대니_ 네. 하지만, 할머니를 보고 있으면 할머니가 영원히 계속 그 자리에 있을 것 같았어요. 저와 얘기를 나누면서요. 저는 그게 좋았어요. 하지만 그렇게 되지는 않겠죠.
_`대니` 중에서, 42~4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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