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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방
알렉스 존슨 지음, 제임스 오시스 그림, 이현주 옮김 / 부키 / 2022년 10월
평점 :
2년 넘게 꾸준히 독서를 하다 보니 혼자만의 공간에서 책을 읽고 글도 쓰고 싶어질 때가 많다. 문자나 전화, 혹은 누군가와 이야기를 하느라 책을 읽거나 쓰고 싶은 것을 미루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 작품을 써온 작가들은 어떤 곳에서 글감을 떠올렸고 온전히 글쓰기에만 집중할 수 있었는지 늘 궁금했다.
최근 출간된 <작가의 방>을 읽어 보니 유명 작가들은 자신만의 공간에서 다양한 영감을 얻고 글을 썼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취재를 한창 다니던 시절에 그래픽, 일러스트, CG/VFX 분야에서 활동하는 아티스트들의 작업실을 방문한 적이 있는데, 그들의 작품과 그들이 머무는 곳이 꽤 특별해 보였다.
그때 아티스트들에게 많이 했던 질문 중에는 주로 영감을 어디서 어떻게 얻는지, 작업이 잘되지 않을 때 스트레스는 어떻게 푸는지, 그리고 작업에 몰두할 때는 어떻게 하는지에 대해 묻곤 했었다.
p.19
크리스티는 집필실뿐 아니라 어디에서나 다음 책을 계획하고 글을 쓸 기회를 찾았는데요. 중동에서 발굴 작업을 하는 남편과 함께 텐트 생활을 하는 동안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는 욕조에 몸을 담그거나 사과를 끝도 없이 먹고 있을 때 종종 아이디어가 떠오른다고 했어요.
p.55
주라는 인구가 300명 정도인 작은 섬이었습니다. 오웰은 이 섬 북쪽에 있는 반힐이라는 농가에 거주하며 글을 썼습니다. 우편물은 일주일에 두세 번 배달됐고, 가장 가까운 이웃이 약 1.5킬로미터 밖에 살았으며, 약 30킬로미터 안에는 전화기도 없었죠. 바깥세상과 이어주는 연결고리라고는 배터리로 켜지는 라디오가 전부였습니다.
이 책에 소개된 작가들은 애거사 크리스티, 버지니아 울프, 조지 오웰, 마크 트웨인, 찰스 디킨스, 무라카미 하루키, J.K. 롤링, 토머스 하디, 빅토르 위고 등 한마디로 위대한 작가들이다. 이들은 어떤 공간에서 자신만의 이야기를 완성할 수 있었을까?
이 책은 오래 시간 사랑받아 온 작가들의 작품이 어떤 곳에서 탄생하게 됐는지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또한 그 작가들 주변에서 글을 썼던 작업실을 기억하는 가족, 친구, 연인 등의 증언을 토대로 하고 있다. 때로는 작가가 남긴 글 속에서도 베일에 쌓여졌던 그들만의 공간이 드러나 관심을 모아왔다.
이 책은 책 중간중간 나오는 일러스트가 인상적이다. 작가들의 방을 묘사한 그림인데 글로 읽고 상상했을 때와 일러스트로 표현된 그림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생각해 보면 좀 더 재밌게 책을 읽을 수 있다. 숨은 그림 혹은 틀림 그림 찾기처럼 소소한 즐거움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p.77
미국 소설가 이디스 워튼의 공식 홍보 사진을 보면, 아주 잘 갖춰진 서재에서 금테를 두르고 가죽으로 마무리된 책상에 꼿꼿이 앉아 글을 쓰는 모습이 저절로 떠오르죠. 하지만 이는 그저 오해일 뿐입니다. 실제로 워튼은 침대에서 글을 쓸 때 가장 창의적이고 편안하다고 밝혔어요.
P.95
디킨스는 집필 공간을 비롯한 집 전체를 자신이 바라는 대로 설계하고 장식하며 모든 측면에 깊은 관심을 쏟았는데요. 가족이 키우던 까마귀 그림이 죽었을 때는 흔치 않은 결과물을 낳기도 했습니다. 전문가에게 부탁해 그립이 박제해서는 멋진 틀에 넣어 책상 위쪽에 걸어 뒀거든요. 현재 까마귀 그림은 필라델피아 중앙도서관 희귀 서적 코너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나일강의 죽음>, <오리엔트 특급 살인> 등 다수의 추리소설을 쓴 '애거사 크리스티'는 자신에게 필요한 건 흔들리지 않는 책상과 타자기 뿐이라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그녀는 런던 집이나 인생의 절반을 보낸 월린 퍼드 저택에도 집필실이 있었다고 한다. '버지니아 울프'는 여성이 소설을 쓰려면 돈과 자기만의 방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는데, 그녀가 살았던 시대에는 여성 작가가 글을 쓰는 일이 얼마나 어렸을지 상상이 된다.
<오만과 편견>을 쓴 '제인 오스틴'은 아버지가 선물해 준 문구함을 이용해 글을 썼다고 한다. 문구함은 종이와 잉크를 보관하는 수납공간과 잠금이 가능한 서랍이 있다. 종이를 올려놓고 글을 쓸 수 있는 비스듬한 받침대로 변하는 형태였다고 하는데, 이런 제품이 출시된다면 인기를 끌 것 같다.
<티파니에서 아침을>을 쓴 '트루먼 커포티'는 침대나 소파에 누워 있지 않으면 아무 생각도 할 수 없다고 했고, <톰 소여의 모험>을 쓴 '마크 트웨인'은 침대에 앉아 파이프를 물고 글을 휘갈겨 쓰는 즐거움에 대해 이야기했다. <위대한 유산>을 쓴 '찰스 디킨스'는 해외에 갈 때마다 자개로 된 집을 떠올릴 수 있는 자단나무 문구함을 챙겼다고 한다.
P.126
무라카미 하루키는 도쿄 아오야마에 있는 평범한 건물 6층 사무실에서 글을 씁니다. 이 상당히 단조로운 공간에서 단연 눈에 띄는 것은 벽 전체를 가득 메운 레코드판이죠. 1만 장이나 되는데, 거의 대부분이 재즈랍니다. 음악을 들으면서 글을 쓰는 경우가 많다고 해요. 실제로 그는 음악과 글쓰기에 리듬, 선율, 조화, 즉흥성 등 네 가지 공통점이 있다고 말합니다.
P.157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인 존 스타인벡은 그의 포드 스테이션왜건 뒷자리에 접히는 책상과 글쓰기 도구, 커피를 준비해 놓고 차를 집필실처럼 사용했습니다. 블라디미르 나보코프는 <롤리타>와 관련된 많은 메모를 차에서 썼죠. 이들처럼 아방가르드 작가 거트루드 스타인도 자동차에서 영감을 받고 했어요.
작가들은 자기만의 방식으로 자기가 편안하다고 느끼는 공간에서 아이디어를 발전시키고 이야기를 덧붙여 한 편 한 편 작품을 써 내려갔다. 근사하게 꾸며진 서재에서든, 익명의 호텔 방에서든, 어느 카페의 구석에서든 저마다의 공간에서 저마다의 방식으로 창작의 고통을 거쳤다.
그리고 지속적인 집필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꾸준히 쓰고 또 쓰는 집념의 시간을 보냈다. 이렇게 탄생한 작품들은 오랜 시간을 지나 지금도 사람들의 마음에 감동을 선사하고 있고, 영화로 연극으로 또 다른 소설의 모티브로 다양하게 변주되고 있다.
기회가 된다면 이 책에서 소개한 50인의 작가들이 작품을 쓰고 머물렀던 곳을 방문해 보고 싶다.
이 포스팅은 부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관점에서 살펴보고 작성했다.
* 출처 : 박기자의 책에 끌리다, 책끌