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네 각시 도라지 총각 비룡소 전래동화 39
배삼식 지음, 김세현 그림 / 비룡소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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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래동화전집을 꾸준히 읽어 온 집이라면, 언젠가 아이가 묻습니다.

“이야기는 재미있는데, 왜 꼭 착하면 상 받고 나쁘면 벌 받아야 해?”

『지네각시도라지총각』은 바로 그 질문에서 출발하는 전래동화입니다.


비룡소에서 출간된 이 책은 배삼식작가가 처음으로 어린이를 위해 쓴 전래동화로, 우리가 익히 알던 ‘천 년 묵은 지네’ 이야기를 전혀 다른 결로 풀어냅니다. 권선징악이라는 익숙한 틀을 벗어나, 인물의 감정과 관계에 집중하며 이야기를 확장합니다. 지네 각시와 도라지 총각은 서로의 결핍을 숨기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며 함께 살아갑니다. 이 과정은 아이들에게 ‘옳고 그름’보다 ‘이해와 공감’이 먼저라는 메시지를 자연스럽게 전합니다.



특히 인상적인 점은 문체입니다. 배삼식작가 특유의 입말 같은 문장은 마치 인물들이 눈앞에서 대화를 나누는 듯한 생동감을 줍니다. 설명하지 않고 느끼게 하는 글이라, 읽는 아이의 마음 속에 장면과 감정이 오래 남습니다. 전래동화전집에서 흔히 기대하는 빠른 전개나 명확한 결말 대신, 여운을 남기는 선택을 했다는 점이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입니다.



그림 역시 빼놓을 수 없습니다. 김세현 작가의 그림은 한국적인 색감과 여백을 살리면서도 현대적인 감각을 잃지 않습니다. 지네 각시의 붉은 손, 도라지 총각의 푸른 눈처럼 상징적인 요소들이 이야기의 감정을 시각적으로 단단히 붙잡아 줍니다. 위로 여는 제본 방식 또한 글과 그림에 집중하게 만들어, 천천히 음미하며 읽기에 좋습니다.



초등 고학년 아이와 함께 읽으며 느낀 점은 분명합니다. 이 책은 웃고 끝나는 전래동화가 아니라, 읽고 나서 이야기가 이어지는 전래동화입니다. 아이는 “누가 나쁜지 잘 모르겠다”고 말했고, 그 말이 이 책의 가치를 가장 잘 설명해 준다고 느꼈습니다.



전래동화전집을 새롭게 고르고 있다면, 비룡소의 『지네각시도라지총각』은 꼭 한 번 손에 들어 보길 권하고 싶은 책입니다. 교훈보다 공감이 먼저인 전래동화, 아이의 마음 깊은 곳을 조용히 울리는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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