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악녀 이야기 에이케이 트리비아북 AK Trivia Book
시부사와 다쓰히코 지음, 김수희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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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희빈, 장녹수, 정난정 이들의 공통점을 찾는다면?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3대 악녀로 손꼽히는 인물들이다. 이들에 대한 이야기는 영화나 드라마로 제작되어 많은 관심을 끌었다. 이처럼 역사 속에 등장하는 사악한 인물들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시대를 거슬러 오늘날까지 지속적으로 이어오면서 관심의 끈을 유지하고 있다.


어떤 여성을 악녀로 뽑았을까 궁금했는데, 역시 미모와 권력을 쥐고 있던 여성이나 애욕과 범죄로 똘똘 뭉친 여성들이 대거 등장했다. <세계의 악녀 이야기>에서는 동서양의 역사를 뒤흔들었던 12명의 사악한 악녀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책에서는 15세기 르네상스 시대에 살았던 이탈리아의 루크레치아 보르자를 시작으로, 16세기 스코틀랜드의 메리 스튜어트, 18세기 프랑스의 마리 앙투아네트, 7세기 중국의 측천무후, 그리고 20세기 독일의 마그다 괴벨스까지 기막힌 악행들과 함께 한 인물들이 소개되어 있다.


p.11

무료 로마교황이나 되는 인간이 젊은 시절 몰래 정부를 두었다니, 괴이하게 여길 사람이 많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르네상스 당시 교황청 내의 이교적, 자유주의적 분위기는 놀랍다 못해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지경이었다. 당시 교황은 바티칸 궁전 안에 악사나 예술가, 배우나 창녀 등을 모아놓고 화려한 연회를 종종 열기도 했다.


p.37

'철의 처녀'의 등장은 백작 부인이 여인들만 골라 죽였다는 사실과도 맞물려 그녀의 성격에 상징적인 의미를 부여해 준다. 어쩌면 그녀는 레즈비언(여성 동성애자)이었을지도 모르고, 혹은 무의식중에 고대 동방의 대모신을 받드는 무녀 같은 역할을 연출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이 책을 읽어 보면 악녀라고 해서 본질적으로 다 나쁘다고만 할 수는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여기 소개된 인물들 외에도 다양한 악인들이 존재하지만 이 책에서는 각 시대별로 특징적인 인물들을 뽑고, 작가가 바라본 관점들을 통해 분석한 내용들을 읽다 보면 측은함도 느낄 수 있다.


작가는 비극의 여왕 메리 스튜어트를 극단적인 로맨티스트로 생각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남자들까지 호령했던 중국의 측천무후는 권력의 힘을 제대로 보여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특정한 시대에 태어나 한 여성이 어떻게 악녀로 성장하게 되었는지 파악하면서 읽어보시기 바란다.


작가의 시선을 따라 이들이 가진 악녀로서의 기질에 본인의 성향이나 타고난 심성도 한몫하고 있지만 정치적으로 이용된 측면도 있다는 점에 주목해서 읽어 봐도 좋을 것이다. 르네상스 시대를 배경으로 도덕적 타락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가 첫 장을 장식하고 있는데, 여기서 악녀로 평가받는 루크레치아 보르자는 불행한 결혼 생활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아버지와 오빠의 끝없는 정치적 야심을 채워줄 도구로 전락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p.73

어찌 되었든 눈부신 승진을 계속한 젊은이 에식스에게 정치적으로 연적이었던 근위대장 롤리의 존재는 늘 눈엣가시였다. 롤리 때문에 여왕과 몇 번이나 싸웠는지 모른다. (중략)

세월을 이길 장사는 없다. 여왕도 마찬가지였다. 실제로 엘리자베스는 이 막무가내 젊은이 때문에 얼마나 마음고생을 하고 골치를 앓았는지 모른다. 단순한 사랑 싸움만이 아닌, 정치나 군사적인 의견 차이도 있었다.


p.118

한편 국왕 루이 16세의 희한한 도시락은 자물쇠 만들기와 사냥이었다. 그는 전용 대장간에서 묵묵히 망치를 휘두르거나 짐승들을 쫓아 숲을 헤집고 다니는 순간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했다. 그의 이런 취미는 사치에 빠져 있던 아내와 맞지 않았지만, 그는 아내에게 남자로서 찔리는 부분이 있었기 때문에 아내 앞에만 가면 자꾸만 위축되었다.



이 책에는 15세기 이탈리아의 루크레치아 보르자를 비롯해 16세기의 엘리자베스 여왕, 메리 스튜어트, 카트린 드메디시스, 18세기의 마리 앙투아네트 등 격동기의 한가운데 있었던 여성들에 대해 소개되어 있다. 또한 클레오파트라, 아그리피나, 측천무후처럼 강렬한 권력욕을 가진 전설의 여인들이 등장한다.


또한 바토리 에르제베트나 브랭빌리에 후작 부인처럼 저명한 살인마, 파란만장한 스토리텔링의 프레데군트와 브룬힐트의 이야기, 내면적 고뇌가 인상적인 마그다 괴벨스 등 동서양의 역사에 등장하는 12명의 악녀에 대해 저자가 자신만의 스타일을 담아 흥미로운 주제로 풀어냈다.


애욕에 불타는 인물, 살인과 파괴를 일삼았던 인물, 권력욕에 눈이 멀어 잔학무도한 면을 보여준 인문 등 추리나 역사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흥미를 끌만한 요소들이 이 책에 담겨 있다. 특히 세기의 악녀로 평가받는 이 책 속에 등장하는 그녀들만의 강렬한 임팩트와 특이함, 비극성 등은 새로운 캐릭터와 서사를 만들기에 충분해 보인다.


p.130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증손이자 칼리굴라 황제의 여동생인 아그리피나는 훗날 클라우디우스 황제의 비가 되고 아들 네로도 황제가 된다. 계보 가운데 무려 네 명이나 되는 로마 황제의 중심에 위치하는 셈이다. 이것만으로도 그녀가 얼마나 고귀한 혈통이었는지 증명할 수 있을 것이다.


p.151

클레오파트라가 속한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는 혈통으로는 이집트인이 아니라 정복자 마케도이나인, 즉 알렉산드로스대왕 휘하의 뛰어난 장수 중 하나인 라고의 후손들이 일으킨 왕조였다. (중략)

프톨레마이오스 왕가에는 '클레오파트라'라는 이름을 지닌 여왕과 왕비가 무려 일곱 명이나 존재한다. 문제의 그녀, 즉 여기서 다룰 클레오파트라 7세가 태어났을 무렵, 왕가는 집안 내 권력 다툼에 골몰하고 있었다.



이 책의 저자인 시부사와 다쓰히로는 선과 악이라는 잣대로만 악녀를 논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며 다양한 시대 상황과 국가의 분위기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그녀들이 갖게 된 잔인함이나 비극적인 상황 등에도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는 시각을 담아냈다.


악녀에 대한 이야기라고 해서 권선징악적인 측면만 부각되어 있는 건 아니다. 특히 이 책은 한 편의 에세이 같은 형식으로 12명의 악녀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어 역사에 관심을 많거나 사악한 인물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이야기를 쓰고 싶은 작가 지망생들이 참고하면 좋을 책이다.



이 포스팅은 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관점에서 살펴보고 작성했다.



* 출처 : 박기자의 책에 끌리다, 책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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