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새롭게 개작한 조정래의 "황토"를 읽었다. 학창시절에 읽은 "태백산맥"과 "아이랑"의 묵직한 시대 의식을 반영한 소설이었다. 조정래의 글에는 가볍고 명랑한 요즘 소설들과는 다른 매력이 있다. 정말 글을 읽었구나, 책을 읽었구나하는 느낌이 있다. 그래서 그의 글을 좋아한다. 외면하고 싶은 내용들을 읽으면서 괴롭지만 시대의식을 고취시킨다는 의미가 있다. 게다가 내가 겪지 못했던 시대와 세대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간접적으로 현대사 공부도 된다. 조선 후기부터 격동의 시기를 맞이했던 우리 나라다. "조선후기-대한제국-일제강점기-대한민국"으로 이어지는 근현대사에서 격동의 시기가 아니었던 적이 어디 있었겠는가?! 그 시기에 나라의 운명보다 개인의 운명이 더 풍전등화 같았을 것이다. 내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현실의 벽에서 끝없이 좌절하고 죽어갔을 것이다. 그 중에서도 1970년대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 바로 "비탈진 음지"이다. 이 소설 역시 1973년에 처음 발표되었으니 작가의 시대의식과 고발이 담겨있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중편이었던 소설을 이번에 장편으로 개작하여 다시 출간하였는데 나에게는 예전 글보다 훨씬 더 다가온 것이 사실이다. 그 안에 담겨있는 작가의 생각을 느끼기엔 개작된 이 글이 훨씬 이해하기가 쉬웠다. 200여 매의 원고를 새롭게 집필하고 문장 하나하나를 다듬었다는 작가의 말에서 그 이유를 알겠다. 우리 부모 세대를 가장 불쌍한 세대라고 한다. 젊은 시절부터 많은 고생으로 가정과 나라를 짊어지고 갔지만 이젠 자식들에게 버림받는 세대라고 말이다. 격변하는 대한민국의 현대사를 살아온 분들의 이야기에서 애잔함과 안타까움이 느껴지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일 것이다. 누구나 가난하고 못 살았던 시대라고 덮어버리기엔 그 시대를 살아온 우리 부모 세대의 아픔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비탈진 음지" 그냥 시시껄렁한 킬링 타임용 소설에 질렸다면 강력추천하는 책이다. 사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네 모습과도 별반 다르지 않게 느껴지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