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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개토태왕의 위대한 길
김용만 지음 /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 2011년 7월
평점 :
품절
고등학교 때인가, 하여튼 한참 감수성이 예민하던 시절 읽었던 소설이 있다.
바로 김진명의 소설 "가즈오의 나라", 이 책에서 처음 위대한 광개토태왕을 알았다.
그 책을 안 읽어보신 분들은 꼭 추천하는 바이다. 역사책이 아니라 두뇌싸움과 추리가 있는 소설이라 정말 흥미진진하다.
가즈오의 나라에서 모티브가 된 것이 바로 "광개토태왕릉비"이다.
곳곳이 훼손되어 안보이는 글자가 있었고 일본은 자신들이 주장하는 임나일본부설의 근거로 활용하기 위해 유리하게 해석되는
글자들을 넣은 후에 일본으로까지 그 비를 실어가려고 했었다.
물론 태왕릉비에 왜를 정복하고 "왜"라는 글자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어떤 내용이 정확히 있는지는 더욱 연구해야하는 바라고 한다.
그렇게 만나게 된 광개토태왕은 우리가 잘 아는 소수림왕의 조카이다.
교과서에도 나오는 소수림왕은 불교를 공인하고 태학을 설립했다. 아마 예전에 배운 기억이 나실 것이다.
그런 소수림왕에게는 아들이 없었고 그래서 동생 고국양왕이 왕위에 오른다. 그 고국양왕의 아들이 바로 담덕, 광개토태왕이다.
(배용준이 주연했던 드라마, 태왕사신기에서 담덕이라는 이름이 익숙해졌다는...
)
우리 나라 역사에 정말 위대한 왕으로 기억되는 광개토태왕이지만 사실 역사적 자료가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광개토태왕이 역사적인 사실보다는 신적인 존재, 영웅으로 기억되기만 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것은 이 책의 저자도 경계해야할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그런 흐름에서 이런 책이 나왔다는 것은 참 고무적인 일이다.
광개토태왕이라는 인물, 그 시대적 상황과 역할 등등에 대한 역사적인 고증을 거친 역사서이다.
물론 역사라는 것도 사료를 바탕으로 저자의 생각이 덧입혀서 나오는 것이라는 부분은 짚고 넘어가야 하지만,
꽤나 객관적으로 접근하려고 한 이 책은 내용은 읽을 수록 공감되는 곳이 많았다.
조금은 두툼하지만 읽는 동안엔 책의 두께를 잊어버리게 한다.
가끔은 이런 책을 읽고 역사 속으로 빠져드는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이 시원한 피서법이 되는 것 같다. 
고구려 역사의 거대한 변화를 이끈 한국사 최초의 진정한 태왕을 만난다.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國岡上廣開土境平安好太王'으로 기록된 광개토태왕. 그는 대왕, 선우, 황제가 아닌 태왕이다. 그로 인해 고구려는 태왕의 시대, 제국의 시대, 포용의 시대, 다원화된 시대로 접어들었다.
그는 단순히 영토욕에 가득한 정복 군주가 아니었다. 18세에 즉위하여 39세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22년간 재위하면서 그는 고구려 역사를 크게 바꾸어놓았다. 그는 고구려사 나아가 한국사에서 처음 만나는 진정한 태왕이다. 지나친 유명세에 비하여 광개토태왕의 진면목은 온갖 선입견과 오해 때문에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광개토태왕이 왜 정복 활동에 나서게 되었고, 그가 정복 활동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지, 그리고 그가 이룬 성과와 의미를 알기 위해 고구려인의 입장, 광개토태왕의 입장, 상대방의 입장에서 그 시대를 돌아보았다. 정복 군주라는 단편적인 면만 부각된 광개토태왕이 어떤 인물이고, 어떻게 고구려 역사를 바꾸어갔는지 확인할 수 있다.
광개토태왕이 시라무렌강 유역까지 장거리 원정을 떠난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이를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1. 거란에 빼앗긴 고구려인 1만여 명을 되찾는 것(인구 확보).
2. 고구려인의 수호자라는 명분 획득(백성의 지지 확보).
3. 소, 말, 양, 소금 획득(경제적 이익).
4. 후연을 공격하기 위한 교두보 마련.
391년 원정은 빼앗긴 백성을 되찾아 고구려인의 수호자로서 백성의 지지를 얻기 위해서였다. 광개토태왕은 즉위한 직후 백성의 충성심을 끌어낼 업적을 쌓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했다. 전쟁이 잦은 시대에 적에게 포로가 되더라도 국가에서 구해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면 충성심으로 연결된다. 이산가족의 문제를 국가가 해결해줄 때 백성의 충성심은 커질 수밖에 없다. 거란 정벌은 광개토태왕에게 고구려인을 지켜주는 수호자라는 영예를 안겨주었다. 그 결과 집권 초기에 생길 수 있는 정통성과 권위의 문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다. 또 이후에 벌일 전쟁을 보다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백성의 지지 기반을 마련할 수 있었다. 광개토태왕은 이런 계산을 염두에 두고 거란 정벌을 최우선 순위로 실천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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